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내면 안돼?

<아들과의 대화> 9

by 카르멘

"오늘 원이 누나가 어린이집에서 글자 읽었어."


"오늘 어린이집 수료식 때 원이 누나가 대표로 편지를 읽었구나?"


"응. 글자 읽었어. 그래서 싫었어. "


"응? 왜 싫었어?"


"내가 하고 싶은데. 글자 읽는 거."


"아.. 근데 준이는 아직 글자 모르잖아?"


"그래도 싫어. 내가 하고 싶어."



귀여운 욕심덩어리의 입이 대빨 나왔습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고, 우리 아들 큰일 났네'.

본래 욕심이 있는 편인 건 알았고, 어느 정도 욕심은 발전의 동기가 되니까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욕심의 수준이 글자도 모르면서 편지를 읽는 3살 위 누나를 시기질투할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순간 '너 진짜 공부 잘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욕심만큼 능력이 따라주지 못할 때 가장 괴로운 건 본인이니까요.


저는 요새 아이를 보면서 '거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이가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제 '내면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제 '습관적 행동'들을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아이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보다 귀 기울여야 할 건 제 내면의 목소리였죠.


제 내면의 목소리는 "욕심은 부정"이라는 것.

다시 한번 제 '부정 프레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욕심을 드러내며 말하는 목소리를 '부정'으로 듣고 있었으니까요.


수료식 대표로 편지를 읽었다는 아이의 엄마와 저는 친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전했죠.


"아니, 우리 아들이 그 집 딸내미가 수료식에서 편지 읽었다고 샘나하더라고~

자기는 글자도 모르면서. 너무 욕심이 큰 거 아닌가 걱정이구만"


"그럴 수도 있지 뭐. 글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체를 모르잖아~

5살 수준, 8살 수준을 따지는 건 어른들 기준이지~~"


저는 시력이 1.0, 0.7입니다.

라식수술 이후 교정시력이죠.

수술 이후 안경을 벗어던지고 "개안했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네요.

여전히 제눈엔 안경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5살인 제 아들이, 8살인 남의 집 딸내미를 질투하면 안 된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5살은 이래야 해, 8살은 이래야 해 하는 틀이 있었거든요.

5살의 욕심과 8살의 욕심의 크기를 먼저 정해둔 거죠.

그리고 애초에 자신에게 없는 것을 질투나 욕심내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불과 한 달 전에 엄마의 '부정 프레임'을 벗어내야 아이를 긍정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고 깨달았으면서 말이죠.

습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관점을 바꾸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어렵다는게 못한다는 말은 아니라 하였으니 모든 배움은 과정에 있다 하니, 깨닫고 정진할 뿐입니다)


아이가 이렇게 시기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제게도 그런 모습이 있었나 돌이켜 봅니다.


역시,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을 하셨는데, 학원에선 매년 정기 연주회를 했어요.

연주회 초대장에 아이들 이름과 연주곡명이 쓰여있었는데, 단체로 하는 연주엔 'OO 외 몇 명' 등으로 쓰이곤 했죠.


문제는, 그 OO 외 몇 명에 제이름이 OO에 쓰여있지 않았던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 하는 합동연주인데 저는 엄마에게

"왜 내 이름이 맨 앞에 안 왔어? OO에 내이름을 썼어야지"라고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본인 딸 이름을 떡하니 대표자 이름으로 쓸 수 없었을 텐데요.

실제로 능력이 출중했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지어 저는 피아노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맨 앞에서 눈에 띄길 바랐던 겁니다.

7살 배기 여자아이였던 저는.


그 여자아이가 한 남자아이와 닮아있습니다.

그 남자아이는 글자를 읽지도, 배운 적도 없지만 앞에서 글자를 읽고 싶어 하는 제 아들이죠.


과거에 제 욕심에 엄마가 뭐라고 대답해 주셨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어렴풋이 "너는 엄마 딸이라, 네 이름을 쓸 순 없어"라는 식의 대답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저는 뭐라고 대답해 줄 수 있을까요?

단순히 글자에 관해서는 "한글을 배우면 된다"라고 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글자를 알 경우, 그 안에서 누가 대표로 편지를 읽을 것인가는 다른 문제겠죠.


만약 8살이 된 우리 아들이 "나는 한글도 아는데, 왜 내가 대표가 아니냐"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줘야 할까요?


아이가 욕심을 드러낼 때, 주로 저는 "직접 가서 말해봐"라고 해주곤 했습니다.


체육대회에서 꼭 상품을 받고 싶으면, "직접 가서 선생님께 달라고 말해봐"

버블쇼에서 꼭 풍선을 받아야겠으면, "직접 앞으로 나가서 점프하면서 소리쳐봐"

다른 친구가 먹는 과자가 정 먹고 싶으면, "친구한테 직접 가서 말해봐. 아니면 친구 엄마한테 가서 말해봐"


'되든 안되든 직접 원하는 바를 표현해야 한다'가 제 지론이거든요.

그 메시지가 저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언제까지고 엄마 아빠가 아이의 대변인이 되어줄 순 없고, 자기 목소리 정돈 자기가 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저는 또 이리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이가 앞에 나가서 발표하고 싶어? 그럼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려.

선생님! 제가 꼭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제 내면의 목소리에게 먼저 말해야겠지요?


"욕심은 부정도, 긍정도 아니야.

욕심은 아이의 마음 중 일부일 뿐이지.

욕심은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부분이지. 그 욕심을 표현하는 건 아이의 자유고.

그러니, 욕심 내면 안돼?

고집불통 안경 좀 벗어라, 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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