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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Sep 24. 2024

오늘도 살았는데, 내일도 못 살겠어?

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오늘도 살았는데내일도 못 살겠어


'완치하여 전염력이 없다'는 등원 가능 확인서 없이 등원 불가.

이번 전염병의 주인공은 수족구. 


아이가 수족구에 결국 걸렸다.

지난주부터 어린이집에 유행하여, 아이의 옆 반은 전멸하여 등원 0명 기록했다는 소문에.

우리 아이도 시간 문제겠구나 싶었지만 막상 걸리고 나니 내가 휴가가 몇 개 남았더라 걱정이 됐다. 

3일의 휴가를 내고 가정보육을 시작했다. 이로써 나의 올해 휴가는 2일 남짓 남았다. 

다 쓰고 모자라면, 또 내년 휴가에서 당겨와야지. 내년은 내년에 내가 알아서 하겠지 마음을 먹는다. 

수족구는 기본적으로 입에 궤양이 생겨 밥을 잘 먹지 못하니. 아이는 잘 먹지도 않고, 짜증은 는다. 그러나 워낙에 수족구에 대한 흉흉한 괴담을 많이 들은지라 곡기를 끊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고, 손발에 궤양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기로 맘먹었다. 

그렇게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와 집에서 씨름 하고 있던 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암이시라네“


암. 그것도 말기. 

다른 기관에 전이가 많이 된 상태.

수술 불가 가능성이 높음. 


인생은, 비가 올 때 비를 피하는 게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아직 인생을 배우려면 멀었나보다. 

춤은 도저히 못 추겠고, 앞을 보고 걸어가는 것만도 최선이다. 

물론 나의 육아기 이후의 인생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후배가 물었다. 


"과장님은 아기 낳고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 

"매일요. 매일 행복해요”


이게 내 진심. 

매일 행복한 순간이 있다. 

아이가 코끝에 대고 달큰한 숨을 쉬어 댈 때, 어찌 저리 좋을까 싶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을 때, "엄마 이뻐. 엄마 좋아. 나는 엄마꺼. 엄마는 내꺼"라며 예쁜 말만 골라 할 때.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순도 100퍼센트의 행복이 있다. 


하지만, 후배가 만약 "아기 낳고 언제가 가장 힘든가요?"라고 물었다면..

"매일요. 오늘아침도 힘들었고요 퇴근 후도 힘들 예정"이라고 대답했으리라. 

매일 행복한 것도 사실, 매일 힘든 것도 사실.

이 두 가지 감정이 썰물 밀물처럼 매일 같이 내 마음에 왔다 갔다 하는 게 진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네 명의 도우미 선생님을 구하고, 두 번의 단축근무를 하며 복직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간동안 내가 깨달은 건 결국‘나를 돕는 건 나’라는 점.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이 진실의 장점은 주도권과 통제권이 내게 있다는 것. 

이 진실의 단점은 나는 전방에 서있고, 나를 제외한 조력자들은 후방에 서있으므로 결국 맨 먼저 파도를 맞고 대응해야 하는 것도 나라는 점. ‘전방근무 이상무’라는 일차 대응이 완료돼야 후방근무자들이 대기라인에 설 수 있다는 것. 


어제 잠들기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오늘 힘들었잖아?

아 진짜 이렇게 힘들어도 살 수 있는 거야? 하는 순간을 살아냈잖아?

근데 뭐 내일 못 살겠어?

그래, 오늘도 살았는데,

내일도 살겠지. 


내일이 또 오늘이 돼서 행복한 순간도, 힘든 순간도 지나가겠지. 

그리고 다시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 내가,

내일을 살 수 있는 내가 돼 있겠지.

그렇게 나는 최선을 다해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겠지. 

신이 아닌 모든 워킹맘, 워킹대디의 오늘과 내일을 응원한다. 

 

TIPS_등원 가능 완치소견서

전염력이 강한 전염병의 경우 어린이집이나 유친원 등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는 걸 ‘지양’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가정보육’을 권한다. 따라서 완치 이후 다시 등원을 할 경우 ‘완치소견서’를 제출해달라는 보육시설이 대다수다. 

나도 이 ‘완치소견서’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수족구 발병 후 일주일이 지나 완치소견서를 떼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병원 의사 말에 의하면 애초에 수족구라고 하여 등원을 해선 안 된다는 법이 없고, 따라서 완치소견서는 있는 게 아니며, 그냥 갈 때 돼서 가면 되는 거라고 한다. 실제로 찾아보니 완치 확인서는 법적 양식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실제로 병원에서 수수료를 받고 의사 소견서를 첨부해 주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병원마다 다르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마다 다르기에 애초에 완치소견서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사전에 병원에 문의하고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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