9장 3일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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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최원해에게 그 평범함을 바라는 것은 지나침이었다. 더 이상 이 페이스로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준비운동을 한 시간 가량 한 다음에 달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신체가 달려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운동을 해주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못하고 출발을 했다. 마동은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최원해가 신고 있는 운동화도 한 시간 이상 달릴 수 있는 조깅 슈즈가 아니었다. 여러모로 조깅을 하기에는 수축되고 모자람이 많은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동은 코스를 변경하기로 했다. 평지인 해안도로를 죽 달리는 것보다 저수지 쪽의 산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빠르게 걷는 방향으로 하자.
그쪽이 최원해 발바닥이나 무릎에 무리가 덜 전달될 것 같았다. 평지처럼 달리지 않아도 되고 오르막길이 많아서 걷는 것만으로도 다리 근육에 긴장을 주고 운동량은 더 많다. 최원해의 운동화는 무겁고 바닥이 필요 이상으로 두꺼워서 산길을 걷는 용도에 더 적합하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평소에 바닷가의 평지코스로 접어들기 전에 아파트 단지의 저수지 쪽의 산행코스를 거쳐 바닷가의 평지코스로 종종 달렸는데 최원해 덕에 오늘은 그곳의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저수지 쪽의 산행코스는 동절기에는 저녁 6시 이후에는 입산이 금지인 코스다. 5월부터 시작되는 하절기, 동절기가 시작되는 11월 말까지는 밤새도록 코스가 오픈이 되었다. 도심지에 있는 산이라고는 하나 산속이 깊고 침엽수가 많다. 술이라도 마시고 추운 겨울에 들어가서 의식을 잃으면 곧 죽을 수 있다. 인간은 겨울철에 산속에서 사건사고를 많이 당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독, 하지 말라고 하면 인간은 그 명제에 반기를 들며 꿋꿋하게 하지 말라는 행위를 성실히 실행하고 불행한 결과로 뉴스를 장식하기도 한다. 인간은 기존의 틀을 비틀고 싶어 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잔뜩 지니고 있었다. 초등학교의 담벼락을 지나 저수지가 보이는 산행 길을 올라 구불구불한 산속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봐, 이보라고, 헉헉, 왜 이 길로 가나.” 최원해의 얼굴은 땀과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반팔 끝 부분으로 얼굴의 땀과 번들거리는 기름을 한 번에 닦으며 마동을 불러 세웠다.
“이 길로 언제나 달립니다, 제가 집에서 조깅을 하면. 전 항상 달리면서 이 길을 올랐지만 부장님 때문에 천천히 걸어가는 겁니다.” 마동은 일일이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최원해는 안경을 벗어서 이마의 땀을 티셔츠 끝으로 닦은 다음 마동의 뒤를 따랐다. 숨소리가 대단했다. 초등학교의 담벼락을 지나면서부터 길이 숲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경사가 50도 가까이 꺾인 산길이다.
“이봐, 나를 좀 데리고 가라고, 헉헉”
마동이 경사면을 올라가다가 잠시 멈추고 최원해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최원해의 의식은 마동이 꾀병을 부려서 낮에 회사 업무를 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동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최원해는 회사 내 모든 사원들의 심리나 행동을 숙지하고 있는 인간이다. 심지어 회사 직원들의 음식취향도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머리는 지극히 혼란스럽지만 마동을 의심하는 마음을 접었다. 외모와 말투, 스타일의 뒤떨어짐을 무시한다면 최원해의 통찰력은 타인이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오너는 그런 최원해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회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최원해는 마동의 지금 이런 모습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낮에 본 마동의 상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조깅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원해 역시 사회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성인이 지니고 있는 장점과 그 장점을 취득하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여 인간관계를 적당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최원해는 어딘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흙탕의 물웅덩이처럼, 아침햇살을 갑자기 먹어 버린 어두운 잿빛 구름처럼 음산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 내 직원들도 선뜻 최원해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모습은 없었고 최원해 역시 연못 속의 잉어를 보듯 그들을 쳐다볼 뿐 신경 쓰지 않았다. 회식이 있으면 참석했다가 2차에서는 따라붙지도 않았다. 설령 같이 간다고 해도 어느 순간 몰래 빠져나가 없어져 버리곤 했다. 마동은 문득 최원해가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이 궁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