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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Oct 04. 2024

새벽 2시의 공포육아

찌지직-


눈을 들어 침대를 보니 아이가 앉아있다.


"자야지? 왜 앉아있어? 얼른 자"


아이가 그래도 미동이 없다.


"이거 봐"


아이의 말에 침대 시트를 봤다.


나는 긴급하게 불을 켰다.


시뻘건 피가 하얀 침대시트를 적셨다.


아이의 발과 손톱의 끝까지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랬어?"


내가 본 공포영화 중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다.

내 아이의 팔다리에 핏자국이 가득하고 침대 위와 벽까지..


나는 호출벨을 눌렀다.

응답이 없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혼자 두고 병원복도를 지나 간호사 데스크까지 뛰어갔다.


"225호요! 빨리요!

아이가 혈관주사를 뽑았는지 피가 가득해요!"


지난주부터 열이 쉬이 내리지 않아 주말아침 아동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었다.

결과는 폐렴소견.

입원치료가 권장이라 어쩔 수 없이 엄마입장에선 군대만큼 가기 싫은 아이와의 입원행을 택했다.

첫날은 그럭저럭 컨디션이 괜찮았는데,

그날 새벽부터 아이는 잠에서 자주 깼다.

간호사 선생님이 체온과 혈관주사를 확인하러 3번 정도 들른 걸 제외하고도 10번 정도는 깬 것 같다.


"집에 가고 싶어. 불편해."


아이는 잠꼬대를 많이 했다.

혈관주사를 인지가 생긴 상태에서 꽂아본 게 거의 처음인지라 주사를 맞을 때 쇼크 때문이었을까?

어른도 불편한데 아이에겐 링거 끈이 감기고, 움직이지 못하는 손가락이 당연히 힘들었을 테다.


둘째 날 아침부터 아이는 제2의 인격체가 돼있었다.

모든 말에 부정, 예민, 까탈. 밑도 끝도 없는 주장과 예민함의 끝.

덩달아 엄마아빠도 달래 보았다가, 화도 내 보았다가, 포기했다가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둘째 날 새벽 그 사달이 난 것이다.

간호사선생님은 크게 놀라지 않으셨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인지..


 "잠결에 뺐나 보네요. 어머님, 우선 아이 진정시켜서 재우세요. 혈관주사 빠진 자리에 스티커 붙여주시고요. 시트는 다시 갖다 드릴게요."


"그런데 선생님, 4살 아이가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는데 괜찮은 거예요?"


사실 나로선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몸에 이렇게 피가 많이 묻어있는걸 처음 봤으니 트라우마가 생길 듯했다.


"혈관주사라 그런데 보이는 것만큼 많이 흘린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가 손과 다리에 묻은 피를 닦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 시트를 뺀 후

남편이 가져다준 이불과 침낭을 바닥에 깔고 아이와 함께 누웠다.


"괜찮아. 놀랬지? 괜찮아. 엄마랑 같이 자자."


혼자 자는 게 익숙지 않은 아이에게 여러모로 스트레스 요인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슴 위를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목이 뜨거웠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엔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가 혼자 자다 일어나 칭칭 감긴 손목 보호대를 모두 풀고, 혈관주사를 뺐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다 보니 빠진 걸까, 아니면 정말 직접 다 풀어낸 걸까.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첫날 새벽보다는 잠을 잘 잤지만, 한바탕 새벽의 소동이 있었으니 여전히 피로가 역력했다.

다행히도 아이의 증세가 빨리 호전돼 유례없는 일이라며 2박 3일 만인 아침 일찍 퇴원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입원 중 계속 마트에 가고 싶고, 장난감을 사고 싶다고 해서 퇴원 길에 마트에 들러 장난감을 사줬다.

퇴원했으니, 아이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날까진 제2의 인격이 견고했다.


나는 너무 이상해서 폐렴약의 모든 성분을 검색해서 혹시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닌지 알아봤다.

몸은 나아졌는데, 정신이 이상해진건 아닌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보통 입원 후 스트레스 때문에 짜증과 떼가 늘어난다는 말이 많았다.


그렇게 마이코플라즈마라는 폐렴세균은 엄마의 뇌에도 침범했다.

내가 낳은 아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 순간, 세균이 침범했다.


'혼자 사는 게 역시 편했겠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정말 내가 죽어가는 일이다.

내 자유 의지, 내 젊음, 내 생동감. 지금 내 몸과 마음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으니.. '


육아휴직 때도 가끔 느낀 감정이었다.

아이는 물론 너무나 예쁘고, 대신 죽을 수 있을 만큼 소중하지만 예쁜 것과 힘든 것은 별개였다.

그냥 독립된 개체인 나와는 이별하는 일이니.


쌀쌀한 가을바람에 커피 한잔 할까 호로록- 따위와 이별하는 일.

메뉴판을 느긋하게 보며 이거 하나, 저거 하나 시켜서 나눠먹을까-따위와 작별하는 일.

오늘은 좀 피곤한데 집에서 뒹굴거려야겠다-따위와 안녕하는 일.


그렇게 아주 사소한 자유들이 조금씩 새어나가다 보면, 내 정신이 시들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육아란 그런 것이다.

후회하진 않지만, 분명 가끔은 그럴 때가 있음은 사실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유의지에 기반하기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내가 원하는 때에 자고 일어나지 못하고,

바람이나 쐬어볼까 홀가분히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것.


다행히도 아이는 하루 14시간씩 자며 컨디션을 급속도로 회복했고,

나의 말도 안 되는 기우와 달리 정신도 멀쩡했다.

엄마인 내 정신만 왔다 갔다 한 것.


이번 일을 겪으며 나보다 더한 상황에 있는 엄마들은 얼마나 자신의 영혼을 삭이고 체력을 갈아 넣어가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돌이켜봤다.


그러보면 육아는 홍어 같다.

몸에 좋다지만 삭힌 홍어를 먹는 것은 웬만해선 적응되지 않는 일.

하지만 한번 입문하면 자꾸 생각나고, 중독되어 버리는 일.


어느새 10월이다.

황금연휴를 앞두고 어디를 놀러 갈까만 가득했던 내 머리에 휴지기가 찾아왔다.


나와 남편은 어쩌다보니 9월 마지막주에 휴가를 번갈아 썼다. 

그리고 10월의 첫날, 겨우 출근해선 쏟아지는 업무를 쳐내기 바빴다.

오랜만에 하는 출근에 가슴이 설렜다. 

일상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쳇바퀴를 굴릴수 있음에 감사했다. 


일상에 감사하는 것,

일상을 벗어나야만 깨닫는 진리이지만 그래도 잊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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