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역 유망품목 : 반자동 기계
기계하면 우리는 무슨 기계를 상상할까?
잠실운동장만한 공간에 사람은 별로 없고 쇠로된 기계가 차악착~ 하면서 제품이 타악탁 쏟아져 나오는 기계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 기계를 움직이는 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사람 값이 한달에 100만원하는데 기계가 1억을 들여서 기계를 사서 쓴다면 사람 쓰는게 훨씬 운영비가 덜 든다. 기계를 쓰면서 전기 값, 부품 값, 고장나면 세우고, 기술자 불러서 고치고, 그냥 고장나고....... 그런 고가의 기계를 사서 완전 자동화했을 때, 기계중 한 부분이 서버리면 공장 전체가 스톱한다.
하지만 사람을 쓰면 유연성이 훨씬 높다. 특히나 우리 한민족처럼 똑똑한 사람을 쓰면 상황에 대한 대처가 다른 나라 사람을 쓰는 것보다 능률이 높고, 웬만한 기계보다 낫다. 하지만 한국인 세계에서 가장 자동화 기계를 많이 쓴다. 그건 또 다른 문제이다. 현대 자동차가 그런 사례 중의 하나이다.
내가 경험한 화장품 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화장품은 생각보다 다품종 소량생산 품목이다. 악세사리, 문구용품, 공예용품, 신발 등등이 전형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품목이다. 샘플을 많이 뿌려야, 본 제품이 많이 팔린다. 이런 사업에서 모든 공정을 완전 자동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완전 자동화 기계를 사용하면 하루에 4-5만개의 완제품이 나온다. 기계가 1억인데 완제품이 나오는 총액이 3-4억원어치가 나온다. 완전 자동화된 기계는 교실 하나를 차지하고 10억원하고 땅값만 2-3억어치 차지하고, 공장 짓는데 3-4억 들어간다. 하지만 반자동화 기계는 책상만한 공간이면 천만원짜리 기계를 넉넉하게 들여놓는다. 기계 한 대, 사람 한 명. 북한에 들어갈 사업은 바로 이런 기계 한 대, 사람 한 명이면 될만한 품목이 많다. 우리 70년대를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사람을 많이 썼는지를 계산해보면 된다. 노동집약적 산업이 북한에 맞는다. 고도화된 소비재일수록 자동화하기가 어렵다. 명품 가방, 옷일수록 한 땀 한 땀 손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여전히 명품은 중국이 아닌 이태리에서 나온다. 염색하는 물이 좋고, 사람 손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생산해서 유럽에 한 켤에 5만원했던 비단 양말도 그랬다. 비단 양말 오더를 받으면 기술자는 그 양말을 만들 기계를 세운다. 그리고 영점을 잡는다. 이전에 싸구려 양말 (한 켤레 1만 5천원짜리)을 만들기 위해서 잡아놓았던 수치를 다 지우고, 비단 양말에 맞는 수치를 다시 넣는다. 그건 그 날의 습도, 온도, 기계의 바늘강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늘 한던 수치대로 하면 안된다. 그리고 기술자는 손을 딱고 로션을 바른다. 손이 까칠하면 비단 양말이 매끈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색상이 바뀌는 부분은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묶는다. 그래야 구멍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한에서 만드는 제품은 그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을 저렴한 임금을 잇점으로 삼는 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손 재주를 활용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반제품은 기계에서 나오더라도 기계가 대체 못하는 아주 세심한 부분은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제품이 바로 명품이다. 그런 기계는 매 제품마다 기계 자체를 수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조악한 제품을 북한 동포의 세심한 손으로 마무리하면 명품은 바로 한반도에서 나온다.
10억짜리 명품기계도 좋지만 1천만원짜리 반자동 기계도 남북교역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