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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쿵펀 Mar 29. 2016

회사 때려 치우고 여행 01

말하기만 해도 설렌다 게다가 회사도 때려치웠다.

이 글은 2012년 직장을 때려치우고 100일간 여행을 한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 날씨나 지금 시간에 딱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글을 보니 직장을 때려치우고 2,000Km를 달린 커플이 나오던데, 나는 자전거 때문에 때려치운 것은 아니지만 3달 정도를 나에게 선물로 주려고 일본 자전거 여행과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일본은 홋카이도에서 출발해 후쿠오카까지 내려오는 60일 여정으로 지도에 쭉 줄만 그어보고, 블로그나 책들을 읽으면서 준비했다. 장비를 하나씩 사서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비옷도 꺼내서 입어보곤 하고 코펠로 라면도 끓여보면서 장비를 테스트했다. 그렇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어두워지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또 자전거를 타면서 일본을 일주하는 거다.

집에서 끓여보니 제법 무서운 소리가 나며 라면이 익는다.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드디어 오늘 모든 결심을 끝내고 2012년 10월 4일 홋카이도행 비행기표와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오는 12월 4일 배편을 끊었다. 9월 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추석 직후에 일본으로 떠나게 되어 자전거 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매일 택배로 받다 보니 장비 가격이나 호텔에서 자는 거나 거의 비슷한 것 같아 지금 내가 뭐하는 건지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장비 준비는 거의 끝났는데 비가 계속 오기도 하고 환송회로 인해 엔진이 준비가 거의 안돼서 걱정스럽다. 이러다가 퍼지는 것은 아닌지.

 첫날은 삿포로 유스호스텔에서 자려고 했는데, 10월 4일에 무슨 일인지 전부 다 차 버렸다. 삿포로에 저렴한 숙소가 있을까 검색해보지만 쉽게 검색되지 않는다. 첫날부터 텐트 치고 야영할 자신은 없는데, 10월부터 텐트 안에서 오늘 밤 같은 빗소리를 듣겠지? 자전거 여행과 도보여행으로 앞으로 살아갈 에너지와 용기를 다시 얻기를 바래본다.

자전거는 세계여행이라도 할 수 있을 Surly LHT, 내 퇴직금...


 그만둔다고 마음을 먹고 석 달 만에 회사 문을 나선다. 다시 말하면, 석 달 동안 술을 마신 셈이 된다. 처음에는 사표를 만류하려고 많은 이들이 술자리를 청했고, 그 이후에는 잘 가라고 아쉽다고 많은 이들과 술을 마셨다. 안 그래도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서 출발하기 전에 훈련이 필요했는데, 내 몸은 역대 최악의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업무와 여행 준비를 병행하느라 석 달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정든회사에서는 감사패를 챙겨주었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장거리 여행에 알맞은 자전거를 고심하다가 세계여행 용 자전거로 잘 알려진 SURLY LHT(Long Haul Trucker)를 구했다. 고가의 모델인 데다가 국내에 취급하는 곳이 몇 없어서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제 자전거를 분해해서 박스에 담은 다음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내려서 재조립해야만 한다. 이 작업을 미루다가 결국 떠나기 전날까지 짐을 싸게 된다.  

내가 자전거를 분해하다니...내가 분해하다니!!

 집에서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그냥 평범한 여행을 가는 줄 아신다. 여자친구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쿨하게 한마디만 했다. '어디 가서 쪽팔리게 하지 마라'...'응'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친 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몇 시간 후에 공항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다행히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때려치운 친구가 있어서 나를 공항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나는 그날 결국 짐을 싸느라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다시 조립할 수 있겠지, 박스 안에 신라면도 잔뜩 집어 넣었다.

 결국 미친 듯이 우겨넣어서 짐을 두 개로 줄였다. 이미 저 큰 박스는 무게를 초과할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인천공항에서 제어 보니 저거 하나만 무게가 35Kg이나 나단다. 직원이 원래는 32Kg 넘어가면 비행기에 못 싣는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 전날 짐 싸느라고 거의 잠을 못 자서 잠시 생각한다. '아 이대로 집에 가서 잠적하고 그냥 죽도록 자버릴까?' 직원들끼리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 10만 원을 내란다. 이미 난 너무 피곤한 상태라... 알겠다고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간다.

 육개장 하나에 9천 원이다. 언제 또 한국음식 먹나 해서 얼큰한 걸로 하나 시켰는데, 9천 원짜리 미원탕이다. 정말 아무 맛도 안 난다. 짐 걱정도 되고, 잠도 못 자고 해서 비행기에서 기절해버렸다. 아무리 기절을 해도 기내식은 먹고 또 자다가 살건 아니지만 면세품 잡지도 뒤져보고 다시 잠이 든다.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내리자 엄청 뛰어다니는 마약 탐지견

쿵! 도착이다. 아.. 도착이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일본에 온건가?’ 평소 같았으면 빨리 나가서 짐 찾고 숙소로 가겠지만 오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직도 멍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이제 한국도 아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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