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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5. 2020

외할머니와 상추쌈

음식 이야기


나의 외가는 울진의 불영사 위의 불영계곡 중간쯤 ‘서면(西面)’이라는 곳이다. 소 내장처럼 구불구불한 불영계곡의 도로를 넘어서 끝까지 가면 그 끝에 송이로 유명한 봉화가 나온다. 불영사도 통도사처럼 비구니들만 있는 절이다. 불영사는 울진군 ‘서면’ 하원리 천축산에 위치해 있으니, 외가나 불영사나 지역은 같다. 하지만 걸어서 가려면 진땀을 빼야 할 각오를 단단히 먹어야 한다.


모친은 불영사의 비구니가 되려고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불영사에서 뛰어놀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린아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불영사에 가면 나이 많은 여승이 엄마와 담소를 나누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겨울의 불영사보다 여름의 불영사가 참 좋은데(대체로 나라는 인간인 자체가 여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길을 따라 죽 들어가면 불영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부르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들린다.


막힘없이 흐르는 물소리와 중간중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의 분위기는 신기하기만 하다. 옛날에 간첩이 불영계곡 쪽으로 많이 넘어왔을 때 저기 소에 빠져서 죽은 사람들이 밤이 되면 귀신이 된다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외할머니가 불영사로 들어갈수록 떠오른다.


불영사의 입구에는 100년 묵은 노목이 있다. 아니면 사목이거나. 고목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많이 기울어져 있는데 중간에 머리 하나가 들어갈 구멍이 있어서 그 속에서 머리를 내놓고 사진을 찍어서 기념하기도 한다. 해서 외할머니부터 외가댁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역사처럼 고목의 구멍에 머리를 내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통도사가 사당이 많고 무척 넓은 것에 비해 불영사는 큰정원이 하나가 있다. 중간에 연못이 있고 연꽃이 가득하다. 연꽃의 향은 가까이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은은하게 퍼지기 때문에 거닐다 보면 연꽃의 향에 도취되기도 한다.


요즘은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르나 내가 늘 가던 불영사는, 여름의 불영사는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여름에 걸어서 불영사에 도착을 하면 땀이 줄줄 흐른다. 여름의 땀이 몸을 적셔도 불영사의 그늘에 앉아 있으면 나무가 춤을 추며 만들어내는 바람에 땀이 식어버리고 만다.


나는 어릴 때 5, 6살쯤에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떨어져 외가에서 1년 정도 살았다. 매일 밤마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고 외할머니나 큰 이모는 밭은 숨을 내쉬는 내 등을 슬슬 문질러 주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여름에 으레 나를 데리고 불영사에 갔다. 나는 혼자 그곳을 뛰어놀다가 오줌이 마려워 아무 곳에서나 누다가 혼이 난 이후로 화장실을 찾아갔다.


해우소를 처음 들어간 나는, 압도적인 냄새에 놀랐다. 또 열을 받아 밖의 날씨가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의 질식할 만큼의 찜통 같은 해우소 더위에 더 놀랐다. 놀랐다고 마냥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피부를 찌르는 냄새에 숨을 합, 하고 참아야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학교에 들어가야 하니 아무 곳에서나 오줌을 누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어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스님들에게 자랑을 해야 했기에 해우소의 문을 덜컥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5살 인생 전반에 내게 닥친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변기 속에서 수백만 마리의 흰 벌레가 내가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끼익 하며 내는 발판의 소리는 순간적으로 체내에 냉기를 불어넣었다. 참았던 숨을 쉬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냄새가 입으로 들어와서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지옥’이었다. 절에서는 해우소에 지옥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마나 울었을까. 외할머니와 스님이 해우소의 문을 열었는데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입술 위로 비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바지는 오줌으로 다 젖었는데 스님이 동자승 바지를 내게 입혔다.


불영사의 연못 옆에 작은 수돗가에서 나를 씻긴 할머니는 불영사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금남의 지역으로 위험해 보이는 폭포도 있고 그 밑에서 스님들이 상추를 키우고 있었다.


오늘 이거 따서 맛있게 밥 먹자.라는 말에 히에로니무스의 지옥은 온데간데 잊어버리고 또다시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며 상추를 땄다. 30분 정도 나는 상추 따는 일에 집중을 했다. 옆에서 배테랑 할머니와 스님이 따는 것에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잘 보이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그렇게 딴 상추는 스님과 외할머니가 흐르는 물에 잘 씻어서 탁탁 털어서 소쿠리에 담아냈다. 우리는 작은 밥상에 밥과 된장뿐인 반찬과 상추를 놓고 밥을 먹었다. 내가 수확했다는 뿌듯함 때문에 밥맛은 더 좋았다. 그랬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상추에 이렇게 밥을 싸서 나에게 먹여 주었다. 그 덕분으로 나는 지금까지 상추에 고기를 싸 먹지 않고 밥을 싸 먹는다. 작고 보들보들한 불영사의 상추의 맛. 그건 내 외할머니의 맛으로 추억된다. 트럭에 치여 그대로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고통이랄 것도 없이 가버린 내 외할머니. 어떤 면으로는 지독한 죽음이었다.


 작고 어린 나를 달래느라 수고했던 내 외할머니. 나는 내 외할머니에게 받은 애정을 지금까지 조금씩 태워가면서 지냈다. 이젠 다 태우고 그을음이 남았지만 그래도 그리웁다.




이젠 울진 삼근에서 채소나 김치를 보낼 사람이 없다.

이렇게 울진의 상추를 받아서 밥에 싸서 멸치볶음을 얹어 입에 넣어 씹고 있으면, 그때 외할머니와 스님이 호호거리며 주고받던 대화, 불영사를 감돌던 향내, 지금처럼 습하지 않고 기분 좋은 여름의 태양이 외할머니의 피부 냄새처럼 옅게 떠오른다.


 

100년 묵은(100백 년인지 잘 모르겠음) 노목. 노목 사이에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머리를 내고 사진을 찍곤 했다.



불영사로 들어가기 전, 불영계곡의 모습.



불영사를 들어가면 반기는 연못.



불영사의 모습.



여름의 불영사는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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