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주1회 브런치 하는 여자
“자기야, 그러다가 광화문 광장 가겠어!”
1년 6개월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 후 소화불량이 잦았다.
아니, 정확히는 화병인가 답답증인가 먹는 것과 상관없이 명치끝에 소화가 되지 않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당시 내가 얼마나 부정형 인간이었는지는 내 말버릇에 여실히 드러났다.
나의 말의 첫마디가 “아니”였으니.
“아니, 애를 키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니, 맞벌이 부부한테 일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니, 내가 내 일 다 하고 애 키우는 건데 왜 내가 회사에서 눈치를 봐야 돼?”
지금 생각해 보면 맨날 이런 '아니 아니'를 들었던 남편도 피곤했겠다 싶다.
'아니'로 시작하는 말들은, 주로 내가 내상황을 인정하거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가 없을 때 나온다.
내 감정이 이성보다 엄청나게 앞설 때 덜컥- 하고.
아무튼 그때는 유독 왜 그런지 모르겠는 억울함이 쌓였고, 남편 말대로 어디 광장이라도 나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실제로 회사 내에서 운영하는 근로자 심리지원 프로그램 상담에서도 이런 마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선생님, 제가 이런 억울한 마음이 드는데. 이런 마음이 해소가 돼야 할 거 같아요. 이건 저한테 독이 되는 마음이잖아요.”
아이를 낳기 전과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후의 직장생활은 전생과 후생이라고 할 만큼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상수만큼 많았고, 당시 내가 쓸 수 있는 패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신경이 곤두섰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 상황에 대한 소화력이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나 혼자의 삶을 살아온 경력은 35년 차이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로서 산 경력은 2~3년 차, 워킹맘으로 살아온 경력은 채 1년도 되지 않았었다.
35년의 삶을 통해 내가 비로소 나 혼자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인데 당장 그와 같은 힘을 하나 더 달라고 떼쓰는 것이니 버거운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법.
그래서 내가 선택한 약은, 글쓰기다.
사람은 그러고 보면 인생의 궤적으로 볼 때 크게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심란할 때, 머리가 아플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쓰는 방법은 자신에게 가장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독 자신에게 잘 듣는 약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게 운동이었고, 두 번째가 글쓰기였다. 그런데 운동만으로는 내 안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한계가 있었기에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전에도 다음 Daum에서 운영하는 브런치 brunch라는 플랫폼을 종종 이용했는데 거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꽤 흥미를 느꼈다. 일반인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까지 삼수를 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절차가 있는데 두 번의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통해 결국 ‘브런치 작가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돌파구를 찾은 듯했다. 내 안에 쌓인 말들을 풀어낼 돌파구. 엉키고 설켜서 진짜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풀어낼 도화지. 그게 내겐 브런치였다.
지금도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쓴다.
그리고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이제 나는 '아니 아니'가 아닌 '맞아 맞아'를 많이 쓰려고 하고, 결핍은 성장의 원동력임을 믿는다.
실제로 브런치를 통해 라라크루라는 새로운 작가모임에도 가입하고, 쑥과 마늘이라는 하루습관 만들기도 시작했다. 워킹맘으로서의 결핍이 내 인생 전체에 성장 동력이 되었다.
나는 한 편의 글을 쓸 때 큰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을 잘 솎아내고, 풀어낼 말들을 상상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내 마음을 소화시키고, 축적된 말들을 소화시키고, 내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을 소화시킨다.
내게 글쓰기는 소화제다.
체한 거 같은 마음과 무겁게 눌려진 머리를 소화시키는 명약.
그게 내가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다.
분명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 워킹대디들도 소화제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운동, 여행, 독서, 수다 등 여러 가지 방법일 수 있겠지만 반드시 한 가지만은 상시 구비해 두라고 말하고 싶다.
가급적 손쉽게, 혼자서, 빠르게 할 수 있는 약으로.
일과 육아에 대한 열정으로 뜨거운 우리에겐 언제나 상비약이 필요한 법이니까.
Tips_브런치 작가되기
모름지기 남의 실패담이 나의 성공담이 되는 법이니 나의 실패담을 풀어보겠다.
첫 번째 브런치 작가 신청에 실패한 때는 쓰고자 하는 주제 자체가 모호했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앞으로 잘 써보겠다는 식의 기획안을 낸 것 같다. 일단 브런치는 주제성이 뚜렷해야 한다. 특별한 주력메뉴 없는 식당이 잘될 리가 없다. 뷔페식 브런치는 어느 정도 필력이 입증된 후에 가능하다.
두 번째는, 글의 진정성이 모호했던 것 같다. 공기업 직장인으로서의 에피소드와 조언 등을 쓰고자 했는데 사실 진짜 내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른 브런치를 살펴보니 직장인 에세이가 많고 있어 보여서 나도 따라한 듯하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그것도 진정성 있는 모방일 때나 가능하다.
결국 브런치의 성공은 '진짜 나'를 드러내는 일을 할 준비가 돼있느냐에 달렸다. 브런치 인기글만 봐도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낸 글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은 그런 글을 귀신 같이 알아보고 공감하며 응원한다.
진짜 내가 하고픈 이야기가 뭔지 솔직하게 드러내보자. 그리고 내가 그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써보자. 마지막으로 쓰자. 써야 내가 드러나고 나도 무슨 말을 하고픈지 알 수 있다. 그 글들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10편 정도 추천) 두드리자. 브런치 가게에.
열려라 참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