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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Sep 24. 2024

아이를 낳을지 고민인 후배에게

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지는 것을 염려하며 피어나는 꽃이 있을까?'


사람은 모순을 안고 사는 존재라서, 꽃이 질 것을 염려하며 꽃구경을 간다.

꽃이 지는 것을 걱정하는 건, 꽃이 아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뿐이다.

나무에 매달려 영롱한 빛깔을 뿜어내는 목련을 볼 때, '예쁘다'는 생각 뒤에 곧이어 따라붙는 생각은?


'아, 근데 목련은 금방 져. 길에 떨어지면 더러워지는데.'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지는 게 당연하고, 한번 핀 꽃은 한번 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아쉽고, 안타깝고, 염려되고. 그게 사람 마음이다.


문득 그런 생각의 말미에, 최근 후배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후배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고, 아직 아이가 없다.

그런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선배님. 저는 무서워요.

요새 학폭이니 뭐니 말이 많잖아요.

예전에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되면 얼마나 무서울까 싶었거든요.

근데요, 다시 생각해 보니 내 아이가 가해자면 더 무서울 것 같아요.

전 이런 게 무서워서 아이 낳기가 두려워요."


무슨 말인지 안다. 

왜 아니겠는가. 세상이 흉흉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세상은 더 위험한 것투성이다.


 "그렇죠. 피해자든 가해자든 너무 무서운 일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아마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도 감당할 자신은 없다.

그런데 ...

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걸 보기 두려워,

만개한 봄꽃 길을 눈감고 걸어갈 것인가.

꽃길만 걷자 해놓고, 꽃향기에 달라붙는 벌과 벌레들을 모두 쫓아버릴 수 있는가.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생기고, 벌과 벌레들 사이에서 꽃은 영구한 자생력을 갖는다. 


아이도 그런 것 같다.

아이를 바르게, 좋은 환경에서 키우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의 햇살과 바람을 내 아이에 맞게 조절할 수는 없는 노릇.

아이가 상처를 주거나 받을까 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건 사실 나의 오만이자 욕심이다.

아이가 주는 기쁨, 아이가 갖고 있는 희망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래에 있을지 모를 불안정성 때문에 현재나 미래의 희망과 기쁨을 포기하는 게 맞을까.

그 아이가 어떤 미래를 그려갈지를 모르는데,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나의 불안 때문에 꽃 피울 기회 자체를 안 주는 게 맞을까.


물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그 책임은 아직까지 개인에게 막중하므로 이렇다, 저렇다 누구도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

꽃이 지는 걸 두려워 꽃을 피우지 않을 순 없다.

꽃잎이 떨어지는 게 무서워 꽃길을 피해 다니는 사람이 있던가.

나 홀로 핀 꽃은 여유롭지만 무료하다.

햇살, 비, 바람을 혼자 맞고 혼자 버텨내면 된다.

나눠줄 것도 나눠 받을 것도 없으니.


함께 핀 꽃은 버겁지만 행복하다.

햇살, 비, 바람을 함께 맞고 함께 버텨내면 된다.

한줄기에서 핀 이상 그것은 숙명이다.


혼자 핀 꽃과 함께 핀 꽃 중 어떤 꽃도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꽃도 피기 전에 질 것을 염려하진 않는다.


꽃이 필 시기, 꽃이 내뿜는 향기, 꽃잎들의 시듦. 

그 어느 것도 돌봐주는 사람이 결정할 수는 없다. 


꽃의 운명은 꽃만이 안다. 



<빽없는 워킹맘 에세이>를 마치며. 


아이와의 아침 일정을 소화해내고 회사에 오면 또 새로운 이슈들이 쏟아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그 순간에 조급하거나 상황에 매몰돼 눈앞의 일이 ‘엄청나게 큰일’이 되는 경우가 줄어들었어요.

육아와 직장이라는 파도를 넘나들면서 꽤나 회복 탄력성이 높은 서퍼(surfer)가 됐거든요. 

그리고 퇴근 후에도 아이와의 여정을 또 준비해야 하기에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쓰는 법을 터득했어요. 

그래야만 길게 유지 할 수 있거든요. 직장에서의 역할도, 가정에서의 역할도. 


그래서 할 수 있는 거예요. 

매일 회사에서 퇴근하고 다시 집으로 출근 하는 삶을. 

절대 슈퍼우먼이나 원더우먼이 돼서가 아니죠.  

회사와 가정에서 넘실대는 파도에 가끔 넘어지고 다쳐도 다시 중심을 잡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이에요. 


일하는 엄마나 아빠는 회사와 가정에서 완벽함을 수행해야 하는 로봇이 아니에요. 

그냥 ‘굿모닝’ 하고 아침을 시작하고 ‘굿나잇’ 하고 저녁을 마무리하는 매일을 살 뿐이죠. 그렇게 ‘굿데이’가 모이고, ‘굿라이프’가 되는 거예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혹은 그러한 미래를 점쳐보는 여러분의 굿모닝, 굿나잇, 굿데이, 굿라이프를 모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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