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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Jan 25. 2024

센터를 지키자

부아가 치미는 날 운동하기


"센터를 지키고 누우세요"


필라테스 수업 때 가장 먼저 듣는 말.


"센터를 지키라"는 말.


내 필라테스 수업의 8할은 리포머다.


리포머(Reformer)는 필라테스 창시자인 조셉 필라테스가 고안한 기구인데,

누워서, 앉아서, 서서 모두 활용할수 있는 기본 기구다.


리포머 끝에는 스프링이 달려있는데(이해를 돕기위해 또 그려본다)

우리 필라테스 학원 스프링의 센터는, 레드다.

그래서 빨간 스프링에 내몸의 중심축을 맞추고 누우면, 바르게 눕기가 완성된다.


보통 나는 수업시간 10분을 늘 지각하기 때문에

부랴부랴 리포머에 눕고보는 경우가 많은데, 첫단추를 잘못 끼면 끝까지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듯이

센터를 맞춰 눕지 않으면 리포머 위에서 행하는 모든 동작이 제대로 될리 없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꼭 누울 때 빨간 스프링을 보고 눕는다.

이 '빨간 스프링'이 필라테스의 센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도 센터를 표시해주는 빨간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 여기가 중심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빨간선.


내가 벗어나거나 애먼 길로 갈 때 '정신차리세요'하고 알려주는 센터.


사실 오늘 아침,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제는 아이가 아파 급하게 휴가를 쓰고, 오늘 출근을 하였는데

출근하자마자 팀회의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우리팀에 대한 부당한 이야기에 관한 회의 였는데,

갑자기 내 허파를 치는 뒷담화까지 듣게됐다.


간만에 어디에 위치한지 모른 내 허파(부아)가 씩씩댔다.


그이유인즉슨,

나는 가급적 야근을 하지 않고 제시간에 업무를 정리해 '정시' 퇴근을 지향하는 사람이고,

육아기 단축근무를 쓰고있는 상황이라 야근이 법적으로도 금지돼있다.

(근로자가 원할시 사용자가 허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속모르는 사람들이 일부 뒤에서 나의 정시퇴근을 두고 '한가하다'느니 '직급에 비해 일이 적다'느니 하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나의 1차 반응.


눈과 목구멍이 뜨겁다.

인간의 판단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의 필터링 없이

파충류도 갖고 있는 본능의 뇌, 뇌간만을 관통하는 언어가 나올 것 같았다.

그만큼 내 감정의 뇌, 변역계가 펄떡였다.


나의 2차 반응.

숨을 들이마쉬고 내쉰다.

인헬(inhale)-

엑스헬(exhale)-

들숨, 날숨에 씩씩거리는 내 호흡이 들린다.

명치 끝이 답답해 큰숨을 소리내어 쉬지 않고는 견뎌내기 힘드니까 어쩔수 없다.

'후~~~~~~~~~~~~'


나의 3차 반응.

그소리가 왜 부당한지에 대해 말은 해야겠다.

2024년에 '야근시간'이 '능력'의 기준이 되어선 안되는 이유,

나의 육아기 단축근무로 누군가 피해를 봤거나, 내업무의 성과를 내지 못한게 아니라면

누군가 나의 업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월권인 이유,

단축근무라면 업무량도 단축해줘야 맞지만 그들이 말한 '내직급' 덕분에 근무시간 단축을 했음에도 전과 동일한 업무량을 다 소화해냈다는 점.

(실제로 우리팀도, 나도 업무성과에 있어서 평균 이상이었지 이하는 아니었기에)


물론 안다.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 하다는 것.

타인의 마음이 내맘과 같을 일은 절대 없다는 것.


하지만, 기본적인 선을 넘어서는 발언으로 무례를 범하는 건 무뢰한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런 무뢰한이 넘쳐나는 사회지만)


"제 앞에서 할수 있는 발언이 아니기에, 제 뒤에서 했을 것"이 나의 마지막 코멘트.


본인이 생각해도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수 없는 말만 뒤에서 하기 마련이다.


물론 여전히 나의 감정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필라테스 수업을 나는 갔고, 갔음이 다행임을 느꼈다.


누군가의 무책임한 뒷담화 때문에,

못생기고 엉덩이만 무거운 직장인 1인으로 점심시간에 화만 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서.


'센터를 지키라'는 필라테스 수업 시간에 '나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은채 리포머 위에서 운동하는 내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나의 루틴이 나에게는 나자신을 지키는 중심축이었다.


영하 10도, 매서운 겨울 바람, 불쏘시개를 삼킨 것 같은 뒷담화 등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기에 온 것.

이시간을 지켜낸 것.  


그게 나에게 빨간 스프링이 돼주었다.


여기가 중심이라고.

이자리를 지키라고. 말해주는.


나머지는 모두 센터가 아님을, 잊지말라고.


얼마나 또 많은 날 나의 중심을 잃고 흔들리겠는가, 그럴 때마다 떠올려야겠다.


나의 빨간 선.


"센터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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