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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14

9장 3일째 저녁

214.

 마동은 이 변이가 죽음으로 가는 계기를 지니게 된다 하더라도 겸허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혹여 이 변이가 몰고 온 결과를 통해서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굳혔다. 적어도 달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마동은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리고 달을 안아 올리는 모습으로 팔을 앞으로 뻗어보았다. 그 순간 달 주위의 헤일로가 달의 띠에서 벗어났다. 순간 날카롭고 차가운 한줄기의 빛으로 무더운 여름밤의 불투명한 단층을 가르고 마동의 눈으로 와서 박혔다. 마동의 눈동자로 달빛의 헤일로가 고집스럽게 들어갔다. 달빛은 아프다거나 쓰라린 느낌이 아니었다. 달빛은 마동의 눈으로 와서 박히는 순간 마동의 눈동자에서 작은 빛의 포자가 모이더니 15센티미터 정도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빛은 나름대로 하나의 자아가 되었다.


 살아있는 빛의 주체아로서의 자아.


 마동은 자신의 눈에서 쏘아져 나오는 빛의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아주 신비스러운 빛이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그 빛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빛에서 봤던 미스터리한 모습과 닮았다. 빛 속에서 정의할 수 없는 세계와 관념이 들어 있었다.


 마동은 철탑을 벗어나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최원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지만 다시 팔뚝의 밴드에 집어넣었다. 마동은 최원해가 알아서 잘 내려갔으리라 생각했다. 내린 결론 위에 한 번 더 단정 짓고 달려서 철탑 근처를 벗어났다. 미묘한 이야기지만 철탑 주위의 바람과 풀들이 마동을 그곳에 좀 더 붙잡아 두려 했다. 파르스름한 바람이 불어와 마동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고 바람은 풀들을 부추겨 마동의 다리를 휘어 감아올리게 했다. 숲의 유혹을 걷어내고 마동은 달을 올려다본 후 빠르게 산 밑으로 내려왔다. 마동의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고성능 폭발음을 내며 빠르게 달렸다. 몸속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마동의 육체를 슈퍼카처럼 조종하며 움직이게 했다. 달리는 속력이 너무 빨라서 나뭇잎이 마동의 몸에 닿자마자 난기류 때문에 몇 바퀴 돌다가 떨어져 나갔고 그 모습은 저 먼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 같았다. 마동의 다리는 지칠 줄 모르는 흑마처럼 빠르게 위험한 산길을 굽이굽이 날렵하게 달려서 내려왔다. 조깅화가 닿은 산길에는 말발굽처럼 바닥에 움푹 파인 자국을 만들어냈다. 자국은 이내 흙으로 덮여 사라졌다.


 희미한 달빛이 흐릿하게 세상을 밝혀줬지만 마동의 시야는 전자기파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두운 밤의 대기와 공간이 훨씬 잘 보였다. 나뭇가지가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영화의 잔상처럼 보였고 3, 4미터 떨어진 곳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야행성 너구리의 눈동자도 선명하게 보였다. 너구리는 마동을 보더니 입에 물고 있던 먹이를 떨어트리고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마동은 이십 여분 만에 산 밑으로 내려왔다. 순식간이었다. 보도로 내려오려면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쉬지 않고 달려도 1시간 30분은 넘어 걸리는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산 밑으로 내려와서 마동은 작은 중학교의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잠시 멈춰 섰다. 후 하고 숨을 쉬었다. 힘들어서 숨을 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여름밤에는 대지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익어가는 여름밤 속에서 건물은 더욱 열기를 발산했다. 사람들은 밤이지만 목에서 땀을 흘렸고 시원한 곳을 찾아서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 더위 속에서 마동은 힘차게 달렸지만 땀이라고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중학교 벽에 기대어 있다가 다시 달려 차도가 있는 곳까지 나왔다. 한국 도심지의 여름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습기가 많고 무덥다. 덕분에 기분은 처지고 불쾌지수는 올라간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야밤에는 어딘가를 향해서 끊임없이 질주했고 모든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에어컨의 열기 때문에 푹푹 쪘다. 운전자들은 도전적인 얼굴을 하고 앞을 응시한 채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불확실한 태도로 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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