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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소통하는 길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마치 외계인과 소통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왜 그래?', 라든지 '내가 말했잖아', 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분명 조금 전 말했는데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한 것이다. 딱히 방법이 먹히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나름 꼭 지켜야 할 몇몇 기본적인 요령은 있는 듯하다. 그것을 나는 '숨 고르기', '들어주기', '말하기' 순서로 정의해 본다. 


숨 고르기 


오랫동안 어린이들과 일한 한 선생님은 센터에 들어서기 전 모드 전환을 한다고 말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든 일단은 접어두고 크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것을 몇 번 한 후 센터의 문을 들어선다는 것이다. 도대체 하루에 그렇게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현장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상을 벗어나는 일 투성이기 때문에 사전에 숨을 고르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숨 고르기는 떼를 쓰는 아이를 설득해야 할 때나 또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당황하기 마련이므로 일단은 아무리 급해도 크게 숨을 한 번 내쉰다. 그러면 일종의 모드 전환이 되는 기분인 것이다.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부모님과 떨어지기 싫어서 매달리는 아이들이나, 싸움이 너무 과열된 사이를 갈라놓을 때에도 일단은 보호자가 한 번 큰 숨을 내쉬고 안정된 상태에서 협상을 하든 달래든 하는 것이 늘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같이 흥분한 상태가 되어 일이 꼬이기 마련이다. 

 

딱히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억지로 풀어보려 하면 더 엉키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무조건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규칙이고 상책이다. 우리는 그렇게 일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고, 혼자서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을 늘 칭찬했다. 그것이 팀으로 일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들어주기


숨을 고른 후 그다음 차례는 들어주기이다. 몸을 낮추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고 눈을 바라보며 내가 너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음을 몸으로 알려야 한다. 이 과정은 늘 인내가 필요하다.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는 흥분한 상태가 더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숨을 한 번 골랐기 때문에 나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스스로 세뇌시킨다. 그러면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난다. 온화한 표정이 지어지면서 아이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된다.

 

떼를 쓰는 아이도, 싸움을 했던 아이도, 심지어 몸이 아파서 우는 아이도 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말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 사태의 절반은 해결된다고 보인다. ‘그래 그랬구나’만 해주어도 금세 밝아져서는 까르륵거리며 뛰어다니는 일이 허다했다. 

 

해결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뚝딱 나오면 좋겠지만, 그것이 곤란하거나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는 늘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구를 들어줄 수 없음을 밝히고 그 이유도 밝혀야 한다. 잠시는 더 흥분상태가 될 수도 있지만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은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말하기


말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유아교육 전공 수업 중에 ‘나 전달법 I Message'에 대해 배웠을 때 나는 우리 아이들과의 지난 대화들에 대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많은 가정에서 그렇겠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일상이 얼마나 바쁜가. 마음과는 달리 너는 왜 그러냐 하는 비난의 말들과 더불어 이래라저래라 명령조의 말들이 쏟아지기 일쑤이다.

 

나 전달법’은 세 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심리학자 토마스 고든이 창시한 효과적인 '부모역할훈련 Parent effectiveness training'의 한 부분이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할 때 늘 마음속으로 ‘나 전달법’을 한 번 되새기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앞에서 말한 숨 고르기와 듣기는 늘 기본으로 행해야 하고, ‘나는’이라고 대화를 시작하는 훈련을 학생일 때도 실천했다. 

 

나는’이라고 발음할 때 ‘는’에서는 숨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그럼 일단 숨을 한 번 쉬는 효과가 발생하게 되고 ‘나는’이라고 말을 뱉었으니 앞으로 하고자 하는 말의 모든 주체가 ‘나’이므로 내 말에 더 신중하게 되는 효과도 분명 있는 듯하다. 신중하다는 것은 감정이 고조된 말이 튀어나올 확률은 낮아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단 ‘나는’이라고 말하면 그다음은 상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게 된다. 아이가 아무리 떼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도 ‘나는’이라고 말을 시작하면 그다음 말은 최악의 말이 ‘네가 떼를 쓰는 것이 싫어’가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는’에서 한 박자 쉬는 효과를 누린 후에는 ‘나는 네가 떼를 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로 순화되기 마련이다. 나를 전달하는 방법이 아니고 ‘너’로 시작하면 말하고자 하는 모든 문장이 너무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상황이 된다. 같이 떼를 쓰는 경우라 하더라도 ‘너’로 시작된 문장 다음에는 ‘왜 떼를 쓰고 난리야’ ‘조용히 해’ 뭐 이런 말만 나오게 된다. 


 나 전달법’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나는 ‘나 전달법’으로 아이들과의 대화를 아주 훌륭히 해 내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이유 없이 또는 친구와 싸우고 온 세상이 끝난 듯이 울어대는 아이라도 ‘나는’이라고 시작하면서 한 숨을 돌린 후에는 ‘나는 네가 그렇게 크게 울면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듣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었고, 효과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굿 보이 Good Boy, 굿 걸 Good Girl!' 유아교육 전공과정 마지막에 한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해 준 말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좋은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그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은 굿보이, 굿걸이 되고 싶어 한다’고 표현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교생실습 중 만난 많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응하느라 노력을 했지만,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던 순간이 너무 많았고, 그것을 어떻게 잘 다스리느냐가 나의 과제였던 참이었다. 


'좋은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라는 것은 그들이 골치 덩어리이거나 말썽꾸러기라는 이름을 얻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착한 어린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도 환경 또는 오랜 버릇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어떻게 착한 어린이가 되는지 모른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했다. 그 길을 알려주고 인도해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내가 일하는 동안의 좌우명이 되었다. 


‘그만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고, 수시로 다른 아이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을 일삼는 아이도 있었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해서 나를 놀리는 취미가 있는 아이도 있었고, 끊임없는 질문으로 나의 체력을 고갈시키는 데 열중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그 모든 아이들이 좋은 아이로 불리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 아이가 되는 것인지 전혀 모르거나, 좋은 아이와 어울릴 기회가 없었거나, 또는 나름 노력을 해도 좋은 아이로 봐주지 않는다는데서 그들의 행동은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학부모와 교사 간의 돈독한 신뢰가 선행되어야 했다. 센터나 학교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생활 패턴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이들의 행동, 태도 문제를 서로 의논하고 있었고, 학부모님들과도 꾸준히 대화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학부모님들과는 특히 친구처럼 이런저런 쓸데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스스럼이 없었다. 이런 노력들로 한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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