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 거지가 되어라!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

by 카르멘

음메~

아들하고 엄마는 소띠잖아.

띠동갑. 물론 세 번 돌긴 했지만^^

근데 그 세월의 격차를 가장 크게 느낀 적이 있어.


“요새 개근상은 상이 아니래. 개근하면, 개근 거지래.”




이게 무슨 말이야?



엄마 때는 학교는 무조건 가는 곳이었고, 개근상은 부지런히 학교를 다닌 눈부신 보상이었어.

엄마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개근상은 무조건 탔었지.

마치 참가상 같이 누구에게나 주는 상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개근 거지라고?


물론 학습의 기회가 학교 말고도 많아졌고, 다양한 경험의 가치를 알아봐주는건 좋아.

하지만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행위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 다른 일이야.


누가 ‘개근 거지’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까?

어떻게 해외여행, 해외연수, 캠핑 자연학습 등등을 가보지 못하고 그냥 학교 수업만 듣는 학생은 집에 돈이 없다는 게 되어버린 걸까?

그렇다면 이 논리는 학생이 아닌 어른들이 만들어낸게 아닐까?

참 씁쓸하네.


엄마는 말이야. ‘버티는 정신’을 절대 낮춰 보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


학교에 가려고 일어나고, 밥 먹고, 준비물을 챙기고, 신발 끈을 매고, 문밖을 나서고, 걸어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인사하고, 주어진 시간표와 규칙을 지키고, 그 안에서 자신의 과제와 목표를 수행해내는 게 절대 폄하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학생들 뿐의 이야기도 아니지.

생각해보면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한 직장에 버티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날 정도로 이직과 창업이 잦은 시대가 됐어. 그 시각으로 보면 한 직장에 붙어있는 회사원도 개근거지인거 아닐까?


아들아, 미안하다.

엄마는 그 관점에서 보면 진짜 개근 거지야. 그중에서도 아주 상거지지.


이미 초등학교때부터(아니, 국민학교였지) 한 번도 전학 가본 적이 없고 항상 개근상을 탔어.

25살에 입사한 첫 회사에 지금도 다니고 있어. 엄마와 함께 입사한 동기 8명 중 남아있는 동기는 2명뿐이야. 누군가는 더 좋은 기회를 찾아 갔고,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나섰지. 그럼 엄마는 낙오자일까? 더 좋은 꿈을 꾸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해 도전했어야 했는데 현실에 안주한 겁쟁이인걸까?

그 판단은 누가 하는 걸까?


그 누구도 할 수 없어. 자기 자신 외에는.


엄마도 사실은 20대 때 다른 꿈이 있었어.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지. 그러나 불행하진 않았어.

꿈을 이루지 못한 이가 모두 불행한건 아니거든. 끝까지 버틴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배웠지.

하지만 그 버텨낸 힘이 또다른 꿈을 꾸고 노력하게 만든 자산이 된다는 것도 체감했어.

그래서 엄마는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어.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꾸준히 하는 거만큼은 잘하잖아.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도 버티는 과정이지.

엄마는 분명히 그 과정의 가치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입시경쟁이나 입사경쟁 등 누군가 만들어놓은 판에서 1등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그렇다면 이렇게 되물어보고 싶어. 그건 왜 소용이 없는 거야? 

그 판에서 버텨내야지만 새로운 판도 짤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는 거야. 진짜 해본 사람만이 진짜 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유지하는 거야. 물론 가타부타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한 자리에 있으라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반대로 ‘그냥 버텨보는 능력’의 가치를 너무 얕잡아 보진 않았으면 해.


기성세대는 언제나 ‘버티라’고 말한다고?

시대가 어느 땐데 버티고 앉아있냐고?


하지만 말이야. 시대가, 때가, 자리가 바뀔지라도 ‘버텨본 사람만이 버티는 능력의 가치’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무엇도 버티지 않고는 이뤄낼수 없으니까 말이야.

끝을 봐야 시작을 할 수 있는 거잖아.

기다림 끝에 시작이 오는 거잖아.


안도현 시인이 말했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엄마는 시인은 아니지만 말해주고 싶어.

“개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버텨본 사람이었느냐”


개근상이 거지상이라고?

그러면, 그런 거지는 해도돼! 아니 해야 마땅할지도 몰라.

그러니, 아들. 걱정하지마. 두려워하지도마.


엄마는 공부도, 학교도 ‘버텨보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엄마 공부 잘했냐고? 응!(재수없지?)


그런데 엄마가 그거보다 잘 한건 수업시간에 앉아있던 거야.

놀고싶은거, 딴짓 하고싶은거 참고 그시기의 주어진 꿈을 꾸어본거야.

그리고 마침내 끝까지 참고 졸업한 거야.

왜 없었겠어? 도대체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는 게 왜 없었겠어? 솔직히 엄마는 아직도 가정, 가사, 기술과 같은 교과목 내용들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진 못해.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버티며 알게 된 거야.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아, 나는 이럴 때 행복하고 이럴 때 불행하구나.

아, 나는 이럴 때 잘하고 이럴 때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요새 네가 자주 말하는 말 있잖아.


"일단 해보고, 아님 말고!"


엄마 그 말 찬성해. 완전!

근데, 그 ‘아님 말고’를 누가 알지? 어떻게 알지?


사실은 버텨봐야 아는 거야.

아닌지, 맞는지.

끝까지 해봐야 아는거야.

더이상 갈지, 말지.

엄마는 그 최종 결정의 선택권을 네가 잃지 않기를 바라.


네가 너의 세상의 하루하루를 개근하는 마음으로 살아낸다면, 절대 너는 거지가 될 수 없어.


진짜야. 미국의 천재상이라고 불리는 '맥아더상'을 수상한 작가 이야기를 해줄까?

그릿(GRIT)이라는 책을 쓴 작가 앤절라 더크워스는 ‘그릿’을 열정과 집념이 있는 끈기라고 정의했어.

성공이란 ‘끝까지 해내는 것’이라고 말했지. 그리고 작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어.


“아버지, 길게 보면 재능보다 끝까지 하겠다는 집념이 더 중요할지 몰라요.”


결국 포기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우리가 생에 마지막 순간에 기억하게 될 자신의 모습은 무엇일까.

엄마는 말이야.

내가 받은 점수, 내가 탄 상, 내가 이루어낸 업적보다는 그 과정에서 지키고자 했던 나의 모습일 것 같아.

아들, 너는 어때?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한순간을 잊지 않고 떠올린다면, 지금 그 자리에서 버텨내는 게 얼마나 눈부신 움직임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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