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자유의 여신은 운동을 한다
복직하며 내게 약속된 주2회의 힐링, 필라테스. 아이를 향해 굽어있던 몸과 마음을 좀 펴고자 내가 선택한 시간이었다.
얼마 전 회사동료가 “주2회 필라테스로 효과가 있냐”고 물어왔다.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전혀. 식단 없이 주2회 필라테스로는 효과가 없다.
그러나 매일 레깅스를 입고 거울에 선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효과가 있다”
나의 답이다.
우연찮게 주말에 만난 친구도 “점심시간을 쪼개 필라테스를 하는 게 가능하느냐”고 물었다.
"가능은 하지. 엄청 급박하게. 몸도 마음도 긴박하게 움직이면.
너도 알지만 신체발부의 자유! 안기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하는 귀엽지만 무거운 존재 없이 신체발부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잖아. 절대사수 해야지!”
필라테스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거울에서 팔다리를 움직이는 나를 보고 있으면‘개인’으로서의 내가 보인다. 내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나. 거울 속 내 뱃살이 접히든, 발바닥이 갈라졌든, 팔뚝 살이 덜렁이든‘있는 그대로 나’를 보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일상에서 얼마 없다. 얼굴만 좀 보고, 옷 입은 태가 어떤지를 슬쩍 보는 정도? 그러니 우리 발가락까지 정수리까지 바라보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그리고 필라테스는 나를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행위다.
비록 출산 전과 달라진 몸이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같이 갈 몸이니까, 비록 골반이 불균형하고 갈비뼈가 비대칭이어도 내 24시간을 버텨주는 몸이니까, 필라테스 선생님의 말처럼 매일 노력하는 1도 1미리의 변화가 중요한 거니까. 주2회, 100분 동안 바른 몸의 정렬로 변하려는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사실은 몸이 아닌 이런 마음이 필라테스를 하는 시작과 끝이다.
그래서 복직하고 필라테스를 등록했고 가급적 회식, 출장, 연차를 제외하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석했고,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 나는 1년 6개월 동안 이 시간을 지키고 있다.
내가 듣는 필라테스 수업은 고정 선생님이 계신데,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 선생님이다. 나보다 쉽지 않은 육아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언제나 애교 넘치는 분위기도 가득한 분이다. 본인의 볼록 나온 배를 보여주면서,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시는 분. 그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과정’이다.
“회원님, 필라테스는 과정이에요. 결과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알고, 내가 낼 수 있는 힘을 바르게,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해요”
복부에 힘을 줘서 다리를 올려야 하는데 그저 다리를 높이 올리는데 몰두하여 허리를 쓰면 허리만 아프다. 등 뒤에 힘을 쓰려고 팔운동을 하는 건데, 무조건 팔을 쓰려고 승모근까지 동원하면 어깨만 아프다. 결국 필라테스는 내가 누를 수 있는 만큼, 내가 들 수 있는 만큼, 내가 뻗을 수 있는 만큼 제대로 내 몸을 움직이는 연습을 한다.
그러고 보면 필라테스는 우리 삶과도 맞닿아 있다. 일상에서 내가 쓸 수 있는 힘, 내가 영향일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객관화 하는 것. 그것만큼 힘들지만 필요한 초능력이 없지 않은가. 일부러 힘으로 찍어 누르다가 관절이 나가고 근육이 찢어지는 것처럼, 매일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일부러 억지로 하다가 잘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목표만 보고 달려가다가 의미가 퇴색하고, 번 아웃이 오는 경우도 많다. 자분자족의 인지능력을 그래서 나는 필라테스 하면서 배운다.
내가 수업 때 자주 하는 동작 중 하나로 엘리펀트(elephant)가 있다. 이름 그대로 코끼리 자세인데, 나는 처음에 이자세가 '코끼리처럼' 등을 구부려 덩치가 커보이게 하는 동작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엘리펀트요? 코끼리가 되라는 말이 아니에요. 코끼리가 내 가슴 밑을 통과할 만큼의 공간을 만든다는 뜻이에요. 쉽게 말해 내 몸이 터널이 되는 거죠. 코끼리가 들어갈 만큼 크고 높은 터널요."
나는 스스로 몸집을 키워 크고 무거운 코끼리가 되려했는데. 그만큼의 공간을 내 몸으로 만들어내라는 거였다.
올해 교통사고가 있었다. 내가 살면서 몸으로 느낀 가장 큰 충격의 사고였는데 그 충격이 곧 내 전신을 점령하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그 사고 당시야 당연히 그리 인식될 수 있는데 사고 이후에도 나도 모르게 그 사고가 곧 나인 것처럼 생각이 되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의도치 않게 어떤 사건, 사고,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그 사건이나 사고 등이 마치 곧 나인 것처럼 그 상황에 압도되거나 잠식되곤 한다. 특히 부정적 사고나 감정은 긍정적 사고나 감정보다 힘이 세서 평소에 긍정적인 사람도 스스로를 상황에서 분리해내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의식적으로 그 상황과 나를 분리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교통사고 이후 엘리펀트 동작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이 반드시 나를 지나야만 하는 코끼리라면, "너 절대 못 가!" 하고 버티지 말고 혹은 마치 그 코끼리가 나인 것처럼 착각하여 나를 먹이로 내어줘 코끼리의 몸집만 더 키우지 말고. 그저 나를 통과하여 무사히 지나가게 놔두자고.
평소보다 힘들고 무거운 일이 발생하면, 평소보다 더 크게 가슴을 열고 평소보다 더 길게 숨을 쉬고, 평소보다 더 높이 하늘을 올려다봐야 한다. 코끼리가 나를 통과해 갈 수 있 수 있도록.
이렇게 나는 필라테스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지킨다.
TIPS_필라테스 Q&A
Q1. 필라테스는 유연해야 할 수 있나요?
원래 유연한 사람이 더 유연해지려고 필라테스를 하는 경우는 없다.
필라테스는 본래 체형교정과 체력강화를 위해 고안된 교정운동이다.
모든 운동에 유연성과 근력이 필요한 것처럼 필라테스도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원래 유연한 사람은 유연함을 컨트롤 하고, 근력을 강화하는 목적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다. 반면 원래 유연함이 없는 사람은 필라테스를 통해 근육을 길게 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원래 잘하는 걸 더 잘하는 것보단 원래 못하는 걸 할 수 있게 되는 희열감이 더 크다. 그러므로 당신이 유연하지 않아서 필라테스를 안하고 있다면, 이제 반대로 생각할 때다. 지금이 적기! 라고.
Q2. 필라테스 하려면 날씬해야 하지 않나요?
우리 필라테스 선생님은 아기 둘을 낳고 늘어질 대로 늘어진 뱃살 보유자다. 심지어 회원들 앞에서 그 뱃살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여주신다.
그런데 그 효과가 뭔지 아는가? 사람은 생각보다 꽤나 시각적 동물이다. 배꼽에 힘을 빼고 허리를 과신전 시킨 충격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나는 이제 내배꼽을 의식한다.
배꼽에 힘을 주지 않으면 뱃살이 무너져 흘러내리게 한다는 걸 본 후로 나는 서있을 때마다 의식하게 됐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처음부터 날씬하고 예쁜 몸이었다면 순간 선망은 했겠지만, 나의 일상에 이다지도 큰 영향을 주진 못했을 거다. 필라테스는 날씬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고, 날씬한 몸이 바른 몸도 아니다. 필라테스는 바른 몸을 위해 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필라테스 수업에 실제로 가보면, 인스타그램에 넘쳐나는 몸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걱정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