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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학부모 이야기

학부모들과 깊은 신뢰를 쌓아야만 일하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성격의 학부모들을 만났지만 기억에 남는 몇 몇 학부모 이야기를 해 본다. 


한 어린이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턱에 멍이 든 적이 있다. 만 3세 여아였다. 아이들이 손을 씻고 에어 드라이어에 말리는 것을 나는 바로 유리 건너에서 보고 있었다. 준비가 끝난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는데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우르르 나에게 몰려와 함께 손을 말리던 남아가 그 아이를 밀었다고 난리가 났다. 아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고가 난 아이를 살펴보니 턱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얼음찜질을 하고 사고 보고서를 써 두었다. 

 

그 날 넘어진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러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얼른 그 어머니께 달려가고 있는 사이 임시 교사가 이미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 어머니께 쪼르르 달려가 ‘누구누구가 걔를 밀어서 다쳤다’고 이르면서 사고를 낸 아이의 이름을 언급한 상태였다. 내가 그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분의 얼굴이 새초롬했다. 나는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미안한 일이라고 말하고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임을 설명했다. 금세 어머니의 얼굴이 펴지고 집에서도 흔히 있는 일인데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낯선 새로운 교사가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은 특정 아이의 짓이라고 고자질하는 상황이 되자 그 어머니는 뭔가 큰일이 있은 듯 느꼈던 모양이었다. 특히 못 보던 낯선 교사의 등장으로 그 어머니는 아무도 당신의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지 않았다고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서로 잘 알고 신뢰하는 교사가 사과의 뜻을 전하는 순간 그 얼음이 녹아버렸던 것 같다. 교사와 학부모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이렇게 소소한 일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러니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신뢰를 쌓는 일 또한 교사의 중요 임무 중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붙임성 좋고 예쁜 만 3세 여아, 샐리의 부모님 또한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부모님이 떠날 때는 나에게 와락 안기곤 했었는데, 그때 앙상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뼈도 가늘고 살도 없는 체형이었다. 너무 가녀려서 샐리가 뛰어다닐 때는 날아다니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샐리는 늘 폴짝폴짝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지치지도 않고. 당시 우리 센터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는데 어느 날 샐리가 그중 한 나무를 오르려고 시도하다가 무릎을 다쳤다. 상처를 치료하고 안전 차원에서 오르지 못하게 하자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날 오후 샐리의 아버지께서 오셨을 때 사고 보고서를 들고 무릎을 다친 경위를 말씀드리니 놀랄 줄 알았던 그 아버지의 반응이 정말 의외였다. 그 가족들은 남아프리카에서 왔는데 그곳은 아이들이 뛰고 뒹굴고 나무를 오르는 것이 일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머리만 깨지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덧붙인다. 사고 보고서에 사인하면서 이곳은 너무 아이들을 보호한다고 약간 투덜거리기까지 하셨다. 

 

사실 호주가, 그것도 시드니가 어린이 보호에 있어서 너무 지나칠 정도라는 말은 우리끼리 자주 토론하던 말이었다. 너무 어린이를 외부적 충격에서 보호하려 하다 보니 공용 놀이터에서 그네가 사라지고 높이 올라가는 장애물 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혹여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 다치면 책임 공방이 복잡해져서 아예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늘 도전하면서 몸으로 배운다. 아예 도전하지 못하게 하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도전과 안전 사이 그 중간 어느 부분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세울 것인가가 교사들에게는 늘 고민이다. 

 

학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이 다 모여 바비큐도 하고 서로 인사도 하는 그런 날을 마련한 적이 있다. ‘패밀리 데이’라고 명명하고 학부모님들께 많이 참석해 주시길 부탁드렸다. 샐리도 부모님과 샐리의 오빠 둘과 함께 참석했다. 오빠들도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나무에 오르다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조금 후 놀이터에서 보니 샐리와 샐리의 두 오빠가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학부모님들이 다 같이 있을 때는 학부모님들의 감독하에 있으므로 그들의 육아방식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우리 자체 내 규정을 강요하지는 않기에 나는 나무에 오른 그들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샐리 오빠 중 한 녀석은 깁스 한 팔로 잘도 올랐다 싶었다. 그 가족 중 누구도, 그들의 엄마조차도 깁스라든지 애들이 나무에 오르는 일 따위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에게서 그 나이에 딱 맞는 천진하고 팔딱거리는 생생한 어린이의 냄새가 느껴졌다. 그것이 어린이 다움 아닐까.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로 시작하는 노래가 생각났다. 우리들은 언젠가부터 ‘너를 위한 안전’이라는 것에 갇혀 어린이들이 도전하고 모험하는 기회를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국이나 호주나 엄마들은 피곤하다. 특히 일하는 엄마들은 제대로 쉰 기억이 별로 없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방과 후 학교에 저스틴을 픽업하러 그의 엄마가 왔다. 교사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저스틴의 엄마는 언제나처럼 바빠 보였다. 조금 있다 보니 저스틴 옆에 아이의 가방을 든 채 어정쩡 서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 보였다. 퍼즐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저스틴이 계속 ‘조금만 더’를 외치고 있어서 엄마는 테이블에 기대 선 채 피곤한 듯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앉아서 기다리라고 권했더니 그 엄마 말이 자신은 지금 앉으면 여기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백 퍼센트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딱 그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해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부엌으로, 세탁장으로 종종거리며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남편은 잠시만 앉아서 쉬었다 하라고 친절하게 들릴만한 말을 했다. 나도 그때 저스틴의 엄마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 ‘지금 앉으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잠깐이라도 쉬었다 다시 하면 괜찮을 텐데 미련하게 군다는 식으로 말해서 나의 화를 돋우곤 했다. 아직도 당일에 마쳐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일단 앉으면 그대로 눕고 싶을 것 같아서 더 종종거리게 되곤 했다. 

 

내가 심히 공감을 표했더니 저스틴 엄마 자신은 미용사라고 말을 시작했다. 우리 센터 가까운 곳에 최근 미용실을 열어 하루 종일 서있다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또 가사일이 기다리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저스틴이 조금 더 자라면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아이들은 금방 크고 그러면 또 그때가 그리워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상상하는 것처럼 여유만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의 경우 아이들이 커서 손이 덜 갈 때쯤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때부터는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니 참 답이 없는 노릇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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