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휴지줍는 할머니라면

소소한 재미에 오래 살고 싶어

내가 휴지 줍는 할머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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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값이 내려갔네. 어제보다 500원 줄었다.

하루 만원 벌이도 어려운데 또 떨어졌으니 걱정이다. 손자 녀석 과잣값 하나 준 셈이다. 내가 라면 하나 덜 먹으면 되지. 게다가 요즘은 종이 받는 데서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종이 붙은 테이프도 떼라 하고, 비닐 붙은 종이는 안 받아 준다고하고.....

허리가 굽어서 걷기가 힘들다. 종이 줍는 사람이 늘어 더 부지런 떨어야 하는데 갈수록 기력이 줄어든다. 이제는 유모차 밀기도 어렵다. 힘은 줄어도 유모차에 종이를 더 많이 실어야 이전만큼 벌 수 있다. 저 과일가게 박스를 나에게 조금만 주어도 큰 도움이 될 텐데 트럭째 가져가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이놈의 굽은 허리가 문제이다. 허리가 굽으니 목이 자꾸만 아래로 처지고, 앞을 보기 어려워지니, 유모차 미는 게 불편하고 힘도 더 들어간다. 젊었을 때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골목길이 이제는 가파른 경사처럼 느껴진다. 올라갈 때는 폐지 실은 유모차 밀기가 힘들고, 내려갈 때는 폐지 때문에 무거워진 유모차를 당기며 가야 해서 여간 힘들지 않다. 이럴 때 영감이라도 있으면 같이 밀고 끌 텐데 저승에 뭔 볼일이 있다고 급하게 가서 날 이리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젊을 때 나의 노년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가난한 집 자식도 아니고, 게을리 산 것도 아니고, 사기당한 것도 아닌데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젊었을 때 이리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면 측은하고, 난 저렇게 사느니 죽어버릴 그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래도 사는 재미가 있다. 종이 모아서 몇 천 원 받는 것도 재미있고, 가끔 오는 손자 녀석 사진보는 것도 재미있고, 유모차 무겁다고 밀어주는 젊은이들 보는 것도 재미있다. 동사무소에서 밥이며 반찬을 가져다주는 직원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렇게 소소한 재미에 사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이런 이승에서의 삶이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집안에서 편히 죽을 수는 있을까? 죽기 전에 아프지는 말아야 할 텐데. 옆 동네에서 폐지 수집하던 할망구가 요즘 보이지 않는다. 잘 죽었을까? 그랬을 거야, 나도 그래야 할 텐데, 꼬부라진 허리 통증이 당최 낫지를 않네. 쌩쌩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죽지나 않으면 좋겠다. 그래도 죽을 때 잘 죽어야 천당에 가 있는 할아범 곱게 만나지. 소싯적 사진을 보면 그때는 참 고왔어. 영감도 멋졌지. 오늘 하늘처럼 그때는 세상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줄 알았지. 지나고 보면 작은 것에 욕심부렸어. 그러지 않고 살아도 되었는데 말이야. 영감이 너무 열심히 사는 바람에 사는 재미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가버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놀면서 살걸. 젊어서 놀자는 게 뭔 말인지 이제야 알겠네.

하기야 다시 살아도 그때는 그렇게 살아야 할 거야. 부잣집도 아니라 물려받은 것은 적고, 아이는 셋이니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었지. 그래도 아이들 다 그런대로 사니까 다행이야. 내 나이 이제 80이 넘고 90을 바라보네. 오래도 살았지. 시집올 때 호호 할머니였던 시할머니보다도 내가 더 살았네. 시할머니는 나를 참 예뻐해 주셨는데,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네. 살 만큼 살았다는 말이지. 그래도 더 살고 싶어. 손주 보는 재미도 있고, 아침마다 햇빛 보는 재미도 좋아.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라던가.

어라~ 갑자기 종이 유모차가 가벼워지네.

아~ 고마워 젊은이, 앞으로 잘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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