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초인간 능력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

by 카르멘

아들아, 너는 눈치를 보고 있니?


본다면,

너는 누구의 눈치를 보니?

몇 명의 눈치를 보니?


그렇다면,

너는 눈치를 왜 보니?

무엇을 위해 눈치를 보고 있니?


그리고 혹시,

너는 눈치를 얼마만큼 보니?

너의 눈치는 어느 정도일까?


엄마는 말이야.

눈치는 세 가지 문제라고 생각해.


눈치는 범위의 문제.

눈치는 목적의 문제.

그리고 눈치는 정도의 문제다.

눈치는 내 안의 것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내 밖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부모, 나와 친구, 나와 선생님, 나와 직장동료나 상사 등.

눈치를 범위의 문제로 보면 그렇지?


하지만 동시에 눈치는 순수하게 내 것이기도 해.

눈치의 최종목적은 나의 이해관계에서 ‘득’이 되는 쪽을 택하기 위함이므로.

눈치의 목적을 두고 보면, 눈치는 철저히 나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단다.


눈치의 범위든, 목적이든 모두 가시적인 문제야.

범위를 나와 직접적 이해관계에 있는 반경 5미터 이내의 사람으로 한정할지, 4촌 이내로 한정할지, 우리 팀 내로만 한정할지 정하기 나름이다.

어렵지 않지?

또 눈치의 목적을 단기적인 내 소득의 이해관계로 볼지, 장기적인 내 생존의 이해관계로 볼지도 내가 정하기 나름이야.


하지만 말이야 눈치의 정도(程度)의 문제는 달라. 정도는 가시적이지 않지.

그렇기 때문에 어렵고, 고민해 볼 만한 거라고 생각해.

정도가 중요한 이유는 그 정도에 따라 내가 정한 범위와 목적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야.


내가 회사에서 우리 팀의 팀장 눈치만 보기로 범위를 정했어도 근무하는 8시간 내내 팀장의 일거수일투족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팀장의 이해관계에 매달린 다른 팀장, 팀원까지 모두 내 눈치범위로 보게 되는 것과 같아.


내가 눈치를 올 한 해의 근무평가 S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고 치자.

즉, 올해 내 눈치의 목표는 근무평가 S를 받아서 성과급을 120% 받는 거야.

하지만 내가 이를 위해 내 모든 촉수를 다 동원하여 눈치를 쏟아부었어도 내가 S를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눈치가 업무능력의 일부가 될 순 있어도 전부가 될 순 없기 때문이다. 또한 눈치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내가 보는 눈치와 상대방이 보는 눈치의 수준이 같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 365일 회사 내 눈치에 매달린 나의 근무평가가 S가 아니라면? 내 눈치는 무용지물이 되는 거잖아.


결국, 눈치의 가장 중요한 점은 ‘정도程度’라고 엄마는 생각해.

눈치의 정도. 즉, 눈치의 알맞은 분량.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수준의 눈치.

참 어렵지?


사실 엄마는 어릴 때 할머니 눈치를 매일 봤어.

할머니는 예민한 성정이잖아, 그래서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와 표정이 좋지 않으면 대번에 “무슨 일이 있기에 죽상이냐?”라고 채근하셨어. 아주 호되게.


또 할머니랑 대화 중 조금이라도 말투가 엇나가면 “말투가 왜 그 모양이냐? 뉘앙스가 좋지 않다”며 먼지 나게 혼나기도 했지.

그러다 보니 어린 엄마에게 가장 큰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할머니였어. 거의 24시간 엄마라는 존재의 눈치를 봤지.


실제로 별일이 없이도 엄마의 표정이 무표정한 날이 더 많았고, 별 뜻 없이 나오거나 던진 말투나 말씨로 혼난 날이 많았던 것 같아.

엄마의 표정과 말투, 말씨는 모두 예민한 할머니의 평가 대상이 됐으니까.

문제는 엄마의 똑같은 언행도 어느 날은 괜찮았고, 어느 날은 큰 화근이 됐다는 거야.

그러니 한도 끝도 없는 눈치싸움이었지.


조금씩 커가며 엄마는 ‘이렇게 눈치를 보는 건 한도 끝도 없는 일이다’고 결정지었어.

결국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정도껏 눈치 보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지. 엄마가 온 마음을 다해 눈치를 본다 해서 할머니의 관점이나 성정이 바뀌는 건 아니었으므로. 내가 볼 눈치의 정도를 정하는 건 내 안의 문제이고, 상대방의 평가나 피드백은 내 밖의 문제라는 걸 깨달은 거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야. 어린 시절 눈치에 대한 맷집(?)이 키워져서인지 엄마는 사실 커서는 어릴 때만큼 눈치를 보지 않게 됐어. 본래 눈치가 없는 편도 아니고, 오히려 예민한 할머니 밑에서 엄마 역시 민감한 눈치능력이 개발된 편이었지.


하지만 그래서 부러 눈치를 앞서 보진 않았어.

엄마는 그 상황에서 엄마가 볼 아주 최소한의 눈치, 정도만 챙겼어. 눈치는 상대방 혹은 상대방과 나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만큼만 보는 게 가장 이상적이거든. 타인에게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 심지를 흔들 만큼 볼 필요도 없는 거야.


눈치를 너무 많이 보면 내가 그 사람의 표정, 말투, 말씨,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모두 곤두세워야 하거든?

그러면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거리가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게 돼.

그건 나 자신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공간을 스스로 말살시키는 행위야. 나 자신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공간 없이 내게 이득이 될 건 그 무엇도 없단다.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눈치도 결국엔 습관이야.

눈치의 범위가 넓고, 눈치의 목적이 여러 개인 사람은 항시 어디서나 눈치를 보는 역할을 도맡아 한단다. 그러면서 괴롭다고 토로해. 그러면서 자신을 가여워하기도 하고.

눈치를 보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의 목적이 된 경우지.

눈치의 본말이 전도됐기 때문이야.


내가 눈치를 보는 목적과 범위와 정도를 먼저 세우고, 눈치를 봐야 하는데

사람과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보면서 눈치의 목적, 범위, 정도가 정해지는 거야. 눈치의 주도권을 남에게, 상황에, 환경에 돌리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나는 항상 눈치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어. 수동적인 눈치만 봐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니까.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존감이 낮지.

자신의 선택, 결정에 확신이 없어서 누군가로부터 확신을 받고 싶어서 인정을 얻고 싶어서 눈치를 보거든.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지만 매번 습관이 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 타인에 대한 의존성향이 매우 높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 선택과 결정이 잘못된 경우라면? 내가 눈치를 본 사람, 내가 인정받은 사람에게 가서 잘잘못을 따질 거야? 그럴 수 없잖아. 최종 선택과 결정권자는 나니까. 그러면서 ‘아, 그때 그 사람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만 늘어날 뿐이지.


또 누군가는 자신의 품성이나 능력에 비해 목표만 높거나, 운에 기대어 가길 바라는 경우도 있어.

누군가로부터 눈치를 봐 본인의 공치사를 조금 더 하고 싶다거나, 비슷한 노력에 대해 상사의 눈치를 봐서 공치사를 더 받고 싶은 경우지. 인간의 인정욕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마찬가지로 매번 이런 눈치를 본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키울 시간을 눈치 보는데 소모시키는 것과 같아. 발전 없이 눈치만 보는 사람을 누가 인정해 줄까?


물론 엄마가 말하는 게 ‘눈치 따위 보지 마세요’란 말과는 다른 거 알지?

이 모두는 ‘눈치란 내가 정한 범위, 목적, 정도를 지녀야 한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이야.


반대로 ‘눈치가 없다’ 혹은 ‘눈치를 전혀 안 보고 안하무인처럼 군다’는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거든. 이들은 상대방의 관계에서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해?’하는 반감을 가질 수 있어. 에너지가 분명히 소모되는 눈치싸움은 기득권 세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라고 여길 수도 있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눈치를 보고, 누구에게나 눈치는 범위, 목적, 정도가 있지.

조선시대 왕도 사대부와 정품들의 눈치는 봤어. 대통령도 여야를 막론하고 눈치를 봐야 하지. 물론 지위가 높을수록 눈치의 정도가 낮아질 수는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은 눈치의 범위가 넓어져. 아랫사람은 윗사람 하나의 눈치만 보면 되지만,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서있는 윗사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의 아랫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니까.


시대가 달라졌다고 눈치가 무용지물이 되진 않아.

눈치는 분명히 기능을 한단다. 사람이 혼자 무인도에서 살지 않는 한.

아니, 어쩌면 혼자 무인도에 사는 사람도 생존을 위해 동식물의 눈치를 보고, 파도의 눈치를 보고, 바람의 눈치를 보게 될지도 몰라.


정리해 볼게.


누구에게나 눈치의 범위, 목적, 정도가 있어.


가장 네게 해주고픈 말은 눈치의 범위, 목적, 정도를 정하는 건 너라는 거야.


네가 눈치의 범위를 정하고, 목적을 세우고, 정도를 훈련하면 눈치는 너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능력이

될 거야.


더 복잡해진 이해관계, 관계의 제한 없이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시대에

눈치만큼 중요한 인간의 능력이 있을까?


AI 도 대체하지 못할 초인간적 능력 아닐까?


결국 눈치는 관계를 잇는 초공감 능력이자, 시대를 막론한 초인간 능력이야.


눈치의 자기 결정권만 제대로 세울 수 있다면, 눈치 빠른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한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엄마는 네가 바로 그런 눈치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읽어줘서 고마워,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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