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콕

여왕의 외침과 역사의 반복 - 영국 코로나

난세에서 살아남기 (8)

by 외노자 정리

난세에서 살아남기 8편, 여왕의 외침과 역사의 반복: D-Day, VE Day 그리고 VJ Day.



VE Day: 역사는 반복된다.

어제 5월 8일, 한국은 어버이날, 이곳 영국에서는 바로 VE Day를 기념한다. Victory in Europe의 날이며, 75주년을 기념한다. 그러니 시계를 거꾸로 75년을 돌려가면, 이 날은 1945년 5월 8일이다. 이 날은 연합군이 독일 Nazzi에 승리한 날이며, 독일군이 연합군에 대해 조건 없는 항복 unconditoinal surrender를 한 날이다.

정확히 75년 전에, 현재 여왕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선왕 조지 6세 George VI는 영국민들에게 이 승리를 선포했다.

전쟁의 시대에 엘지자베스 여왕은 19세의 나이로 ATS라는 말하자면 (여군) 보병 지원 부대 정도의 운전병/정비병으로 후방 지원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이 후방지원이 나름 내조의 개념이 있어서 각종 정비 및 전쟁에 도움이 되는 보조자의 의미가 있었다. 하기 포스트의 당당한 얼굴을 보면 그 당시 ATS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조금을 알 수 있다. 남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가는 그 시점에, 최대 65000명까지 충원되었던 이 ATS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2차 세계대전, 영국의 후방 병력이었다.

출처: Wikipedia - ATS

물론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소위 Second Subaltern에서 대위 Captaion으로 2계급 특진하긴 했지만 여왕도 전쟁에 당당히 참여했다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 여왕이 그 마이크를 이어받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고 있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아버지의 사진을 옆에 두고 말을 이어간다.

'남자든, 여자든 이 전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no one was immune from its impact whether it be the men and women.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to support the war effort all had a part to play.'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세기의 전쟁을 남자든, 여자든 피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no one was immune

from its impact으로 표현되고, 이 표현은 75년의 시간을 지나서 그대로 쓰인다. 우리 중 누구도 코로나 19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 했다는 표현도, 코로나 19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자가 격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쫒았다니는 경찰들, 전선이 아닌 전선에서 보이지 않는 병과 싸우며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 그리고 사회적 돌봄 이들.

75년의 역사 동안 인류는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발전한 것은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그들 세계의 발전사를 살펴볼 수는 없지만 만약 바이러스에도 Monarchy가 존재한다면 바이러스의 여왕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우리가 인류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모든 바이러스가 이 전쟁에 참여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합시다.'


여왕의 스피치는 나에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군 복무 중인 그 시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찬송가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던 나의 마음은 성경책을 손에 들고 새벽기도를 떠나던 그 뒷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명절에 할머니 댁을 찾아 곤하게 잠든 우리를 혹여 깨울까 봐 삐걱거리는 대문을 살며시 열고 길을 나서는 할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작지만 큰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왜 한 번도 따라나서지 못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돌아가신 할머니를 대체할 다른 존재는 없다.

긴 세월을 겪은 여왕의 연설은 영국인들에게 어떤 인식으로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여왕은 가장 장기간의 통치자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영국인의 마음속에 항상 존재하는 할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아마 여왕이 돌아가신다면, 영국이 Monarchy 제도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본의 아니게 두 가지 타이틀을 가진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Monarch, 그리고 영국의 Monarchy제도의 마지막 여왕.'



VJ Day: 그러나 역사는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는다: 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often rhymes,

여왕의 연설은 5분도 채 되지 않지만 그 5분의 시간 속에 75년의 역사가 담겨있다. 75년 전에 선왕이 영국에 전했던 메시지는 지금도 반복된다. Never give up, never despair! 달라진 것이 있다면, 75년 전에 여왕은 동생 마가렛과 함께 전쟁의 승리를 선언하는 선왕과 윈스턴 처칠을 바라보는 군중 속에 함께 있었고, 지금은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 사람들을 격려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

그의 연설 속에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고, 이것이 바로 VJ Day - Victory over Japan으로 이어진다. 유럽에서 독일 나치의 항복 이후, 독일과 손을 잡았던 일본은 여전히 항복을 하지 않았고, 이후, 3개월이 넘게 지나서야, 한반도와 극동에 평화가 찾아온다. 여왕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스피치에 이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다.

VJ Day가 있기 전까지는 세계 2차 대전이 완전히 종결되었다고 할 수 없다. Victory in Europe은 1945년 5월 8일에 찾아왔지만, 우리나라는 그때 그 시절 일본 제국주의 마지막 저항의 세력들이 모여 서울 진공작전을 수립하고 미국과의 협의하여 9월에 D-Day를 설정하고 준비하고 있었으나 5월의 독일 나치군의 연합군에 대한 항복 선언 및 일본 본토에 이어진 공습을 지켜보다 결과적으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이를 한 달 앞당겨 8월 18일로 D-Day를 설정하였다. 결과적으로 8월 15일 (미국 시간 8월 14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함으로 대한민국에는 독립이 찾아온다. 그리고 서울 진공작전의 D-Day는 역사적 계획으로만 남았다. [1]



D-Day: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오직 하나.

V-Days (VE 그리고 VJ Day들과 같이) D-Day라 함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1944년 6월 6일을 일컫는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워낙 유명한 전쟁으로 이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call of duty, Saving private Ryan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셀 수 없다. 반면 군사 작전의 용어로 쓰인 D-Day는 사실 그 의미는 한국말의 역전, 혹은 족발 등과 같이 동일한 뜻을 가진 단어의 반복 사용일 뿐이다.

군대에서 몇 시, 며칠 등의 용어를 H-hour, D-Day 등과 같이 시시, 일일 등과 같이 단어의 반복으로만 사용해 왔다. 이는 보안상의 이유로 주요 작전에 대해서는 그 일정을 D-Day (H-Hour)로 명명하여 구체적인 일시를 적군에 드러나지 않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1945년 9월의 서울 진공작전도 D-Day는 9월 18일이었으나, 이를 변경하여 8월 18일이 D-Day가 되었다. D-Day를 사용하면 일련의 작전 일정도 D-Day가 변동됨에 따라 수월하게 변경할 수 있다. D-30, D-20, D-10 혹은 D+10, D+20 등의 표현을 쓰면, D-Day가 바뀌어도 일정을 손보기 수월하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지만, 나는 VE Day와 VJ Day속에서 서울 진공작전의 D-Day를 기억한다.



난세에서 살아남기 8편 끝. 9편: 이자, 채권 그리고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1]

역사를 아무리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도, 미국은 우리나라가 자주적으로 독립을 찾는 것에 협조할 생각은 없었다고 본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과 그 과정을 지켜보면, 미국은 결과적으로 더 이상의 소모적이고 국지적인 전쟁보다는, 강력한 단 한방이 필요했던 것이었고, OSS에서 우리 독립군에게 협력을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협작이었을 뿐이다. 미군정 시절 OSS가 임시정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살펴보면 된다.

- 이상, 한국사 3급 자격자, Jeong Lee.

국비 유학생 지원의 필수 조건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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