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대화> 7
"오늘도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응, 가는 날이지"
"엄마 또 회사 가는 날이야?"
"응, 오늘 가는 날이지"
"왜? 난 가기 싫은데. 집에 엄마랑 있을래"
".. 가야 돼. 오늘은 가는 날이야"
매일 질문하는 아들의 마음,
매일 답변하는 엄마의 마음이 읽히시나요?
너무나 순수하게 질문하는 5살 아들의 질문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좋고 싫음만 존재하죠.
그러나 띠동갑(×3) 엄마의 답변엔 좋고 싫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만 이 있죠.
아니, 기호가 아닌 당위만이 존재한다고 봐야 할까요?
아들과 엄마, 둘 다 한쪽의 가치영역만 담겨있으니 균형 잡힌 답변은 아닌 듯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질문을 들었습니다.
"왜 또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아들의 "왜"에는 싫.음.이 가득합니다.
저는 입술을 앙 다물게 됩니다.
곳간이 바닥났거든요.
엄마의 답변 곳간.
'어떤 질문이든(말도 안 되는 질문, 하나마나 한 질문, 쓸데없는 질문, 질문이 맞는가 싶은 질문 등등) 무조건 답해준다'가 제 소신이거든요..
즉, 아이의 질문에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게 나름의 육아철학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답변 곳간을 가급적 잘 채워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하도 갖다 쓰다 보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바닥입니다.
샘플 답변들이 몇 개 있었어요.
배우이자 작가인 봉태규 님에게 이 질문을 한 적이 있었어요.
"아들에게 매일 출근하는 이유에 대해 뭐라고 해주면 좋을까요?"
그는 꽤나 괜찮은 육아하는 아빠인데, 그의 답변도 멋졌습니다.
"아들도 꿈이 있지? 아빠는 이 일이 너무 좋고, 꿈을 이루기 위해 출근하는 거야."
("그리고 어머님, 일하러 나간다는 거에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제 딜레마가 생깁니다.
이른바 '솔직병'인데요.
전 지금의 직장이 '꿈을 이룬 직장'은 아니거든요.
솔직히 말해 어쩌다 보니 다니게 된 직장이었다가, 지금은 생계를 위해 다니는 직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양심상(?) 이 답변은 곳간에 넣어두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코칭을 받은 작가님께도 이 질문을 드렸어요.
작가님은 전문코칭자격증을 가진 분이고, 훌륭한 선배엄마이기도 하죠.
답변도 역시나 선배님이었습니다.
"엄마는 지금 꿈을 찾기 위한 과정에 있어.
엄마의 꿈을 찾기 위해 지금 필요한 직장이라, 회사에 가는 거야."
("혹시 엄마가 스스로 아이의 질문을 부정으로 듣는 건 아닌가요? 아이는 충분히 질문할 나이예요. 답변을 해줄 수 있는 긍정으로 관점을 바꿔야 해요")
멋진 답변입니다.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곳간에 저장해 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게 입에 안 붙어서인지, 확실한 자기 설득이 안 돼서인지 반복적으로 사용을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최근 본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중전은, 직접 이 용상에 앉고 싶은 게 아니오?"
태종 이방원이 중전인 원경왕후에게 물었죠.
그만큼 원경왕후에겐 여자만 아니면 왕이 될 기질을 타고났으므로.
그녀가 내놓은 답변은 이렇습니다.
"내가 권력을 탐했나, 왕위를 원했나?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내가 탐한 것은 권력이 아닌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을 얻기 위해서라면 왕위 따위 누가 가져도 상관없지요."
제가 직장에 가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스토리를 얻습니다.
'직장인 이야기'라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죠.
그리고 육아와 직장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건 어떤 직장을 다니든, 마주할 세상이겠죠?
그리고 직장에서 받는 고정적인 월급은 제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의 씨앗이 됩니다.
아이와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세상, 가족과 여행을 가는 세상, 좋아하는 책을 사서 읽는 세상.
만약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이런 세상을 경험하고 만들 수 있다면 출근할 이유가 없겠죠?
지금은 그 세상이 회사를 통해 구현되는 겁니다.
앞으로 제가 재택 워킹맘이 된다면 바뀔 수도 있고요. 그땐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거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단순한 이유를 자꾸 잊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한 통로인 회사에 나갑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이유는 뭘까요?
단순히 엄마인 제가 회사에 나가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은 아이에게 친구들과의 세상입니다.
0세 반부터 시작해 벌써 같은 어린이집 4년 차이니, 거의 배냇친구라고 봐도 무방한 찐친들이죠.
그리고 선생님들과 약속을 지키는 세상을 경험합니다.
커가면서 동생들을 도와주고, 형님들을 따라 하는 세상도 만납니다.
아이는 엄마와의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어린이집에서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매일' 살아가니까 '매일' 세상을 향해 가는 겁니다.
그게 직장이든, 어린이집이든요. 어떤 직장이든, 어떤 어린이집이든요.
하루도 같은 세상은 없으니까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매일 출근하고, 아이는 매일 등원합니다.
"엄마는, 엄마의 세상을 만나러 가는 거야.
회사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
준이도 엄마랑 있을 때 제일 좋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미나지?
준이만의 세상이 어린이집에 또 있지?"
"매일 해님이 뜨고, 달님이 오잖아.
매일 다른 세상인거지.
그래서 우리는 매일 가는 거야"
"그리고 알지?
이따 우린 우리만의 세상에서 또 만나!"
저는 아이에게 진짜 마음이 아닌 답변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진짜 제가 갖고 있는 마음이 뭔지 먼저 알아야겠죠?
그게 제가 '아들과의 대화'를 쓰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곧 시작될 새로운 연재를 준비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 마음만은 진짜이니,
아들이 매일 하는 질문에 연습하다 보면 진짜 제 답변의 곳간이 채워지겠죠?
다른 엄마, 아빠들은 어떤 답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오늘의 세상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