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욱하기 전 네 가지 질문
나는 본래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엄마가 되어야지’하는 이상향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된다면, ‘이런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건 있었다. 바로 '욱하는' 엄마다. 그런데 실제로 엄마가 되고나니 욱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그래서 나는 육아하다가 '욱(하는 육)아'를 하지 않기 위한 조언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조언을 읽을 땐 고개를 끄덕일 여유가 있었지만, 막상 욱이 올라오는 현실에선 잘 적용되지 않았다. 결국 욱-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너무 싫어 후회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양치를 하다 생각했다. 아이에게 주도권을 줘선 안 된다.
내 화(火)도, 내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육아나 양육의 방법에서만 찾으면 안 된다. 내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화는 그냥 내 화이고, 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주체는 내가 되고, 그 상황에서 주도권도 내게 있다. 나는 어른의 한사람으로서 내 스트레스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아닌 그냥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그게 먼저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안해 낸 네 가지 질문이 있다.
첫 번째 질문,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가?
화가 내 가슴속에 스며들 때 구원받기 위한 방향을 알려주는 질문이다. 내가 행복한 시간, 공간, 상황, 경험 등 아주 구체적일수록 좋다.
내가 행복한 순간 하나.
오전8시. 바리스타와 나를 포함한 고객 1~2명만 있을 뿐인 카페.
평소 보고 싶던, 읽어야지 했던 책이나 포스팅을 본다.
꽃향과 산미가 가득한 에티오피아 구지 G1 모모라 내추럴 원두를 고른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담백한 맛의 플레인 스콘 한 조각을 곁들인다.
아, 행복해.
내가 행복한 순간 둘.
오후 8시.인헬(inhale) 엑스헬(exhal) 공기반 소리반이 가득한 요가원.
선생님의 저음 보이스와 사람들의 들숨날숨 소리만 가득하다.
평상시 잘못된 습관이로 내 몸이 얼마나 굳었는지를 체감하며 ‘아우 시원해. 살거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쭉쭉 몸과 마음을 펴내는 빈야사 요가 수련을 마치고, 마침내 찾아온 사바사나(송장자세) 시간. 하아, 명치끝까지 시원한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는다.
아, 행복해.
이렇게 나는 나의 행복 모먼트를 적어본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고 비용을 들이는 건 빈도수가 높지 않은 행복들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순이므로 내가 자율적으로 정하되 비용이 적게 드는 행복 모먼트들을 일상에 포석해둬야 한다.
두 번째 질문, 나는 언제 불행한 사람인가?
최대한 나의 불행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불행을 가급적 관리하기 위한 질문이다.
나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그리고 상황통제가능성이 높은 걸 선호하는 사람이다.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대략 계획을 잡고, 가능한 시간 안에 과업을 마치는 게 편한 사람. 세세한 계획은 나에게 스트레스지만, 개괄적 개요는 내게 안정감을 준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안 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들이 볼 때 티가 날정도의 강박은 아니지만, 대개 나는 목표한 대로 이루는 삶의 빈도가 높았기에 그렇지 않을 경우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세 번째 질문, 나는 왜 그런 사람인가?
내 안에 존재 하는 ‘내면의 아이’와 대면하기 위한 질문이다.
내속에 덜 자라난 아이, 내면의 작은 아이는 왜 그렇게 컸을까. 나의 어머니는 시간에 대한 강박이 강했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오늘 준비물을 전날 일찍 말하지 않은 경우 엄청나게 혼이 났다. 이정도로까지 혼날 일인가 떠올려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혼이 났다.
계획 되지 않은 친구 집 방문 혹은 친구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됐을 것이다. 사전 고지, 시간 관리에 예민한 사람.
반대급부로 자율성이 보장되는 시공간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마지막 질문,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 사람인가?
이 질문의 방향성을 위한 질문이다. 결국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기 위한.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덜 욱하고, 덜 화내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덜 욱하고, 덜 화내고, 더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으니까.
위의 질문들을 조합해보면, 육아는 마음대로 되지 않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므로 나는 스트레스와 화를 쉽게 낼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의 행복을 위해 요가원으로 뛰쳐나갈 수도 없고 물 한잔 먹을 시간 없는 아침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볼 수도 없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지극정성으로 키운 게 확실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욱과 화도 엄청났다. 나는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커왔다. 따라서 내가 욱하는 상황에 노출됐을 때 나 역시 부정적 감정을 아이에게 그대로 표출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과연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운가?
우연히 알게 된 명상법 중‘건포도 명상법’이 있다.
1. 건포도의 색깔과 질감을 관찰하고, 향을 알아차린다.
2. 건포도를 입에 넣고 씹기 전 혀로 질감을 느껴본다.
3. 건포도를 살짝 씹어보고 겉과 속의 맛과 질감을 느껴본다.
4. 천천히 씹어 먹으며 건포도의 맛과 느낌을 모두 알아차린다.
(긍정심리학 마음교정법)
건포도라는 매개체를 통해 산만해진 생각과 감정을 잠재우고, 나 자신의 감각을 알아차리며
불필요한 감정과 화를 걸러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건포도 명상법에 착안해서 나도 ‘비타민 명상법’을 고안해봤다.
보통 3살 이후의 아이들은 소아과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비타민의 세계를 맛본다.
로보카 폴리 비타민, 뽀로로 비타민, 까투리 비타민 등 각종 캐릭터로 포장된 엄지손톱 크기의 비타민 사탕이 많다. 그래서 웬만한 애기 키우는 집에는 비타민사탕이 한 가득이다.
비타민은 아이뿐 아닌 엄마도 자주, 손쉽게, 많이 접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나의 가정은 이렇다.
지금 아이가“밥을 안 먹고 놀겠다”“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마트에 가서 간식을 당장 사고 싶다”등의 말을 한다. 혹은 울음이나 떼쓰기를 시전 한다. 대개의 경우 엄마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해야 할 일이 있고, 아이의 말투나 행동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본다.
<비타민 명상법>
1. 비타민 통에서 비타민을 하나 골라 꺼내본다.
2. 비타민 포장지의 캐릭터를 관찰하며 포장지를 벗겨본다.
3. 비타민C 또는 비타민D의 향을 알아차린다.
4. 비타민을 입에 넣고 혀로 질감을 느껴본다.
5. 천천히 씹어 먹으며 비타민의 신맛, 달콤한 맛을 느껴본다.
비타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극도로 흥분되거나 짜증나 있는 내 감각에 잠시 시간의 지연효과를 준다. 그리고 비타민은 어쨌든 달콤새콤한 맛이고, 이를 씹어 먹는 작용을 통해 기분이 전환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고 나서 말한다.
“그건 안 되는 거야. 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안 돼. 지금은 A보단 B를 해보면 어떨까?”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훈육에서 중요한건 태도니까.
나의 말투와 어조엔 내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간다. 이때 비타민 명상타임을 통해 나의 감정과 태도에도 비타민을 투여하는 거다.
사실 아기용 비타민 사탕 1개를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안 걸린다.
그래도 그 1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 것이다. 1분은 60초다. 화가 났을 때 속으로 1에서 60까지 세는 건 꽤나 긴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비타민을 씹어 먹으며 나와 아이에게 독이 되는 감정과 생각을 같이 씹어 먹자.
물론 외출할 때도 비타민은 필수품이다. (아이가 아닌 엄마를 위해)
나는 이 네 가지 질문을 거쳐, 욱하는 빈도를 줄이고 내가 나의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욱할 때는 많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욱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보단 조금 어른이니까, 조금 덜 욱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비타민 사탕을 하나 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