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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힘든 학부모에 대한 기억

학부모들과 신뢰를 쌓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늘 애쓰지만 항상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았다. 몇 몇 힘든 경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센터장이 한 교사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었다고 나에게 조용히 말해왔다. 학부모가 불만을 제시하면 반드시 기록에 남기고, 회의 시간에 같이 논의해서 문제 해결 방안을 강구한 후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가 생각하는 개선 방안을 학부모에게 전달해야 한다. 때로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불만이 접수될 때도 있지만 그런 불만이라 하더라도 모든 절차는 같다. 다만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거나 오해가 있는 경우는 해명을 하고 기록에 남겨 두는 점이 다르다. 이번 불만 내용은 심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전체 회의에서 말하지 않고 부센터장인 나에게만 조용히 의논한 것이었다. 

 

한 학부모가 한 교사를 지목하면서 그녀가 센터 밖에서 아이들을 안으로 인도할 때 조금 느리게 움직이는 아이를 꼬집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동학대로 신고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그 교사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알릴 것인가를 의논해야 했다. 

 

센터장은 이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기도 했다. 나이가 어린 여자 아이가 한 남자 교사에게 밀착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도 그 아이가 그 교사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그 교사는 몸을 아주 낮춰서 가까이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토닥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장면을 센터 밖 멀리서 한 학부모가 보고는 성적 추행이라고 조사해 달라고 하는 바람에 센터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교사의 억울함은 풀렸지만 마음의 상처는 크게 남았을 것 같다. 

 

어린아이들에게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이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자꾸 오해가 생기고 험한 생각들이 난무하니 자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이들에게 돌아가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불만 접수가 들어온 그 교사와 또 거기에 지목된 아이를 우리는 며칠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 후 회의 시간에 그 해당 교사에게 불만 신고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얼마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일까 짐작이 갔다. 그 교사는 인도네시아인으로 무슬림이다. 아주 신앙심이 깊어 늘 그 신앙에 따라 정갈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성격이 괄괄한 편이어서 목소리와 행동이 좀 크다는 점이 눈에 띄기는 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아이들 심리 상담 전문 클리닉을 운영했던 어린이 교육 전문가였기에 이런 사태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미안했다. 

 

지목된 그 교사는 화들짝 놀랐다. 화가 나서 다소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녀에게는 어느 학부모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불만을 말한 그 학부모는 그녀를 평소에도 괜히 껄끄럽게 대했던 모양이다. 그 교사가 무슬림이거나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회의에서 나왔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인종차별 문제로 번지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놓고 꼬집어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접수된 불만 사항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불만을 해소할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주어야 했다. 일단 그 교사는 지목된 아이와 조금 떨어져 있기로 했고, 항상 다른 교사들이 그녀 가까이 있기로 했다. 우리의 결정을 불만을 접수한 학부모에게도 전달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다른 교사들이 그녀를 감시하는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그런 불만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교사 혼자만 아이들과 단독으로 있는 시간을 자제하기로 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르륵 별 일이 아니라는 듯 학부모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편견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은 물론 잘 알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서로 알고 나면 이해의 폭은 넓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들이 다양한 문화, 종교, 인종에 대해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대화와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협조적인 학부모님들을 많이 만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함께 아이들을 걱정하는 공조체제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꼭 협조적인 학부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아이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학부모도 있었고, 자신의 육아법을 너무 맹신해서 우리의 말을 무시하는 학부모도 있었고, 너무 걱정이 많아서 우리가 힘든 학부모도 있었다. 그중 생각나는 한 학부모 이야기다.

 

한 중국 여아가 센터에 등록했다. 만 3세 아이린이다. 모든 가족이 어찌나 아이린에게 헌신적이었던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장장 한 달 간이나 엄마, 아빠, 할머니가 센터에서 같이 지냈다. 아이린이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부모님과 할머니가 센터에서 같이 지내는 변명이었다. 한 달간 센터에서 함께 생활하던 그 가족은 갑자기 긴 휴가를 간다면서 센터에 나오지 않았다. 보통은 긴 휴가를 갈 경우 교사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먼저 통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부모들과 서로 소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또 어린이들과 같이 나누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달씩이나 센터에서 같이 지낸 그 부모님들은 교사들과는 별 소통 없이 오직 아이린에게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휴가에서 돌아온 다음 날 급작스럽게 아이린을 혼자 남겨두고 나가시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이린이 센터에 온 지 한 달이 훨씬 넘었다고 해도 아이린은 오직 자신의 부모님과만 같이 있었기에 아이린이 어떻게 적응할지 예상이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린은 아주 순조롭게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아이린의 엄마는 그 이후에도 얼마나 아이린에게 지극 정성인지를 여러 번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린이 센터에서 필요할 것 같은 영어 단어들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쓴 차트를 만들어 가지고 오셨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단어를 차트에서 가리켜 보여주면, 그 단어 옆에 쓰인 중국어를 그 아이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아이도 중국어 차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글자를 가리키면 우리는 그 옆에 쓰인 영어로 그 뜻을 알 수 있다. 만 3세 어린이가 중국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르친 그 어머니의 노력이 놀라웠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모든 교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 가족의 아이린에 대한 애정은 극성에 가깝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린 엄마는 손수 만든 게임보드를 들고 와서 당신의 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같이 그 게임을 해주길 바랐고, 낮 시간에 수시로 센터를 방문해서 아주 길게 딸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그 엄마가 가지고 온 보드게임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굳이 센터에서 그것을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기어이 아이린 엄마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서 그 게임을 가르쳐주고 같이 하겠다고 제안했다. 자신이 설명하면 아이들이 분명히 좋아할 것이라면서. 몇몇 아이들이 동참하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설명이 너무 길어지자 아이들은 지루해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이 그 자리를 떠나려 하자 붙잡기까지 하면서 규칙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지만 아이들은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아 결국 그 게임을 같이 하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발달단계 상 그렇게 오래 집중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일 뿐이지 게임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라면서 위로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딸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의 의견을 무시해 버렸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엄마’라는 직업은 약간은 느리고 게으를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그래야 아이들이 생각하고 스스로 부딪혀 배울 공간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너무 완벽한 엄마는 꽉 찬 자신 속에 아이들마저 가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한다. 리즈의 어머니도 힘든 학부모 중 한 분이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만 옳고 교사들은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셨다. 아이를 픽업하러 오셨을 때 교사들과 어린이의 하루 일과나 교육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들 나눈다. 가까워질수록 가족의 이야기나 직장에서의 힘든 일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가까운 지인을 만나면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학부모와 교사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면 어린이들은 더욱 교사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득이다. 하지만 리즈 어머니는 리즈를 데려다주러 오시거나 픽업하러 오셨을 때 늘 불만 한 가지를 찾아내셔서 센터의 시스템을 나무라거나 교사를 나무라는 투로 말하기 일쑤였다. 

 

리즈가 엉덩이 쪽에 부스럼이 난 적이 있다. 리즈 어머니 이야기로는 병원에서 박테리아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센터에서 옮긴 것이라고 우겨 댔다. 리즈 말고는 부스럼이 난 아이가 한 명도 없었고, 그 이전, 이후에도 없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면서도 리즈는 결석 한 번 없이 꼬박꼬박 출석했다. 교사로서는 딱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첸이라는 만 3세 남아도 기억난다. 그의 부모님은 이름에서 보듯 중국분들이셨다. 어느 날 교사들에게 잔뜩 화가 난 투로 아이가 밤에 열이 났었다고 말했다. 첸의 어머니는 우리가 첸의 옷을 한 겹 벗으라고 했기 때문에 아이가 아팠다는 논리로 우리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열이 나거나 감기 기운이 있으면 집에서 쉴 것을 당부하는데 아침에 등원한 첸은 너무 멀쩡했다. 과연 지난밤에 열이 났다는 아이가 맞을까 싶을 만큼 도착하자마자 놀이에 열중이었고 혹시나 해서 체온을 쟀을 때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첸은 따뜻한 봄 날씨에도 늘 옷을 4겹이나 입고 나타났다. 봄 날씨가 그렇듯 변덕이 심해 갑자기 날이 여름처럼 느껴질 만큼 더워지는 때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반팔을 입고 있었던 어느 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첸에게 재킷을 벗으라고 했던 것이다. 재킷 안에도 겹겹이 옷을 입고 있어서 재킷을 벗은 상태로도 우리의 시각에서는 너무 더운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웠지만 첸의 어머니를 잘 아는 우리는 일단 재킷만 벗으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첸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는 몹시 언짢은 얼굴을 하더니 그다음 날 아침 우리에게 밤에 열이 났었다고 불평하는 것이었다. 


옷을 그렇게 껴입으면 오히려 감기에 걸릴 수 있다는 상식에 가까운 조언은 해 주었지만 첸의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각 가정의 문화와 육아법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어서 학부모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최대한 여러 경로를 통해 조언은 지속된다.


힘든 학부모님이라기 보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한 경우에 속하는 한 경우가 있었다. 그 학부모님을 만난 곳은 처음부터 유아원으로 건축된 건물이었기에 어린이들이 실내와 실외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그런 활동을 쉽게 감독할 수 있도록 공간 설계가 되어있는 유아원이었다. 그 덕에 화장실도 안과 밖에서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을 뿐 아니라 어른들의 키로는 안이 들여다 보여 감독하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화장실에서 잘린 머리카락 뭉치가 나온 것이었다. 황급히 잘린 머리카락과 비슷한 머리색을 가진 아이들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제나의 머리를 살짝 건드리자 잘린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날 처음 우리 반에 온 아이였다. 스스로 화장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었다. 

 

그 유아원에는 2개의 반이 있었는데 하나는 아기반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만 2살 반 경부터 만 5살까지가 같이 있는 반이었다. 아이들의 연령 차가 큰 만큼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에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작은 아이는 큰 아이를 보고 배우고,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 날은 만 2살을 갓 넘긴 제나가 큰 아이들 반으로 옮겨온 날이었다. 유난히 발달 정도가 빨라 화장실도 혼자서 가는데 문제가 없었고, 지적 호기심도 왕성해서 갓난아이들 반에서는 배울 것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어머니의 걱정은 컸으나 우리가 어린이 발달에 대한 이론을 언급하면서 제나는 이제 모험을 할 준비가 된 것 같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아기 반에는 가위를 교사들의 지도하에서만 쓸 수 있었지만 큰 아이들의 반에서는 테이블 여기저기에 가위가 놓여있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신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고가 진정되는 줄 알았는데 다음 날도 또 사고가 났다. 약간 경사가 있고 풀과 나무가 많은 바깥 놀이터에서 굴러 피를 철철 흘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코피가 난 것인 줄 알았는데 식염수로 닦아도 계속 피가 나길래 자세히 보았더니 입술 안이 찢어진 것이었다. 얼음찜질로 진정을 시켰지만 바깥 입술까지 부풀어 올랐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루 종일 제나의 이름을 부르며 제나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으나 또 나뭇가지에 걸려서 얼굴이 긁혔다. 다음 날은 마구 뛰어다니다가 쇠기둥에 얼굴을 부딪혀 눈 주변에 멍이 들었다. 

 

오후에 제나 어머니가 픽업 왔을 때 아이를 보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내가 봐도 너무 한다 싶었다. 그 조그만 얼굴에 긁힌 자국, 부푼 입술, 멍든 눈을 하고는 엄마를 보자 씩 웃어 보였다. 나라도 비명을 질렀을 것 같았다. 너무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를 마음껏 뛰어다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나이가 많은 큰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따라갈 만큼 지적인 발달은 있었으나, 같이 뛰어다닐 만큼 신체적으로는 성숙되지 못했던 것이다. 큰 아이들을 보고 그들처럼 달려대다가 생긴 사고였기에 제나를 큰 아이들 반으로 옮긴 우리의 판단이 잘못되었는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부모님은 2살 반이 따로 있는 다른 센터로 금세 옮겨 가셨다. 물론 제나가 계속 있었다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우리는 세웠을 것이다.

 

이 사고에 대해 함께 일하던 인도에서 온 교사의 해석이 난 기억에 남는다. 인도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했었으나, 호주에서 다시 유아교육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이는 인간의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인간의 에너지를 믿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제나의 엄마 마음속에 제나가 큰 아이들 틈에서 다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에너지가 제나의 사고를 부른다는 말을 했다. 아기들 반에도 규모가 조금 작기는 하지만 바깥 놀이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말이 우연의 일치인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증명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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