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수처장이라면

내가 공수처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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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고 있으면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내 역할이다.


마음이 바쁘다. 검찰에서는 대장동 사건으로 여럿을 이미 구속했다.

그런데 나는 고발 사주로 아직 한 명도 구속하지 못했다.

물론 구속이 범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범법행위에 대한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을 때 가능한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화천대유를 수사하는 검찰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공수처는 아직도 공수, 즉 빈손이다.


아, 유일하게 기소한 사람은 박지원 국정원장이다.

박원장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사과했다.


사실 사건의 처음은 뻔해 보였다.

손웅 검사가 지난해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재직 당시 정책관실 검사들에게 범여권과 언론인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근거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손 검사는 이 자료를 국민의힘 김웅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송파갑 후보)에게 보내 고발을 사주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를 받았다. 그리고 고발장 전달에 윤석렬 후보가 관여되었는지가 관건이다. 연관된 사람도 둘 뿐이다. 그 과정에 이상하게 엮인 박지원 원장도 일단 입건하고 수사에 들어갔지만, 정작 본래 사건관계자는 입건하지 못했다.

그럼 우선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박 원장 수사부터 하면 어떠냐고?

설마 내가 그러겠어? 아직 박 원장은 선거가 끝나고 다음 공수처장에게 넘기는 게 내 신상에 좋을 듯하다. 아닌가? 명명백백하게 해야 하는데 뻔하고 본인도 인정한 사건을 흐지부지 넘기는 것도 정치 개입이라고? 음, 그건 고민해보자고.


자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발 사주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야지, 아암~ 해야지.

그런데 더 무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사건관계자가 손웅과 김웅, 단 둘뿐인 사건을 우리가 달려들어서 벌써 2달째이다. 뉴스버스가 9.2일 최초 보도하고, 우리가 9.10 김웅 의원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려고 했다. 그 이후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아직 확실한 트리거 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했다. 엉뚱한 박지원 국정원장의 범법행위를 찾아냈을 뿐 더 이상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는 화천대유 수사하는 검찰이 부럽다.

화천대유 사건은 제보자, 증인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거기다가 기자들이 어떻게 자료를 구했는지 끊임없이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그 기사의 자료들은 분명 검찰이 내보낸 것보다는 기자들이 어디선가 제보를 받았음이 분명하고, 그 제보를 근거로 취재해서 보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왜? 고발 사주에 관한 기사는 더 나오지 않는 거지?

내가 도와주면 되지 않냐고? 그러고 싶지! 백번 천번이라도 그러고 싶은데, 사실 나도 그럴 수가 없거든. 그럼 기자들이 취재해서 ‘고발 사주’에 대한 심층보도를 하면 공수처도 도움이 될 텐데 왜 이쪽 기자들은 그걸 못하지?


기자들을 왜 이쪽저쪽 가르냐고?

몰라서 묻나?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진도는 나가지 않고, 사건 종결시킬 수는 없고.

뻔한데 두 사람만 족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나름 노력하는데 잘 안되거든.

그럼 사건 종결하라고? 그럼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해보라고~

좌파가 날 믿겠어? 우파가 잘했다고 하겠어?


그리고 이건 내 마음대로 시작한 것도 아니니, 내 마음대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

어쨌든 선거가 계속되는 한 수사도 계속돼야 하고 뭔가 있는 것처럼 보여주어야 해.

그럼 뭐 할 수가 있는 게 있겠어?

계속 김웅하고 손웅을 검찰로 시계 부랄 오가듯이 불렀다 내보내는 걸 해야지.

그러면서 사진은 계속 찍어서 언론에 내보내고.


언젠가 증거가 나올 거야,

아~암~ 그때까지 부지런한 척해야지. 뭔가 하는 척해야지. 뭔가 있는 척해야 해.


그러다 증거가 나오면 난 내 밥값 한 거고, 아니면 ‘죄송합니다!~’하고 그만두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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