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대화> 10
"엄마 이게 무슨 음악이야?"
"엄마 요가 음악. 우주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래"
"어머니? 엄마?"
"응, 어머니들의 신이 있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죽었어?"
"응,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그리워"
"응?"
"이 노래 들으니까 그리워. 엄마 죽으면 안 돼"
"준이 요새 그립다는 말 자주 하네. 또 언제가 그리워?"
"애기 때. 나 아기 때가 그리워"
"아기 때? 기억도 잘 안 날 텐데, 왜 그리워?"
"엄마가 밥도 다 먹여주고, 어린이집도 안 가고.. 그리워. 형아 되기 싫어"
토요일 아침, 송곳니가 솟아올랐습니다.
짜증이라는 송곳니가 명치끝에 고개를 들고 있었죠.
이유는 항상 비슷합니다.
몸의 피로도, 생각과 행동의 간극.
제 명치에서 자라는 짜증이라는 송곳니는 보통 이 두 가지 먹이를 먹고 자라납니다.
오늘은 그 두 가지 먹이를 모두 먹으며 송곳니가 어느새 목구멍까지 자라나 있더군요.
일주일 내내 회사 업무의 가중과 업무처리 실수로 인한 스트레스.
신체적 긴장도를 운동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야식으로 입막음한 과오.
그러다 보니 주말아침 제 체력과 심력은 바닥.
아이의 행동 하나, 남편의 말 한마디에 뾰족뾰족 송곳니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아로마오일을 코로 흡입, 요가 명상음악을 틀었습니다. 데비 프레이어(devi prayer)의 mother divine, 저의 최애 명상음악이죠.
눈을 감고 제 몸에 쓸데없이 들어간 힘, 함께 얽혀서 꼬인 마음을 들여다보니 문득 요가매트에서 송장처럼 누워있던 때가 그리워졌습니다.
회사일이 스트레스일 땐 퇴근 후 바로 요가원의 매트 위로 올라갔던,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개운했던 그때.
그런데 이런 엄마의 마음을 눈치라도 챘는지, 아들이 먼저 선수를 칩니다.
"그리운 마음이야"
엄마가 옆에 있지만 엄마가 죽을까 봐 그립고,
자기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아지니 아기 때가 그립고, 엄마가 서정적인 노래라도 부르거나 들으면 그립다고 말하네요.
"준아, 그리워? 그리운 건 좋은 거지. 그리워할 게 있든 건 감사하지. 그리워할 게 없는 게 슬픈 거야. 그리운 건 슬픈 게 아냐."
"그래도 그리워. 준이 마음이야"
"그래, 그럼 그리워하자!"
생각해 보면, "그립다"는 말은 "고맙다"는 말이 아닐까요?
요가원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저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1순위이던 때, 그때의 제게 저는 고맙습니다. 그때의 제가 저를 돌봐줬기에 지금의 제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때가 그립고, 지금은 그러지 못해 서운하다 할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울 걸 만들어 놓았음에 고마울 일이죠.
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던 때가 벌써 그립다 하네요. 엄마가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엄마가 멀어진다고 느끼나 봅니다.
엄마가 자신의 손과 발이 돼줬던 시절, 엄마가 자기를 더 사랑했다고 느낄 수도 있을까요?
조금 큰 아이에게 너무 큰 어른의 언어를 썼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듭니다.
엄마는 여전히 널 사랑하고, 엄마가 너의 손이 되어주는 건 쉬운 일이지만 옳은 일은 아님을 조금 더 쉽게 말해줘야겠습니다.
아마 조금 더 크면 지금마저 그리워할 테니까요.
그건 엄마로서 너무나 고마운 일입니다. 엄마와의 시간을 그리워해주는 거니까요.
곧 그 그리움의 마음조차 싹트지 않는 때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과거의 저에게 고마운 날입니다.
과거 스스로를 정성껏 돌봤던 저에 대한 그리움,
아이의 손과 발노릇을 해줬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
모두 고마움의 다른 이름입니다.
쑤욱 내려갑니다.
목구멍까지 솟아났던 짜증 송곳니가.
점차 그렇게 명치 아래로 고개를 수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