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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죽산-죽산성지-장암리-망이산성-어재연고택-안성

보리밭 사잇길로 걸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하고도 9일입니다.

이렇게 화사한 봄날 영남길을 걷습니다.

에헤라 디야~ 

스을슬, 걸어 볼까나~


죽산터미널 영남길 걷기

아침 8시반 양재 남부터미널에서 죽산터미날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대현형님이 미리 예약을 해놓기는 했지만, 자리는 넉넉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길을 같이 걷고자 권영빈교수님도 오셨습니다. 

웰컴투 영남길, 교수님~

죽산터미널에서  시작행사를 합니다, 찰칵~


죽산터미널의 바로 옆 길입니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가장 번화한 거리입니다. 그래도 신호등이 없습니다.

바쁘게 서로 부딪칠 일이 없는 동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죽산면 : 

경기도 안성시 남동쪽 끝에 위치한 안성시의 면이다. 과거 죽산군 지역에 해당하는 죽산면, 일죽면, 삼죽면의 중심에 위치해있으며, 구 죽산군 지역의 교통의 요충지이다. 안성 시내와는 별개로, 일죽면과 함께 독자적인 생활권을 가지고 있다. 면의 북부를 흐르고 있는 죽산천은 안성의 이름을 딴 하천인 안성천의 수계가 아닌 한강수계이며, 심지어 남쪽 3개리(두교리, 칠장리, 당목리)는 금강수계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멀기는 해도 많은 것들(교육, 여가생활, 쇼핑 등)을 안성 시내를 통해 보조받기 때문에, 공도읍과 같이 완벽히 독자적인 생활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경기도의 최남단 안성, 그 중에서도 가장 외곽이기 때문에 충청도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사거리를 벗어나니 바로 논이 보입니다.

벌써 모내기를 준비합니다. 서울 촌사람들에게는 모판도 생소합니다.



'매곡'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큼지막하게 있습니다.

문화마을이라는 주석도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연으로 문화마을이라고 자청할까요?

유명한 문화인, 어떤 문화재, 아니면 문화인을 지향하는 마을 사람들?

그래서 문화적이신 분의 기념 사진을 올렸습니다. 


조금 가다보니 정자가 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겠습니까?

우리가 정자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겠습니까?

콜롬비아에서 온 커피, 러시아에서 온 챠코릿, 신토불이 토마토와 피망~

로컬을 걷지만, 먹는 것은 글로벌합니다.

그럼 이 곳에서 쉬면서 무슨 이야기했냐고요?

두서없지요~



오우~ 수령이 무려 450여년이나 되었습니다.

동네 한 가운데 이렇게 오래된 나무가 여지껏 버틴 것이 대견합니다.


이 곳에서도 여지없이 인구감소의 슬픈 흔적이 보입니다.

사람이 늘어날 때는 빈 집이 생길 틈이 없었는데,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빈 집들이 늘어납니다.

사람이 늘어도 걱정, 줄어도 걱정.


죽산초등학교입니다.

보통 초등학교는 그 동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걷다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렇게 닫혀 있는 일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동안 조용히 해달라는 의미보다는, 안전을 걱정해서 겠지요.

물론 그런 걱정도 이해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작정 닫아놓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학교,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는 그 동네의 축제의 장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뭔 일이 낫다 하면 아예 끝까지 가버리는 요즘 일들이 마음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아하~ 도랑!

요즘 잘 쓰지 않는 말이지요.

사전적 의미로는 '매우 좁고 작은 개울'입니다. 

도시에서는 개울을 보기도 힘든데, 그보다 더 작은 도랑이라~

이 표지판을 보면서 쓰여진 단어로 그 사람의 나이를 짐작할 수있게다라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이리 갈까, 저리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이럴 때 저렇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낫겠지요!


죽산천입니다.

이 개울이 흘러흘러 한강으로 간답니다.


두 분의 이사를 축하드립니다.

온 남산마을이 환영하네요.

저희도, 이 사진을 보는 모든 분이 축하드리며, 남산마을과 더불어 무궁한 발전이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봄입니다. 시골은 모내기가 한창이지요.

그런데 막상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기계음만 가득합니다.

농부들이 힘든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던 '모내기 소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 트랙터 엔진음이 이앙가를 대신 부릅니다.

그래도 밥은 맛있습니다. 밥많이 먹으면서 농부들의 수고에 보답합시다.



오래 같이 하면 비슷해진다고 하더니, 저 두분 비슷하지 않나요?

음~ 누가 더 기분좋아질까?


논두렁에 핀 노란 들꽃이 생기발랄합니다.


저 멀리 산등성에 하얀 줄이 죽주산성입니다.

어떤가요? 제가 죽주산성을 손바닥에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하마터면 지나가 뻔했습니다.

저 작은 푯말이 갈래길마다, 애매할 때마다, 모르고 지날 뻔 할 때마다 제대로 가게 우리를 안내합니다.

곳곳마다 설치해준 이에게 감사합니다.


저 작은 사이길이 천주교 죽산성지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참 평화롭고 아름답게 꾸며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 많은 신자들이 믿음때문에 죽임을 당한 곳입니다.


"신앙 증거의 땅, 죽산순교성지"

죽산에서는 1866년 병인박해부터 1871년 신미양요 때까지 스물 네 명이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하고 하느님께 목숨을 바쳤다. 단 한 사람이 주님을 위해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쳐도 우리는 그 땅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24위나 되는 분이 순교의 거룩한 피를 흘린 죽산이다.   

죽산 성지의 슬픈 사연을 3.4조의 음보로 적은 비석입니다.

저 글을 읽는 우리의 마음도 처연해집니다.


이 곳에 잠드신 분들에게 평화와 축복있기를~

죽산성지의 입구입니다. 


오잉~ 

많이 보던 모습, 그러나 이 곳에서 보니 좀 더 놀랍네요.

절에서 보던 촛불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종교는 초불을 좋아할까요?


절에 가면 절밥 먹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번 먹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당가서 밥먹어 본 적이 없는데, 마침 시간이 되어 성당 밥도 먹어 보네요.

마침 이 곳으로 단체 순례오신 분들이 있어 곁밥을 먹습니다.

널찍한 정원에서 잔칫 밥 먹는 기분입니다.

마침 근처에 식당도 없어 끼니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혹시 나중에 이 곳에 오실 분들은 점심 맞춰오시면 기분좋게 식사가능합니다.

밥 값은 배식하시는 급식회사 분들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죽산성지

죽산성지를 나왔습니다.

걷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편하고 오래 커피마시고 쉬었습니다.

그래도 걸어야지요.

들길입니다. 봄날입니다. 보리밭이 보입니다.

대현형님의 창소리가 절로 납니다.

같이 가는 세사람은 흥을 맞춥니다.

좀 오래된 영화, '서편제'가 기억납니다. 판소리에는 문외한이지만, 어깨 춤이야 같이 출 수있지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



기계 영농의 힘이 보입니다.

쉬리릭~ 한 번 왔다가면 농부 여러 명이 한두시간 할 분량을 해치웁니다.

눈에 익은 모습이기는 한데, 여전히 기계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신기해보입니다.

특히 딱 한 포기씩 집어내어 딱 고자리에 고높이로 심어가는 고 부분이 놀랍습니다.


한적합니다.

한가합니다.

함께합니다.

 

보기 좋습니다.


송아지 눈망울 : 맑고 곱고 큰 눈을 말하지요.

그런데 축사에 갇히어 저를 보눈 그 눈은 웬지 슬퍼 보였습니다.


대현형님의 흥은 말리지 못하겠네요.

보릿 속에 들어갔습니다. 

보리~밭 사잇 길로, 걸어가면~~~

바람도 맞추어 주고, 보리들이 춤을 춥니다.


 며느리 소원을 풀어준 갓바위의 전설입니다.

그런데 보통 소원을 풀었다함은 끝이 해피엔딩이어야 하는데, 이 전설은 어째 깔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소원을 풀어주는 것도 풀어주는 건가 헷갈립니다.

전설의 내용은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나타납니다.


장암초등학교입니다.

폐교되었네요. 교정을 바라보시는 세종대왕님의 자리가 낡았습니다.

동판도 뜯어졌습니다.

대왕님의 백성들이 세세손손 영원토록 늘어만 갈 줄 알았는데, 이런 송구한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한글로 대왕님께 이런 사실을 있다는 것을 알리려니 참으로 민망합니다.


곳곳이 이야기거리입니다.

전설따라 삼천리~

길마다 의미있고 재미있는 저 이야기를 본다는 것은 걷는 재미를 몇 배로 늘려줍니다.


저 앞에 보이는 나무가지가 풍성하게 퍼져있습니다.

멀리서 봐도 저 밑에는 평상이 있어보입니다.

그냥 지날 수 없지요.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나누어 마십니다.

세상의 어느 마실 것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송화입니다.

저 안에는 송화가루가 가득하지요.

어렸을 적,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송화떡이 그리워졌습니다.

송화로 만든 노란 떡을 먹을 때 달콤하지 않고, 쫄깃하지도 않은 푸석한 듯한 입감이 별로 였습니다.

그런데 그 떡을 만드시기 위하여 저 수많은 송화를 털었어야 하는 것을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때 할머니의 마음을, 정성을 알았더라면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었을 걸 .........


아니, 이 산골짝에 기숙학원이 있습니다.

저 안에는 수 많은 청춘들이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스스로 구속하고 있겠지요.

그들 모두에게 기대보다 넘쳐나는 수능시험 성적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망이산성이 있습니다.

올라가지는 않고, 잠시 쉬었다가 스쳐 지나갑니다.


사거리입니다.

한 참을 고민하다가 한 쪽을 선택합니다.

길안내하는 표시 기둥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분명 만들어 놓기는 했겠지만, 공사하느라 뽑혔겠지요.


농장을 하는 것이 마치 전쟁하는 것같습니다.

화생방전이요.

목축업을 하는 사촌누나의 어려움이 새삼 느껴집니다.

금년에는 개나, 소나, 돼지 모두 무사히 지났으면 합니다.


이천에 가면 행복해진답니다. 

아, 그 밑에 보이는 길 이름은 일생로네요.

이 길로 이천을 가면 일생이 행복해진다는 뜻인가요?

그럼 가야지요~


또 하나의 이야기~


권교수님이 죽은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으십니다.

아마 생동감있는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서 그럴까요?


어느 덧 해가 길어졌습니다.

덩달아 나의 그림자도 길어졌습니다.

늘 나를 따라다니느라 애쓴다. 

 

또 하나의 이야기~


오늘의 목적지인 어재연고택입니다.


걷는 길이 막다른 길에다 버스가 빨리 끊기는 코스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시더니 안성일죽 버스정거장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식사라도 대접할라고 했는데, 굳이 사양하셔서 어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회장님의 최근 저서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를 보내드린다고 했습니다.

회장님, 보내셨지요?



결국 우리 그 먼길을 돌고 돌아 소라네 집으로 갔습니다.

안성 일죽터미널 근처 식당입니다.



오늘 많이 걸었습니다.

무려 22킬로입니다. 해질 때까지 걷는다는 모토로 하다보니 날이 길어져 걷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그런데 앉아 밥도 먹고, 소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물도 마시고, 동태찌개도 먹고 .......

반찬도 좋고, 음식도 좋고, 자리도 좋고, 우리들도 좋고, 주모 사장님 인심도 좋고  .....



그렇게 소라네서 떠들다 보니 시간이 후딱 가데요.

그래도 8시가 조금 넘었으니 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왠걸~ 서울가는 막차가 끊겼답니다.

이런 이런~ 

하는 수없이 30분을 더 기다렸다가 수원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낯선 곳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두런대는 저 세 분의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진짜 나그네가 된 기분도 들고요.


새옹지마라고 했던가요?

본의아니게 수원시내도 이렇게 버스타고나마 휙 지나가며 구경했습니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또 어느 길을 걸을까요?

                                                        (2019년 4월 9일 권영빈교수님, 김민주, 김대현, 홍재화 같이 걷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걸었습니다

                                                                                                                (동영상 BY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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