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대화 6>
"지금 이제 갈 시간이야.
똑바로 앉아서 옷 입어야지. 빨리."
"엄마, 빨리핑이야?"
"빨리핑?"
"응, 맨날 빨리빨리 서두르는 애, 빨리핑말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엄마의 정체는, 오늘은 빨리핑 당첨입니다.
조급함의 티니핑, 빨리핑 .
언제부터 엄마는 빨리핑이 되었을까요?
생각해 보니, 그건 할머니 빨리핑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전날 미리 빨리, 준비물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 옛날 먼지 나게 맞았고, 빨리 서둘러 어서 약속시간에 미리 나가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귀에 굳은살이 박일만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완성되는데 기질이 반, 환경이 반이라고 생각한다면(보통은 유전적 기질이 70프로 이상이라고 본다지만) 저는 기질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빨리핑이 될 떡잎이었죠.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은 똑같은데, 시간의 체감속도는 사람마다 다른 걸까요? 혹은 어떤 일을 하는데 투여되는 시간의 질량이 다른 걸까요?
어떤 이는 한글파일 1페이지를 쓰는데, 1시간 이상 걸립니다. 또 어떤 이는 30분이면 충분하죠.
더욱이 아이와 어른에겐 시간의 속도, 밀도, 질량 모두가 다른 듯합니다.
엄마인 제게는 출근 전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는 의무와 책임들로 시간의 밀도가 높습니다.
월요일 출근길엔 도로의 교통체증이 예상되므로 1분의 지연에서 느껴지는 체감 속도가 빠릅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혹은 개인적인 꿈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 등이 지금 처리해야 할 일과 합쳐져 한정된 시간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질량감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5살 아이는요?
아이에겐 아직 온전한 시간의 통제권이 없습니다.
물론 아직 시간개념이 없고, 시간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하루 일과가 어른들이 짜논 스케줄 대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아이와 사전 합의 없이 말이죠.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이 당연한 듯, 그 스케줄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빨리, 서둘러야지!"
시간의 밀도가 엄마인 저보다 성글게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 처음부터 시간표를 짠 건 엄마이니까요. 앞뒤의 일정을 모르는데 아이에게 시간의 밀도가 생겨나는 게 이상하겠군요.
시간의 질량은요?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될 나이의 특권. 이 어마어마한 특권층의 권리는 곧 끝이 나겠지만, 지금은 가벼운 게 또 당연하겠습니다. 아이에게 어른과 같은 시간의 무게를 느끼라고 할 순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시간의 속도는 어떨까요?
엄마에게 아침 5분의 속도는 빠르지만, 아이에게 아침 5분의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습니다. 아침의 5분도 하루 중 일정하게 존재하는 시간 중 일부일 뿐입니다. 그게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인지든요. 시간은 공평하다, 는 걸 아이만이 실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 엄마 빨리핑 맞아."
인정했습니다.
"엄마, 느림핑 해"
아이가 반박합니다.
"근데 빨림 핑 해야 엄마가 빨리 퇴근해서 빨리 준이 데리러 오는데. 느릿느릿 느림핑 하면 느으으읒게 데리러 와. 괜찮아?"
"아니 , 그때만 빨림핑 하면 되잖아~~"
우리는 모두 각자의 회중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시침, 분침은 다르죠.
똑같은 24시간이 누군가에겐 아침에, 누군가에겐 저녁에 빨리 돌아가는 시계입니다.
그런데 서로가 다른 시계를 보며, "너 왜 이렇게 느려?""너 왜 이렇게 서둘러?" 할 순 없겠죠.
특히 그게 어른과 아이의 시계일 땐 더더욱이 말이죠.
엄마의 시침과 분침이 혹시 똑딱똑딱 정속도에서 벗어나, 똑똑똑똑 딱딱딱딱 과속이 붙은 건 아닌지 봐야겠습니다.
"아들, 엄마 가끔만 빨림핑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