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프로젝트>
엄마가 이전 글에서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지.
오늘은 엄마가 실제로 삶에서 어떤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지 공유해보고 싶어.
돌이켜보니까 말이야, 엄마의 자아는 다중인격이었어.
역할에 따라 자아를 부여하자면 말이야.
‘엄마’라는 자아.
‘회사원’이라는 자아.
‘작가’라는 자아.
이 세 자아 사이에도 균형이 필요했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반드시 다른 쪽의 자아는 힘을 잃었거든.
예를 들어 네가 아파서 가정보육을 해야 하는 날엔 오롯이 ‘엄마’라는 자아만 존재했어.
그날엔 회사원도 작가도 모두 사라졌지.
어느 날엔 회사원으로서 자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 집에선 아무도 나에게 상장을 주지 않지만, 가끔 회사에선 주거든. 그러면 그 기분에 엄마라는 자아를 잠시 뒤로 밀어 두고 회포를 풀지.
또 어느 특별한 날엔 작가라는 자아가 사막의 샘물이 되어줬지. 출판계약을 한 날, 글이 잡지에 발행된 날, 주 5일 쓰는 브런치의 글 조회수가 1천을 넘은 날. 그런 날엔 작가라는 자아가 엄마로서의 고됨과 회사원으로서의 권태로움을 치유해 줬단다.
서로가 서로를 살게끔 해주려고, 세 개의 자아가 균형점을 찾아갔던 것 같아.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찾아갔다’는 부분이야.
균형은 고정된 결과가 아니거든.
찾아가는 과정인거지.
세 개의 자아가 언제나 똑같은 비중으로 불변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엄마로서의 자아가 필요할 땐 나머지 자아들은 잠시 물러나 있었어.
회사원으로서 자아가 주목받을 땐 나머지 자아들이 잠시 불을 꺼줬지.
작가로서 자아가 인정받을 땐 나머지 자아들이 잠시 휴식하며 재충전할 수 있었지.
그렇게 서로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한 ‘나’의 자아를 이루게 한 비결이지 않을까 생각해.
이도저도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결코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회사원도, 완벽한 작가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엄마, 회사원, 작가라는 세 자아가 합쳐 100을 이룬다면 그 자체로 완전한 내가 되는 게 아닐까?
모두가 100을 해야만 합이 100이 되는 게 아니잖아.
각자의 역할을 40, 30, 30으로 해도 합은 100이 되는 거잖아.
어쩌면 엄마는 엄마 편한 대로 그렇게 균형을 잡아가기로 했었어.
그래야만 오래 엄마도, 회사원도, 작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엄마는 그리고 요새 또 다른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어.
이건 의식의 바구니라고 멋진 교수님이자 작가님께 배운 건데,
엄마는 나름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바구니를 마련해 봤어.
엄마가 네 옆에서 눈 뜰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바로 이 바구니들이란다.
‘어제 몇 시에 잤더라? 그러니까 몇 시간 잔 거지? ’라는 생각은 과거의 바구니에 담기잖아.
‘이따 업무보고 요구자료를 언제까지 내라고 했더라? 그럼 빨리 가야 되는데’라는 생각은 미래의 바구니에 담기지.
‘아들 잘 잤나? 다정한 아침이야!’라는 생각이자 행동은 현재의 바구니에 담겨야 하지.
그런데 엄마는 종종 이 현재의 바구니는 잊은 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만 공을 넣고 있더라.
엄마가 예전에 왜 너에게 ‘잔소리’를 하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지금에서야 엄마는 그 답을 알 것 같아.
그 이유는 엄마와 너의 바구니가 다르기 때문이야.
너와 같은 아이들에겐 ‘현재’의 바구니가 가장 크지.
편식을 하면 나중에 키 안 큰다는 미래의 바구니, 엄마가 그러니까 아이스크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들어서 배탈 나! 하는 과거의 바구니 등은 엄마에게만 있는 바구니야.
그러니, 현재의 공과 바구니만 갖고 있는 너와 엄마 사이엔 균형점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엄마들은 과거를 돌이켜서 엄마의 잘못이나 아이의 잘못을 들추고,
미래를 미루어 짐작해 과대망상에 빠져 조급해하는 특성을 갖고 있거든.
그런데 너는 안 그렇잖아. 너는 지금, 여기만이 중요한 나이잖아.
그래서 엄마는 요새 의식적으로 훈련을 해.
과거, 현재, 미래의 바구니 속 공을 옮겨 담아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자꾸 과거나 미래 바구니에 던지는 공을 현재 바구니로 돌리려 해.
과거나 미래의 바구니만 무거워져 현재의 바구니가 텅텅 비는 일이 없도록.
현재의 너와 내가 함께 놀 수 있는 바구니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야.
그리고 이 의식적 균형훈련이 잘 이뤄지면, 엄마는 현재의 바구니를 두 칸으로 나눌 생각이야.
현재의 바구니에 칸막이를 치는 거지.
긍정과 부정으로.
현재를 볼 때도 엄마의 균형점이 부정칸에 기울어져 있더라고.
가끔 엄마가 지각 직전의 상황인데, 네가 배가 아파서 어린이집 못 가겠다고 하잖아.
엄마는 솔직히 열불 난다.. "왜 하필 지금 아프냐? 왜 미리 말 안 했냐?" 등 부정적인 공을 마구 던지잖아.
그런데 이걸 긍정의 바구니로 바꿔 넣는 거야.
"그래, 내가 출근하기 전에 네가 아프다고 해줘서 병원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픈걸 아프다고 표현하는 아이여서 다행이다"라고.
솔직히, 솔직히 이건 아주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엄마 인생에 가장 힘든 균형 잡기가 될지도 몰라.
그리고 항시 매일 흔들리겠지. 균형을 잡느라.
근데 뭐 어때?
그래도 이건 엄마와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 잡기 연습이 될 거야!
그러니 엄마, 포기하지 않아 볼게.
잘 지켜봐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