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대화> 11
"오늘 친구가 내가 갖고 놀던 장난감 뺏었어!"
"진짜? 왜 그랬을까?"
"내가 먼저 갖고 놀고 있었는데, 뺏어갔어!"
"그건 친구가 잘못했다. 준이는 뭐라고 했어?"
"내가 먼저 갖고 놀고 있었다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말했어."
"응, 잘했네~"
"OO 싫어. 이제 OO이랑 안 놀 거야"
"그래~ 친구가 아직 규칙을 모르나 봐. 다음에 또 어떤지 이야기해 줘~"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유아기인 아이들에게 '자기 마음'은 1 순위니 까요.
자기 마음이 1순위인 것까진 좋은데,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규칙이 우선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부족합니다.
저희 아이도 그렇죠.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다가도, 본인도 그런 잘못을 똑같이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스스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워나가는 거겠죠.
그런데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는 대화 중 남의 욕을 하거나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저 같은 경우는 회사를 다니니까, 회사 사람들(특히 상사) 욕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짜 욕을 하진 않지만, 도대체 왜 그래? 하는 생각을 하고 지인들과 차라도 마시면 심심치 않게 그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 이야기의 중심이 누군가의 명백한 잘못일 때도 있지만, 잘못이 아닌 경우가 사실 더 많습니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의 특성일 때도 어른들은 뒤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팀장은 왜 이렇게 보고서 자간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김대리는 도대체 말투가 왜 그래요? 인사도 잘 안 하고 사람이 사회성이 없는 거 같아요"
그게 그 사람의 특별한 잘못은 아니지만,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서 평가하죠.
그 잣대에 맞지 않으면 이상한 거고, 험담의 주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그 이야기가 그 사람이 되어버릴 때까지요.
아이들도 그럴까요?
"준아, 오늘은 어떤 친구랑 제일 많이 놀았어?"
"응 태안이"
"아, 준이가 제일 좋아하는 태안이랑 놀았구나.
혹시 OO친구는? 오늘은 장난감 안 뺏어갔어?"
"00이 이제 괜찮아. 잘 노는데?"
"아 그래? 다행이네...."
아이들은 친구의 '잘못된 행동'을 그 친구의 '전부'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른들은 누군가의 특정 행동을 잘못으로 인식하고 그의 전부인 양 왜곡하는데, 아이들은 그런 왜곡의 과정을 거치지 않죠.
그리고 어른들은 1절, 2절, 3절, 4절 그것도 부족해서 도돌이표까지 붙여서 잘못 프레임을 강화하는데 아이들은 잘 잊습니다. 에너지를 왜곡하고 오해하는데 쓰지 않습니다.
어른인 제 질문이 무색해질 정도로요.
분명 제가 아이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똑같은 프레임을 적용했겠죠?
아이의 사소한 실수를 아이의 전부인 양 인식했을 겁니다.
그리고 '얘는 도대체 왜 이래?' 하는 왜곡된 의식을 아이에게도 전달했을 겁니다.
그럼 아이는 그 일부의 잘못 혹은 실수를 본인으로 오해하게 될 겁니다.
요새 아이에게 저는 '약속의 티니핑, 오로라핑'입니다.
엄마가 맨날 약속타령 해서 그렇죠.
아이는 '사랑의 티니핑, 하츄핑'이고요.
그러고 보면 아이가 엄마보다 큰 존재입니다.
약속을 지키고 지키지 않고의 잘잘못만 따지는 오로라핑보다는
사랑으로 약속을 지키게 하는 하츄핑이 더 큰 존재이니까요.
아이의 시력은 나날이 성장 중입니다.
0.7인 아이의 시력이 7세쯤 1.0까지 성장한다고 하네요.
반면 엄마의 시력은 나날이 퇴화 중입니다.
1.0이었던 시력이 어느새 0.5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보는 시력보다 아이가 세상을 보는 시력이 더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엄마의 도수로 세상을 바라보니, 아이가 보는 세상을 다 담질 못하네요.
아니,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볼 수 있는 시력을 뺏아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마음이 없으니 시력이 나날이 성장하는 걸까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욕구가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것으로 바뀐다
(뤼디거 달케, 몸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