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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1. 2020

고래를 해체하다

바닷가 에세이

내가 있는 바닷가는 고래로 유명하기에 바닷가를 따라 죽 돌아가면 포구가 나오고 포구를 지나면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가 있고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그물에 걸린 고래를 해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을 슬도라 부르는데 드라마도 몇 번 찍고 등대마저 리모델링을 싹 해버려 분위기가 젊은 취향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세련된 카페도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유명해져 버렸다. 예전의 소담한 등대가 슬도를 지키고 있고 그곳에 앉아 가만히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었던 기억은 이제 추억으로만 자리를 잡았다.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곳이기에 많은 찍사들이 찾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많아진 다음에는, 그러니까 등대가 태권브이에서 84 태권브이처럼 이상하게 변해버린 후에는 나는 가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없을 때는 자연의 소리가 광활한 바다에 가득했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소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고요한 곳을 찾아가서 망가트리는 운명을 지닌 것 같다. 룰루랄라 가서 야호 하며 기묘하지만 자연을 망가트린다. 


그곳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보면 가끔 그물이 걸린 고래의 해체 작업을 볼 때가 있다. 고래가 육지에 오르는 순간 엄청난 양의 얼음이 트럭으로 실려온다. 그리고 장팔사모와 청룡은월도 같은 긴 칼을 들고 몇 명의 건장한 20대 중반 청년들이 장화를 신고 고래의 해체작업에 들어간다.


신기하다고 생각이 든 건 티브이에서 참치의 해체를 하는 장인은 그 횟집에서 가장 숙련되고 오래된, 나이가 지긋한 경험자가 숙달된 솜씨로 참치를 해체하는데 고래의 해체를 20대 청년들이 하는 것에 사뭇 놀라고 신기했다. 뭘 잘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영화 속 장비와 관우처럼 능숙하게 고래를 해체하는 것이 아닌가.


먼저 배를 가르면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어마 무시한 양의 피가 흐른다. 그때 재빨리 호스를 잡고 있던 사내가 물을 뿌리고 트럭에서 또 다른 사내는 삽으로 얼음을 퍼 배를 가른 고래의 몸속에 붓는다. 영차영차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기에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걷혀있다.


장팔사모가 고래의 큰 부분을 해체하고 나면 청룡은월도가 지느러미와 꼬리 등 세세한 부분을 몸통에서 잘라낸다. 역시 엄청난 피와 분비물이 흘러나온다. 


물과 얼음. 


그렇게 불과 두어 시간 만에 크나큰 고래는 촘촘하게 조각조각 난 고기로 변하게 된다.


크고 검은 고래는 작고 보잘것없는 빨강과 하양으로 분리되어 어딘가로 배출된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맹렬한 컬러다. 붉은색이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빨강과 흰색보다 더 순수한 하양은 강렬하고 맹렬하다. 몸속에서 신열의 발화로 몸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 같다. 바닷속에서 고요하게 숨죽이고 있다가 바다 위에서 숨 쉼과 동시에 찰나로 맹렬하게 빛을 낸다.


이런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더 운이 좋으면 배에서 육지로 고래를 옮기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밑의 사진은 필름으로 촬영을 했다. 몸통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사진으로 다 담았는데 보면 징그럽기에 결과물 사진만 올려본다.  


이렇게 분리된 고래는 고래고기가 되어 고래고기 전문점으로 팔려 나간다. 인간이 맛있게 먹는 모든 것에는 지정할 수 없는 희생이 반드시 있다. 비록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입으로 먹을 음식에는 누군가가 희생을 반드시 치르고 있다.


슬도의 등대가 바뀌기 전의 소담한 등대의 모습. 모친을 모델로 한 컷 찍었다. 이 사진도 거의 10년이 넘어간다. 

지금은 슬도라고 검색을 하면 무시무시한 등대의 모습과 잘 가꾸어진, 어느 관광지에서나 볼 법한 그런 관광지에 들어맞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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