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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살아내는 게 성공

by 카르멘
세상엔 성공과 실패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세상에 실패는 없어요.
그냥 성공과 과정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 안돼도, 괜찮아요.
과정인데 뭐?
끝까지 살아내는 게, 성공이에요.
(코미디언 조혜련, 김미경 TV)



유독 바쁜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올 연말 운이 좋은 건지, 돈복은 없어도 명예복은 있는 편인지 좋은 자리가 꽤 있었다.


그래도 올 한 해 가장 보람 있게 바쁜 순간을 꼽자면, 바로 이날이다.

가족친화업무로 여성가족부장관 표창을 받은 날.


워킹맘으로 지난 복직 2년의 과정이 하루도 쉽진 않았다.

특히 복직 후 1년 간은 눈물 젖은 빵은 못 먹어봤지만, 눈물 젖은 핸들은 꽤 많이 잡았다.

오늘 내가 무사히 출근해서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을까, 그것만을 소망한 날도 많았다.

추운 겨울엔 출근 후 따뜻한 라테를 식지 않은 상태로 끝까지 마시는 것, 그것이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내가 잘못한 일은 없고 그냥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것뿐인데, 그게 나의 핸디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엔간 회사에서 들려오는 기막힌 소문에 고용노동부 민원신청 절차를 찾아보기도 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주책없이 목구멍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간 여러 사건과 감정의 희비가 진득하게 나의 신경 사이사이를 메워왔지만,

올 한 해 가장 보람 있던 순간까지 나를 데리고 온 것도 바로 그 진득한 희비의 감정들이다.


내가 그 감정을 모두 버리기로 했다면, 그냥 그 모든 상황에서 나를 제외시키고자 했다면 오늘의 순간에 나는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워킹맘이라 삶이 힘든 건 아니다.

삶은 원래가 힘들었고, 힘든 게 당연한 과정이다.

20대 때, 미혼일 때, 30대 때, 기혼일 때, 아이가 태어나고, 복직하고 모든 때마다

그저 고민의 주제, 개수, 무게가 달라질 뿐이다.


다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한 가지 낚아 올린 진실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

내가 어떨 때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덜 불행한 사람인지 아는 것뿐이다.


결국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한다.


삶의 선택의 순간에 흑백이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흑백이 뚜렷하다면 그건 택일 일 테니까.


다만, 나는 그 순간마다 무엇이 나에게 49이고 51인지를 살펴봤다.

그리고 단 1~2 퍼센트가 높은 쪽을 선택했다.

겨우 1~2퍼센트 높은 쪽을 알아내는 일.

딱 그 물 한 방울의 차이가 컵에 물을 넘치게도 하고 비어있게도 하는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고 복직 후엔 마음에 드는 답안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선택하는 걸 포기하지 않으면 그 선택이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던 길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받았을 때는 믿었다.

"인생의 경로는 정해진 길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해 가면서 만들어진다"는 신의진 교수님의 말을.


그러다 보니 오늘에까지 왔을까.

사실 내가 필요로 하여 여러 가족친화 복무사례를 찾았고, 검토를 했고, 또 다행히 시대의 흐름을 잘 타서 좋은 제도를 생각보다 빨리 도입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인정을 받는 자리에 왔다.


만일 내가 고비의 순간마다 선택하기를 포기했다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는 걸 택했다면,

그 많던 고민이 사라졌을까.


나는 아마 또 다른 인생의 경로에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또다시 서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그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는 많은 워킹맘들이 있다.

올연말 더더욱.


나는 그녀들도 무엇을 선택하든 조혜련 님의 말처럼 우리가 '과정'에 있음을 알길 바란다.

그저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 인생에 유일한 성공이고, 잘 살아내기 위해 그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올해 마지막날까지 목구멍 뜨거운 날보단 심장이 따뜻한 순간이 2퍼센트만 더 많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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