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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건 별로 없지만 Aug 01. 2022

[뒷담화] 블루 재스민(2013)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뒷담화>는 팟캐스트 <아는 건 별로 없지만>의 초기 기획 의도였던 '작품에 대한 감상 나누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만든 모임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나눈 대화를 기록합니다. 대화 참여자들은 매주 이름 대신 알파벳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사용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2013)입니다. (스포일러 포함)




D: 오늘은 <블루 재스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근데 우리 존댓말 써? 아니면…

B: 그냥 반말 해도 되지!

D: <블루 재스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하는데요… 다들 잘 보고 오셨나요?

B: 나 생각보다 재밌었어. 제목 듣고 우울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블루’라서…

A: 우울한 영화잖아!

B: 그러니까 그 분위기 자체가. 좀 웃겼잖아. 나는 되게 웃으면서 봤거든.

D: 아 진짜? 어디서?

A: 웃으면서 봤다고? 

B: 어. (웃음) 약간 사이코 같아…?

A: (웃음) 사이코 같은데?

D: (웃음) 그니까.

B: 아니 대사도 너무 재밌고 유머 코드가 많지 않았어?

D: 위트가 좀 있긴 했지.


D: 내가 올린 발제 관련해서 다들 그것도 읽어봤나?

B: 발제 다시 말해주세요.

D: 일단 큰 전체 제목으로 삶의 주체와 책임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왜 이런 주제를 잡았는지 혹시 맞혀볼 사람~

B: 재스민의 망가진 삶에 책임이 누구한테 있냐 하는 생각을 해서 한 거 아니야?

D: 맞아. 그러니까 나는 재스민의 삶이 남편 때문에 망가졌다고 처음에 생각을 했었는데, 보면 볼수록 스스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감정에 솔직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길을 택한 게 아닌가.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이 많이 들어가지고, 나도 결론 짓지 못해서 이야기해보고자 영화를 가져왔는데. 발제를 한 번 읽어 볼까? 

'어쩌면 재스민은 피해자가 아닌 본인의 삶에 대한 가해자입니다. 주체성 있게 인생을 망쳤을 수도요. 누군가 다가와 미래를 얘기해도 과거와 엉켜버린 채로 사기꾼이 된 스스로를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 재스민을 욕할 수 있을까요? 드와이트와의 전화 후에 보였던 재스민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재스민의 삶은 주체적인 삶일지 아닐지, 솔직했던 것일지 아닐지. 우리는 과거를 먹고 사는 걸까요?'

일단 가장 첫 번째 질문인 그 누가 재스민을 욕할 수 있을지. 너희들은 재스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해?

A: 나는 욕까지는 아닌데, 자기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해. 남편이 물론 잘못을 했지. 사기를 치고 했으니까. 근데 그 순간까지의 일은 남편 탓을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자기가 자초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어.

D: 어쨌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거네.

A: 옳은 선택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C: 나는 그래도 재스민이 잘되길 생각하면서 봤어. 처음에 치과 일 하고 컴퓨터 배우고… 좀 불안정해 보이긴 했는데, 계속 마음속으로 '아, 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근데 그럼에도 흔드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잖아. 예를 들어 치과 의사는 계속 추근덕대고.

D: 치과 의사 너무 짜증나지 않았어?

C: 너무 싫었어.

A: 키스할 때.

D: 아 진짜…

B: 근데 굳이 입맞춤 장면까지 넣었어야 됐나? 뭐 물론 감독의 의도도 있고 배우랑 합의가 됐겠지만, 그 정도로 대배우면.

C: 너무 폭력적으로 보여서?

B: 어. 막 껴안는 것까지만 해도 충분히 그 상황이 너무 설명이 되는데 굳이? 입맞추는 것까지? 배우가 연기하면서 너무 불쾌했을 것 같아. 딴 얘기였어. 계속해.

C: 어쨌든 그랬어. 연민과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봤다?

A: 근데 결국에는 자기가 자기 미래에 대해서 기대하는 거를 스스로 일궈내려고 하기 보다는 성공한 남자를 만나려고 한 거잖아. 나는 좀, 뭐라 해야 되지? 성공을 자기 자신한테서 찾는 느낌이 아니어서 별로였어.

C: 그래서 치과 다니면서 공부하려고 했을 때 잘되길 바랐던 것 같아.

D: 처음으로 뭔가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해가지고.

C: 맞아.

D: 근데 나도 처음에는 '왜 저렇게 살지?' 왜냐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올바르게 사는 방식은 아니잖아. 자꾸 남한테 기대어서 살고 자기를 허영으로 꾸며가지고 그걸 이용하려고 하고. 근데 어떻게 살아왔을지가 좀 궁금한 거야, 재스민이 과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계기는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떤 건지에 따라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성장 과정에서. 나는 보면 볼수록 되게 불쌍하고…

A: 불쌍하지.

D: 이미 누군가가 옆에서 조언을 해준다고 해서 될 상황이 아니게 된 거잖아.

A: 너무 망가져버려서.

D: 어. 너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마지막엔 거의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나오잖아. 너무 안타깝긴 했어, 그녀의 인생이.

C: 너는?

B: 난 C랑 좀 비슷했던 것 같아. 너무 안타깝고. 드와이트한테 거짓말할 때 '아, 왜 저러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근데 사실 C 말대로, 우리 다들 느꼈겠지만, 스스로 그래도 뭔가 해보려고… 사실 재스민 같이 최상류층에 있었던 사람이 치과 리셉션을 한다는 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을 텐데, 그래서 안 한다고 했잖아 처음에. 그랬는데 결국에 들어가고…

A: 적응도 좀 하잖아.

B: 어. 일도 좀 늘고 하는 거를 보면서 나도 응원을 했었는데 모욕적인 일을 당하게 되고 하면서… 그럴 때  딱 순간적으로 어떤 유혹이 들어온 거잖아 사실. '파티에 갈래?' 그때 나라면 과연 거기서 '아니야. 정신 차리고 이번에는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도 연민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

D: 어떻게 보면 자기가 살아왔던 방식 중에 가장 자기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그리고 제일 쉬웠을 수도 있어.

B: 그치.

D: 그래서 다시 자기도 모르게 구렁텅이 속으로… 진짜 어떻게 살았는지가 너무 궁금해. 청소년, 유년기 때.

C: 근데 그 가정도 되게, 말 한두 마디 정도로만 나왔는데 복잡해 보이지 않았어?

D: 맞아 맞아.

C: 둘 다 입양됐고, 근데 부모는 좋은 유전자의 재스민만 택했고, 이런 게 일반적인 가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

B: 근데 좀 딴 얘긴데 케이트 블란쳇이 계속 같은 에르메스 가방 들고 다니잖아. 같은 샤넬 트위드 자켓이랑. 그런 게 나는 되게 좋았어. 표현을 너무 잘한 것 같아.

D: 맞아. 그 감정이 너무 느껴진달까?

B: 마지막 자존심 같은 느낌이…

A: 버리지 못하는…

D: 근데 케이트 블란쳇 연기 너무 잘하지 않아?

B: 어. 그리고 너무 예뻐.

C: 이걸로 여우주연상 받지 않았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D: 받을만 해.

B: 너무 예쁘고, 캐스팅 너무 잘했어. 연기 너무 잘해.

C: 너무 우아하게 생겼어. 너무 진짜 재스민.

D: 내가 진짜 너무 좋았던 게, 좀 더러울 수도 있는데(웃음), 가끔 겨드랑이 땀이 옷에 묻어서… 그것까지 너무 좋았어. 그런 연기까지. 연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B: 다들 연기 너무 잘했어. 거기 나오는 남자들 다 너무 짜증나.

D: 근데 난 진저가 그 배우인지 몰랐다? 그 배우가 엄청 유명하고…

C: <셰이프 오브 워터> 나오고…

B: 치과 의사도 <셰이프 오브 워터> 그 사람 아니야? 연구원? 러시아 연구원?

C: 아 진짜?

D: 내가 이 영화를 한참 전에 봤을 때는 그 배우를 몰랐을 때여가지고… 보니까 출연진들도 너무 좋더라고.

C: 그리고 나는 캐릭터들 다 별로였어. 아무도 이해 못하겠고.

B: 맞아.

C: 그래서 더 재스민한테 연민을 느꼈나 봐.

D: 제일 정상인 건 그냥 재스민 남편 같았어. 되게 현실적인 사람?

A: 아 근데 너무 바람둥이잖아. 심지어 10대랑 미래를 꿈꾸는 게. 10대인 애랑? 그 나이 처먹고?

D: 아 근데 그냥 그들 중에서? 아니면 (제일 정상인 건) 아들?

C: 나 아들! 나도 아들.

B: 근데 보다가 아들이 하버드 자퇴할 거라는 얘기 할 때 '아… 그러면 안 되지…' (일동 웃음)

A: 그치. 그것도 정상 아니지.(웃음)

C: 근데 얼마나 싫었겠어.

B: 그래도 휴학을 하지!

C: 맞아 맞아. 나도 '휴학하지 차라리. 자퇴하지 말고.'

B: 아무리 그래도 하버드를 그만두는 건 좀… 아무튼, 넘어갈까? 다음 이야기로.


D: 드와이트와의 전화 후 보였던 재스민의 울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드와이트가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재스민이 승낙한 이후에 전화를 끊고 갑자기 엄청 울었잖아.

B: 맞아.

D: 이것도 짚고 넘어가면 좋을 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B: 나는, 제목이 '블루 재스민’이잖아. 그리고 재스민이 계속 노래 '블루문(Blue Moon)' 이야기를 하잖아. 그래서 '블루문’의 뜻이 뭔지 찾아봤다? 너네 혹시 알아? (일동: 아니) 서양에서 쓰는 말인데 한 달 안에 두 번째로 뜨는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한대. 그래서 난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보름달이 풍요의 의미잖아. 그래서 '재스민이 두 번째 기회를 잡으려고 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은 게,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불길한 의미래. 그러니까 보름달이 두 번째로 뜬다는 건 엄청 안 좋은 의미인가 봐. '블루문' 자체의 뜻이 '배신자의 달’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서 왜 두 번째 보름달을 자꾸 영화에 넣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진저도 그렇고 재스민도 안 좋은 결과를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자꾸 되풀이하잖아. 진저도 오기가 손찌검도 하고 그랬는데 칠리 같이 또 폭력적인 성향의 남자를 만나고. 

아마 사람이 경험이 있으면 뭔가가 다가올 때 자기도 모르게 예감하게 되는 촉이 있을 텐데, 그래서 재스민이 통화하자마자 울었을 때 엄청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 같아. 드디어 여기서 벗어날 수 있겠다 하는 안심도 있을 것 같고. 자기가 인지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이 일의 결말에 대해 알고 있어서 그것에 대한 불안감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혐오적인 감정, 이런 게 다 복합적으로 드러난 눈물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A: 근데 칠리는 진저가 두 번 되풀이하는 선택인지는 의문이야. 난 진저랑 재스민이 다른 선택을 하는 느낌이라고 생각을 했거든. 재스민은 드와이트라는 남자를 만나려고 해서 똑같이 실패하는 거라면, 진저는, 진저도 파티에 가서 잠깐 다른 남자를 만나고 흔들리긴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마트 점원으로 일을 하든 뭘 하든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했던 것 같아서. 둘이 같이 입양돼서 같이 자라왔지만 서로 다른 결말을 맞는. 나는 그렇게 느꼈어.

B: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다.

C: 근데 난 진저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아. 그 상황에서 더 나아질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그냥 회피하기 위한 쉬운 선택 했을 뿐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칠리가 자기 분수에 맞는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별로였다고 생각하거든. 왜냐하면 처음에 재스민 만났을 때 했던 언행들이나, 그 후에 술독에 빠져 살거나 전화기를 부수거나, 진저 직장에 와서 난리 치는 모습을 보고…

A: 아 직장 와서 난리치는 건 진짜 최악!

C: 그래서 진저가 그냥 안주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진저도 되게 별로다.'

A: 나도 진저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까지는 아닌데,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B: 재스민이랑은 달랐다?

A: 응.

B: D는?

D: 둘이 다른 건 맞는 것 같아. 재스민은 계속 뭔가를 움직여서 자기 상황을 바꾸려고 하고, 진저는 안주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둘 중에 그나마 더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진저인 느낌이 들어서 그게 좀 재밌는 것 같고. 

다시 돌아와서, 나는 처음에 드와이트와의 전화가 끝나고 울었을 때, '블루문’에 대한 의미를 몰랐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자기 연민이나 화의 감정까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B 얘기 들어보니까 맞는 것 같아. 난 그냥 안심, 안도의 눈물로만 생각을 했어서. 그래서 더 안타까운 장면이었고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어.

B: 너희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했어?

A: 안도하고… 얼마나 저걸 간절하게 바랐으면 저렇게 울음이 터질까.

D: 살짝 소름 돋았어.

B: 연기 너무 잘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전화 끊고 바로 우는… 너무 대단해.

A: 그니까.

C: 나도 (눈물의 의미가) 복합적이라고 생각했어. 그 전에 되게 혼돈의 상황이었잖아. (칠리가) 때려 부수고, 전화는 안 오고. 그때 막 이만큼 감정이 고조가 됐다가 탁 풀리면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을 수도 있고. 그리고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엔 불편함이 있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니까 이 관계를 또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불편함, 이런 것도 있었을 것 같고. 복합적이었을 것 같아.

A: 그랬겠다.

C: 재스민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드와이트한테만 그랬던 거잖아. 나는 이 영화 결말을 먼저 봤거든? 처음에 한번 켜놓고 멍 때리고 보다가 결말에 재스민이 울고 있길래 계속된 거짓말을 하다가 파멸을 맞이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드와이트한테만 그랬던 거잖아.

A: 근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미 남편의 사기 행각을 알면서도 입을 닫고 있던 것도 속이는 것에 일조한 거라고 볼 수 있어서. 나는 거짓말을 드와이트한테만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C: 내 말은 망하고 나서. 망하고 나서 모두에게 이야기를 하고 처음에는 이겨내려고 하다가 드와이트한테 거짓말을 한 상황이어서.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거다.


D: 결론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나름 반전이었잖아. 결국 남편의 사기가 걸린 게 재스민 때문이었다는 게. 그거 되게 생각지도 못한 전개이지 않았어?

B: 어 맞아 놀라긴 했어.

D: 그때 경찰에 신고한 게 남편이 바람피워서 그거 때문에 빡쳐서 그런 거지?

C: 그치.

B: 난 그 심리도 좀…

D: 그치. 그 심리도 좀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

C: 난 솔직히 이해 가.

D: 그러니까 도대체 자기 자신한테 어떤 가치가 가장 중요하길래. 그 순간 뭔가에 꽂혀서, 그러니까 자신을 무시했다거나 어떤 것 때문에 갑자기 충동적으로 한 거잖아, 신고를.

A: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바람을 그때 알게 돼서 거기에서 터진 건 아닌 것 같고. 이 남자(남편)가 그냥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는 게 아니라 다른 여자랑 '미래를 꾸리고 싶다’라는 얘기가 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 그 전에는 '바람이야 피울 수 있지', 그래도 미래는 나와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이 남자가 나와 함께하는 미래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진지하게 사랑한다, 미래를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거에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아. 

D: 어떻게 보면 남편이 그냥 재스민의 전부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재스민의의 세상을, 꿈을, 모든 걸 다 꾸며준 사람이잖아. 그 사람이 떠나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B: 어. …그치, 바람 자체는 사실 알고 있었지. 동생이 얘기했었잖아. 언니는 불안하면 모르는 척한다고.

D: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남이 자기를 망치기 전에 자기가 자기를 망치는 그런 느낌.

C: 근데 진짜 제일 중시하는 가치가 뭐였을까? 

D: 그치! 난 그게 제일 궁금해.

C: 만약에 돈이었으면 사실 그렇게 전화하지 않았을 거고. 그냥 진짜 사랑이었던 건가? 근데 사랑이었다고 하기엔 그 후에 계속 돈을 좇았잖아. 지위라고 하기에도 (남편이) 바람피워서 버려진 거나 사기 행각이 들켜서 버려진 거나 똑같은데, 어떤 가치를 제일 중시했는지 모호하긴 하다.

B: 재스민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humiliating(굴욕감을 주는)'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잖아. 그게 엄청 중요한 가치인 것 같긴 하거든? 근데 이제 어떤 거에서 모욕감을 느끼는지는… 그때도 그 일(남편이 바람피우고 내연녀와 결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을 'humiliating'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반 충동적으로 전화를 건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 후회했다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어느 정도 충동성이 있었을 텐데… 나도 궁금하다. 뭐가 제일 중요했을까.

A: 무조건적인 돈은 아닌 것 같아. 왜냐하면 남편이 '너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잖아.

B: 맞아.

A: 그런데도 그걸 못 버텼다는 거는 돈은 아닌데…

D: 너무 완벽주의자인가? 본인이 그리는 어떠한 허상의 세계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비틀어지면 좀 치욕스러운…

A: 치욕스럽다는 게 남의 시선을 너무 중시하고 있는 삶이었던 것 같아. 돈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그 사람(남편)이 만약에 다른 가정을 꾸려, 그러면 그건 남들이 알게 되는 거잖아. 그래서 그걸 못 참지 않았을까.

B: 자기가 2순위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가정이 몰락하는 게 낫다.


D: 넘어가면 재스민은 주체적인 사람이었을까? 의견이 반반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둘 다 가능한 얘기일 것 같아.

B: 엄청 어렵긴 하다.

C: 주체적인 삶은 아니지 않을까? 왜냐하면 물론 재스민이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법을 모색했던 건 맞지만, 그 방법이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는 거였잖아. 주체적인 삶은 아니었… 진취적인 삶이라고 할 수는 있으려나? 모르겠네. (웃음) 진저에 비해서?

B: 근데 재스민의 선택을 나도 옹호하진 않는데, 재스민에게 주체성을 강요하는 게 너무 잔인한, 폭력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아까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어쨌든 처음에 노력을 했잖아. 치과 다니고, 컴퓨터 배우고. 그랬는데 계속해서 어떤 모욕감을 느끼는 일들이 생기고 했을 때, '그래도 네가 주체적으로 네 삶을 스스로 일궈야지'라고 몇 명이나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좀 들어. 왜냐하면 주체성이 자존감이랑도 연결이 될 텐데. 기본적인 자존감을 갖추려면, 물론 특수한 경우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기반이 있는 상태여야 될 것 같은데… 재스민은 사실 집도 없고 얹혀 사는 신세고. 거기서 얼마나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A: 드와이트한테 솔직하게 말했으면 (둘의 관계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B: 드와이트는 정치를 생각했으니까 안 이뤄졌을 것 같아.

C: 맞아.

B: 낭만주의자였으면 모르겠지만… 또 모르지? 만약에 드와이트가 재스민이 너무 화술이 좋거나 해서 오히려 이 스토리를 정치에 사용하겠다고 생각했으면 모르겠는데. 바로 드는 생각은 안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근데 나는 계속, 너네도 그러지 않았어? 드와이트는 사기꾼 아닐까? (일동 맞아 맞아) 망원경 사고 이럴 때. 계속 불안했어.

C: 그리고 (드와이트가) 집을 샀잖아. 집을 샀는데 또 비엔나에 간다고 해서 '저 집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이렇게 생각했어.

B: 아 그러네.

C: '저 집도 가짜인가?'

A: 에어비앤비. (웃음)

B: 하루에 백만 원짜리? (웃음)

A: 어. (웃음)

C: 초콜릿이랑 와인 먹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니?

A: 아~ 맞아. (드와이트가 비엔나에) 가서 초콜릿 케이크랑 와인 먹자고 할 때.

B: 그리고 만약에 주체성에 대해서 얘기할 때 재스민의 계획이 성공했으면 주체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만약에 이게 어떤 여자의 성공담처럼 꾸며진 이야기면. '그렇게 해서 결국에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로 마무리 됐으면 되게 머리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A: 근데 그걸 '주체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 '주체적'이다?

C: 우리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보면서 '저 사기꾼' 이러지 '주체적이다' 이렇게 생각하진 않잖아.

B: 근데 주체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 않아? '쟤는 너무 주체적이지 못하다'.

A: 그런 거에 포커스가 안 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D: '주체성'은 좀더 긍정적인 뭔가가 있을 때 나오는…

A: 그렇지 그렇지. 근데 불쌍하긴 했어. 그리고 그 자매 자체의 분위기가 너무… 둘이 은근히 서로 깎아내리잖아. 진저도 언니가 어쩌구 저쩌구 계속 얘기하고, 재스민도 대놓고 무시하고. 그런 게 둘 다 불쌍했어. 자라오면서 계속 그런 분위기였을 것 같은 느낌?

C: 진저는 언니가 저렇게 얘기하는데 별로 화 안 내는 것 것도 신기했고.

D: 맞아 맞아.

C: 근데 끊임없이 자기 남자들한테 언니 뒷얘기 하는 것도 좀… 

B: 맞아.

C: (사는 동안) 계속 그랬을 것 같아.

B: 근데 아까 D가 재스민이 과거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방금 이 얘기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둘 다 입양됐을 때 재스민은 '좋은 유전자'라고 해서 부모한테 선택받았고, 진저는 집을 나왔잖아. 재스민은 거기부터 시작된 것 같아. '아, 내가 누군가한테 잘 보이면 안 좋은 환경에서 좋은 환경으로 넘어갈 수 있구나.' 그게 할과의 결혼을 위해서 대학도 다 포기하는 계기가 됐을 것 같고. 진저는 어렸을 때부터 집을 나온 상황에서 당장 내가 안주할 데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사고의 메커니즘이 생긴 것 같아.

C: 그리고 계속 언니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B: 부러워했겠지. 엄청.

C: '할 같이 돈 많고 잘생긴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선택하지' 뭐 이런 얘기도 그렇고. 계속해서 집에 두고 얘기 듣는 것도 한때 선망했던 대상이라서이기도 한 것 같아.

A: 그리고 은근 언니가 데리고 다니고 할 때 되게 좋아하고.

B: 맞아. 그리고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도 동생으로서 걱정도 했고. 정이 있긴 하겠지, 서로.

A: 서로가 서로를 제일  잘 알아서 연민하기도 하고 그런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서로한테 자격지심도 있는데 연민하기도 하고.

C: 진저가 계속 좋은 남자를 못 만나는 것도 그래서일까? '예쁘다, 널 사랑한다' 이렇게 말해주면…

D: 아 바로 혹해서? 이런 게 처음이어서? 

C: 어. 계속 애정 결핍에 시달려 왔어서. 그래서 유부남한테 바람맞았을 때 바로 칠리한테 간 것도…

B: 칠리는 어떻게 이름도 칠리야. (웃음) 불쌍하다 (재스민과 진저) 둘 다.

D: 근데 결국 현재는 다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C: 그래서 교육 정책이 진짜 무서운 거잖아. 

D: 갑자기? (웃음)

C: (웃음) 교육 정책이 진짜 중요하고 무서운 이유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게 이제 10년 20년 후에…

B: 그치.

C: MZ세대도 10년 전에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로 나갔을 때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는… 

D: 박수~ (일동 짝짝짝)

C: 그게 너무 신기하지 않니? 난 그런 거 너무 신기해. 베이비 붐 정책으로 50~60년대생 사람이 많아지고 이런 거.


A: 근데 딴 얘기지만 음악을 너무 잘 쓰지 않았어?

D: 어, 맞아 맞아.

A: 엄청 진짜 장난 아니던데.

C: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살렸던 것 같아.

A: 보니까 우디 앨런이 '영화는 재즈 없이 만들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말했던데?

B: 아 진짜?

D: 딴 얘기긴 한데 우디 앨런 영화스럽지 않지 않았어? 

A: 어 맞아.

D: 그러니까 그런 요소도 있긴 했는데, '이거 우디 앨런 영화다' 보통 이렇게 되잖아. 그건 아니었어.

B: 아 그래? 난 완전 우디 앨런 같다고 생각했는데.

A: 우디 앨런 영화 약간 잘 모르겠는 느낌의 영화들 많잖아.

B: 나 몇 개 안 보긴 했어. <미드나잇 인 파리>랑 <카페 소사이어티> 봤거든 나는. <카페 소사이어티> 봤어?

C: 나 봤어. 안 봤어. (?)

B: 구체적인 결말은 아니고 느낌만 얘기해도 돼? 결말의 분위기 같은 거? 그것도 약간 우울해. 근데 그것도 되게 예쁘고 그것도 좀 씁쓸해, 이것처럼. <미드나잇 인 파리>는 해피엔딩스럽게 끝나긴 했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우디 앨런 같다고 생각했어. 대사 엄청 많은 것도 그렇고.


D: 마지막 장면에 대한 생각은 어때?

B: 혼자 말하면서 끝나는 거?

D: 그 이후에 뭔가가 더 있었을까? 재스민한테?

C: 나는, 너네가 동의할지는 모르겠는데, 진저랑 재스민을 비교하자면 재스민이 좀 더 나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했어. 다 없어지고 0에서 시작할 수 있잖아.

A: 0인지 모르겠어 나는.

D: 과연 시작할 수 있을까? 재스민이?

C: 그래도 아직 젊고…

A: 똑같은 방식을 또 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그냥 드라이트를 놓치기만 한 걸로 끝났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신경쇠약에 정신질환이 심해진 것처럼 나오니까. 복구 불능 같은 상황이 나와서 미래가 상상이 안 되는 한다.

D: 그치. 그 이후에도 같은 방식을 쓸지 아니었다면 어떤 방식을 썼을지…

A: 난 자살했을 것 같아.

C: (안타까운 탄식)

B: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D: 어쩌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또 허영을 그리면서… 죽어서 더 좋은 삶을 살 거다, 이럴 수 있을 것 같아.

C: FBI에 전화했던 것처럼 홧김에 자살했을 수도 있지.

A: 자기도 자기 바닥을 한 번 더 봤을 것 같아. 왜냐하면 아들을 만나서 대화한 것도 있고. 이 모든 상황을 다 겪으면서 할이랑 깨졌을 때가 바닥이 아니라 진짜 자기의 끝을 봐버려서. 그래서 더 살아가지를 못했을 것 같아.

D: 근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던 게 할이랑 관련된 에피소드였나?

B: '블루문' 얘기하지 않았어? 그때 또? '처음 만났을 때 이 노래가 나왔다.'

A: '예전에는 가사도 다 외웠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B: 근데 계속해서 '블루문' 얘기를 하는 게 할을 진짜 사랑했던 것 같기도 하고.

D: 거기서 도저히 못 벗어나는거지.

A: 그때가 너무 화려했으니까.

C: 너무 최상위층이었어.

A: 어. 너무 너무. 

B: '블루문'을 들으면 자기의 삶이 새로 시작되는 순간이 다시 다가오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D: 그럴 수도 있겠다.

B: 그게 최상류층의 시작이었으니까.

C: 그러면 진짜 자살할까?

A: 난 다른 게 상상이 안 돼.

B: 그렇긴 해. 너무 비극적으로 끝나긴 했어. 

C: 근데 너무 최상위층이 잘 어울리지 않았어?

D: 그치. 너무 우아하잖아, 사람 자체가.

C: 그래서 그 사람이 치과에 있는데 진짜 안 어울리긴 했어.

B: 맞아. 캐스팅 너무 잘했어.

C: 나도 최상위층에 있는 것만 계속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D: 드레스랑 너무…

B: 입매가 나는… 입매가 나는 너무 우아해. 

D: 말투도 그렇고.

C: 머리…

B: 목소리랑. 너무 완벽해.

C: 말투 진짜 어떻게 그렇게 해?

D: 내 말이. 너무 고품이 느껴져서.

B: 너무 대단해. 너무 멋있어.


D: 재스민이 자기가 솔직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B: 언제 그랬지? 

D: 아마 드와이트가 사실을 알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리기 직전에 했었던 것 같아. 

A: 아 내려달라고 하면서? 

D: '난 그냥 내 자신한테 솔직했을 뿐이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했어. 솔직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

A: 근데 거짓말을 했는데 솔직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가 있나?

D: 자기 감정에 솔직했다?

B: 솔직했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는.

D: 할 수 없다?

B: 응. 왜냐하면 실제로 솔직하지 않았고…

A: 정말 감정에 솔직했으면 '내가 이런 게 불안하고 난 네가 필요하고'… 그렇게 해야 감정에 솔직한 사람 아닌가? 그러니까 '솔직하다'를 남한테 솔직한 거냐 아니면 자기의 감정대로 따르느냐,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

B: 자기한테도 난 모르겠어.

A: 어. 솔직한지 모르겠는데?

B: 왜냐하면 재스민은 정말 마음속 깊은 바닥에서, 과연 드와이트한테 거짓말하는 순간 그걸 원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너는?

C: 생각 중이야. 자기가 솔직하다고 생각해서 솔직했다고 얘기한 것 같은데 어느 부분이 솔직했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A: 그 조차도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아. 솔직히. (웃음)

B: (웃음) 솔직히 말해서?

A: 솔직히 말해서 솔직하지 못했다.

B: '솔직'이라는 말 되게 귀엽다 근데.

A: 그러니까. 왜 '솔직'이지? 왜 솔직하다고 했을까?

B: 그러지 않았나? '널 사랑한다는 건 솔직한 거였다. 그건 진짜였다.'

C: 그러면 그냥 사랑했다는 게 솔직했다는 건가?

B: 근데 재스민이 드와이트도 사랑했을까? 난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너무 짧은 순간이었고, 짧은 순간에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드와이트가 돈도 없고 이랬으면 사랑 안 했을 것 같은데.

C: 그치.

A: 아니 그리고 일단 반지 고르고 얘기하자고 했잖아. 그게 어떻게 사랑이야.

B: 맞아.

A: 그 순간에 그 사람을 납득시키려고 하든지 이해를 시키려고 하든지 설명을 해야지. '우리 일단 반지 먼저 고르고 얘기해요' 이게 어떻게 사랑이야. (웃음)


(다같이 마지막 장면 보는 중)

B: 이 사람(마지막에 벤치에 앉아 있던 여자) 연기 잘하지 않냐?

C: 처음에 (비행기 옆자리) 할머니도 연기 잘 한다고 생각했어.

D: 저거 보면서 진짜 저렇게 사는구나, 최상위층은. 이런 생각도 했어.

A: 그리고 나 디올 드레스 궁금하더라.

D: 그니까.

C: 그 얘기도 되게 많이 하지 않았어? 과거? 과거가 다 사라지냐. 인물 전반적으로 그런 얘기를 한 번씩 했던 것 같아. 오기도 얘기하고, 대니도 얘기하고.

A: 맞아.

C: 그 얘기를 한 번 했어.

A: 어. 이런 게 없던 일이 되냐. 이런 식으로 얘기하잖아. 반지 파는 곳 앞에서 만났을 때. 근데 정작 과거에 얽매여 있는 건 재스민인데, '과거는 다 지난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면서도 가장 거기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사람이 재스민이잖아. 

D: 그 말조차도 주위를 의식하는 게 아닐까.

C: 어떻게 보면 재스민이랑 가장 대척점에 있는 건 대니일 수도 있겠다. 둘 다 과거를 없던 일로 한다고 말하잖아. 대니도 그렇게 얘기했던 걸로 아는데.

A: 맞아. 이제 자기는 세상에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지.

C: 그런데 대니는 자기를 주체적으로 찾았고, 재스민은 과거에 얽매였고.

A: 그걸 봐서 재스민이 더 바닥을 쳤을 것 같아.


C: 재스민이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 후에?

A: 엔딩 장면 후에?

D: 시나리오를 한번 짜 볼까?

B: 우리가 재스민을 위해서?

C: 어. (웃음) 난 대니가 좀 도와줘야 될 것 같아. 왜냐하면 대니 말고 정상적인 사람이 없잖아.

A: 근데 대니가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 도와주려면 그때 재스민이 찾아갔을 때부터…

D: 뭔가 (재스민이랑) 안 얽힐 것 같아.

A: 일단… 근데 너무 무일푼인 상태라.

B: 에르메스 가방을 팔아야지.

C: 어어. 샤넬 자켓도 팔고. 루이비통 가방도 팔고.

D: 그걸 팔면 치료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C: 아 뭔가 얽매인 것의…

D: 상징적으로.

C: 팔고 근데 집을 살 수 있나?

A: 집은 못 사지. 장기투숙하겠지, 싸구려 호텔에서.

B: 그러면서 일을 다시 구해야지.

D: 회생할 수 있을까? 

A: 그걸 못 버틸 것 같아.

D: 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A: 일할 바에, 홧김에 FBI에 신고를 한 것처럼 다른 시도를 할 수도 있겠지.

B: 아무 연고도 없는 데로 가서 에르메스 가방 팔고 잘 시작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A: 뭘로?

B: 뭐라도 하면서.

C: 파티 기획.

D: 인테리어 디자인.

A: 그걸 하려고, 학교를 다니려고 컴퓨터를 배우고… 또 그것도 배우는 데 돈이 필요하니까 치과 일을 한 건데… 왜 하필 그런 치과 의사를…

C: 그러니까.

B: 아 연기 너무 잘해서 너무 짜증났어.

D: 그 남자?

B: 어. 그 발정난 연기.

C: 발정났다는 말이 맞다.

A: 개싫어…


D: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인데. 어떻게 마무리를 해보면 좋을까?

B: 각자 얘기하고 싶었던 거 있어?

C: 너는 있어?

B: 나는 이 영화 자체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뭔가 잘못된 결과를 예감하면서도 같은 선택을 되풀이하게 되는 어리석음, 혹은 그렇게 등떠미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그런 말도 있잖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걸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어. 그리고 그렇게 선택할 때 사람의 심리가, '이번엔 다를 거야’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 진저도. 연애만 해도 '이번엔 달라'라고 말하면서 만나잖아. 그게 모든 사람들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C: 재스민도 (드와이트의 차 안에서) 그러잖아. 이번에도 똑같다고. 매번 이런 식이었다고.

B: 그런 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어. 그런 인간상? 사회상?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까? 같은 선택을.

C: 사람의 기질?

D: 그럴 수도 있겠다.

B: 그건 너무 잔인하다. 기질 때문이면.

A: 특정 사람의 기질이 아니라…

C: 인간 자체의 기질.

B: 아아.

D: 아니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습성이 있나 인간한테? 배웠던 것 같은데.

B: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자기 경험 안에서만 자꾸 생각해서 아닐까?

A: 근데 경험 안에서 생각을 했으면, 그 선택을 이미 실패해봤으면…

B: 그러니까 다른 선택지 자체가 없는 거지. 옵션 자체가 자기 경험밖에 없는 거지.

D: 자기가 쉽게 간 길? 자기가 해봤던 거? 익숙한 거?

B: 재스민도 누군가한테 선택받는 것밖에 경험이 없었어서… 어렸을 때 입양된 것부터 해서… 그래서 다른 옵션 자체를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A: '두 번째 할 땐 더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처음에는 실수를 했지만 한 번 더 하면 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잖아. 경험에서 나온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걸 경험해서 실패했으면 다른 걸 선택할 수 있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미 경험을 해봐서 어느 정도 어떤 위험성이 있다는 걸 다 아니까, 한 번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서…

B: 맞아. 그래서 되게 우울한데, 너무 우울하게 안 만드려고 넣은 게 대니인 것 같아. 희망을 한 가닥 넣으려고. 대니도 사실 원래 음악하던 애도 아니었고. 완전 다른 선택을 한 거니까.

C: 근데 난 재스민 잘됐으면 좋겠어. 난 계속 그냥 잘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B: 이것만 얘기하면 안 돼? 우리 아까 얘기 못했던… 재스민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였을까? 나 그게 너무 궁금해.

C: 남의 시선 아니었을까?

A: 나도 그렇게 생각해.

C: 만약에 명예라면 똑같이 무너지는 건데. 남의 시선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버림받은 여자보다는 사업이 망해서 무너진 여자가 좀 덜 치욕스럽잖아.

A: 남들한테 어떻게 보여지고 싶다는 그런 확고함이 있지 않을까?

C: 응.

A: 그게 가장 중요시되는 거 같아.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든지 다른 어떤 가치들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가장 자기가 신경쓰는 부분이지 않을까? 그래서 점차적으로 무너졌던 것 같아. 친구들이 '너 빼고 다 알고 있어' 이런 얘기를 했잖아, 바람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래서 할이랑 얘기할 때부터 바들바들 떨면서 말하잖아.

C: 차라리 그 프렌치 어린 여자애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더 나았으려나?

D: 근데 그런 것보다도 아까 A가 얘기했던, 누가 됐든 진짜 가정을 꾸리고 싶고 사랑을 진심으로 하게 됐다는 게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 나는… 나도 (재스민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남의 시선인 것 같아.

B: 내가 폐비가 될 바에는 차라리 나라가 망한 마지막 왕비가 되겠다,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웃음)

C: (웃음) 그치 그치.

D: 뭔가 자기가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그리는 사람인 것 같은데, 끊임없이. 내가 아까 완벽주의 얘기를 한 게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게 있으면 스스로 하차하는 것 같아, 그 삶에서. 신고한 것도 그렇고, 드와이트 차에서도 자꾸 내려달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서 없던 사람인 것처럼…

B: 그러게.

D: 하차를 한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어. 그리고 내리자마자 (떨어진) 짐 주워서 우아한 척하면서 걸어가잖아. 바로 다른 사람이 되는 거지. 다른 자기를 그리는…

A: 맞아.

B: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는.

C: 어어.

A: 그 순간을 못 참는 거지.

C: 그래서 이 사람 그 버릇 중에 하나가 안 좋은 얘기를 하면 모르는 척한다고 그랬나? 왜 진저가 그랬잖아. 싫은 소리 하게 될 타이밍에 다른 얘기로 넘어간다고. 그런 것도 이런 성격의 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아.

A: 그렇네.

B: 그리고 재스민이 사고로 친부모를 잃었을 수도 있지만 버려졌을 가능성도 있잖아. 버림받기 싫은 어떤 강박이 있지 않을까.

D: 어쨌든… 너무 불쌍해. 그건 맞는 것 같아. 자기가 스스로 그런 삶을 살게 된 건 아니잖아.

B: 맞아. 너무 잔인하다.

C: 배우가 되면 돼.

D: (웃음) 케이트 블란쳇으로 데뷔?

C: (웃음) 어, 케이트 블란쳇이 돼서…

A: 여우주연상 받으면서?

B: 나는 사실 보면서 무슨 생각했냐면, 영화 속 시대가 약간 옛날이잖아. 인스타그램 있는 세대였으면 인플루언서가 되면 됐을 텐데. (일동 맞아 맞아)

C: 잘할 것 같은데. 왜냐하면 어디서든 주목받고…


B: 여기까지 할까요 오늘? (일동 네~)

C: 혹시 주최자로서 하실 말씀 있나요?

D: 아. 오늘 첫 번째를 맡게 됐는데, 엄청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다양한 얘기가 나올 수 있어서 좋았어.

B: 근데 재밌다, 그치.

C: 영화 선정을 너무 잘했어.

D: 그치. 내가 고민 좀 많이 했는데.

B: 할 얘기 많은 영화로… 재밌었어.

D: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거든.

B: 아 진짜? 1등이야?

D: 응. <윤희에게>랑.

A: <윤희에게> 진짜 좋은데.

B: 나 <윤희에게> 아직도 안 봤어.

C: 나도 안 봤어.

A, D: 겨울에 봐, 겨울에.

A: <윤희에게> 사운드트랙도 진짜 좋아.


B: 그리고 혹시 내가 저번에 얘기했던 거 어떻게 생각해? 우리 아예 익명으로 매주 다른 이름 쓰는거?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엄청나게 자유로웠으면 했어. 그러니까 내가 저번주에는 이런 이야기,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이야기 했지만, 이번주에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도 되는 마음으로.

A: 어어. 그건 좋은 것 같아. 근데 이번주에는 색깔이었다가 다음주에는 동물이고 이러면 너무 지저분해질 것 같아서. 카테고리를 하나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B: 응. 뭐가 좋을까? ABCD 중에 고르는 걸로 할까? (일동 그래) 이번에 ABCD는 어떻게 할래?

A: 나 A.

C: 나 C 할래.

B: 나 B 할게.

D: 그럼 나 D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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