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서 살아남기 (5).
지난 시간에는 사재기의 심리학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여섯 줄로 요약한다.
사재기는 군중 심리 중에서도 공황 panic에 기인한다;
군중 심리로 인한 집단행동이 집단 구매 행위로 나타난다;
이러한 집단 구매 행위는 집단행동 문제로 해석된다;
영국 사람들의 요리 문화로 신선식품이 아닌 완성품에 대한 극한 선호로 사재기 품목에 차별성이 발현된다;
쌀 (원료)와 빵 (완성품)의 차이에 기인하여 사재기 이후에야 제빵에 관심을 가진 영국인들이 관찰되고;
향후의 사재기에서는 (영국 사람들은) 다른 행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는 경제학 관점에서 사재기에 대해 알아본다. 사재기의 경제학.
경제학 관점에서 사재기란 무엇인가?
사재기는 말 그대로 재난이 올 것을 예상하거나, 혹은 재난이 들이닥친 후에 일어나는 대규모 소비활동이다. 왜 그런 소비활동이 일어나느냐는 사재기의 심리학에서 설명했다. 반면, 경제학의 기본 법칙인 수요와 공급 법칙이 사재기의 과정과 결과를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다. 필수 품목의 비재난 상황에서의 수요와 공급곡선이 하기 그림 1과 같다고 하자.
그림 1에서와 같이 long-term 장시간에 걸쳐 수요와 공급은 시장경제에 근거하여 적절한 시장 가격과 공급으로 만난다. 이런 현상을 시장 균형 Market Equilibrium이라 표현한다. 시장이 편안한 것이다. 계란 1판의 값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 달 전이나 한 달 후나 (조류 독감 같은 외부적 요인이 반영되지 않는 한) 큰 변동은 없다. 비재난 상황에서 시장의 공급자들은 1주일, 혹은 몇일치의 재고만 쌓아도 문제가 없다. 기본적인 수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 균형 상황에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면, 수요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그림 2). 단기적으로 제품의 가격은 변동이 없지만, 구매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므로, 가격 - 공급 간의 기울기는 변동이 없고 단순히 수요의 급증에 의거하여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 4장 - 수요곡선 참조)
사재기는 일단, 단기적 short-term 시장 변화에 해당하므로 곡선은 사라지고, 직선이 등장한다. 곡선을 단기적 시점으로 미분했다고 보면 편리하겠다.
이러한 단기적 수요 폭증은 당연히 단기적 공급 부재를 낳는다. 오늘 화장지를 못 샀으면, 내일도 못 살 확률이 높다. 그러나 단기간 (10일 이내로) 기존에 형성된 시장 균형 가격 (Pn)에도 크게 변동은 없다. 그러나 계란 한 판을 사기 위해 직접 양계장으로 발로 (계란 1판 가격+ 노동력+ 기름값을 들여) 뛰어다녀 구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는 넘치는 수요를 가격 (시장가 Market Price)로 만들지 못한다. 시장에 돈은 있지만 공급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결과적으로 시장에 단기적 단발성 공급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생필품이 아닌 소비재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손 세정제나 마스크 같은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 일련의 소매업자들의 창고에 있던 물량들이 단발적으로 방출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창고 대방출 세일 (가격의 하락) 이 아니다. 이번에는 창고에 잠들어 있던 생필품으로 취급되지 않던 소비재들이 이따금씩 동네 마트 혹은 약국 (혹은 길거리 가판대)에서 공급된다. 공급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가격에는 제한이 없다. 시장 평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시적이고 단발적인 단기적 시장 가격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마스크가 그 단기적 공급에 해당되며, 영국은 손세정제가 해당되었다. 한국의 마스크 가격은 3000원에서 5000원까지 치솟았고, 영국의 손세정제 또한 개당 1.5 파운드에서 3파운드까지 몰고 갔다.
그러나 단지 일시적으로 정상 공급 (Qn)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재기의 이상 간극이 발생함에 따라 시장 경제 체제 system에 무리가 간다고 볼 수 있을까? 상기와 같은 단기적 공급도 결국은 일회성일 뿐이다. 시세 차익을 챙기는 단기 공급자들의 웃음을 뒤로 한채, 결국 이 붉은 간극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시간이라 함은 결국 정부의 입김이 어느 정도는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가격에 상한선을 두거나, 공급을 늘리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가격 상한제보다는 공급을 단기간에 끌어오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가격 상한제의 경우는 부동산 안정을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그것과도 동일한 원리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공급을 단기간에 상승시키는 방법은 기존 시장의 평형을 유지했던 자 (공급자)들의 곳간, 창고에 있던 달걀과 밀가루, 쌀들을 단기간에 일시적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단발적 공급자들의 일회성 시세 차익을 노린 단발성 공급이 아닌 보다 안정적인 가격에 공급된다.
그러면 하기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시장 평형이 단기간 (10일 이내)에 형성된다.
그림 2에서 설명한 수요의 오른쪽 이동과 마찬가지로, 가격에 변동이 없는 공급량의 증가는 공급 곡선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면, 수요의 증가분은 자연히 공급의 증가분만큼 감소되어, 단기적 시장 평형점을 이루는 것이다.
반면, 사재기가 장기화된다고 가정하면 하기와 같이 수요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공급과 가격은 함께 올라가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넘치는 수요를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경쟁체제에 들어설 것이고, 대규모 유통업계에서도 공급물량과 수요 사이를 저울질하며, 어느 정도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시적 사재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정부에서는 대형 소매점에게 특별 지시를 내린다. (가격 변동 없이) 재고를 최대한 빨리 채워 넣을 것. 이에 따라 Sainsbury's 같은 지역 슈퍼마켓 체인들은 그들의 공급망 supply chain과 협력하여 평소의 2-3배의 물량을 품목에 따라 예비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2-3배의 물량을 미리 판매할 수 있으니 위기 속의 기회인 것이다.
도매자들과 소매자들, 그리고 소비자들 모두가 win-win 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시장은 평안할 것이다.
결국 사재기란 (군대 용어로) 위치 이동일뿐이다. 공급자들의 곳간, 헛간, 방앗간, 또는 공장에 쌓여있는 재고를 소매업자의 창고로 쌓고, 그 재고가 평소보다 빨리 소비자들의 냉장고로 위치 이동할 뿐인 것이다. 만약 사재기가 장기화된다고 하더라도, 국가 경제가 치명적으로 위협을 받지 않는 이상 사재기는 결코 경제학적으로 단기간에 발생하는 해프닝일 뿐이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할 수는 없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몇 세대를 거쳐가며 발전해 나갔다. 그리하여 현재 시장은 정부가 때에 따라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신시장경제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상, 사재기의 심리학에 이은, 사재기의 경제학 편을 마친다. 사재기라는 첫 경험은 나의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나름의 심리학적, 그리고 경제학적 정의를 내리는데 이바지했다.
Thanks a ton, Panic-buyers!
난세에서 살아남기 6편, COVID-19의 수혜자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