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궁전 속으로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영국 왕실의 상징인 버킹엄 팔레이스 Backingam Palace 못지않은 궁전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Ally Pally, 알리 팔리라는 귀여운 애명을 가지고 있는 Alexandra Palace입니다. 실제로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애칭을 공식 문서에서 조차 자주 씁니다.
걸어서 궁전 속으로
누구의 궁전인가? 사실 이 궁전에 거주하고 있는 특정 주인은 없었습니다.
1863년 만들어진 이 언덕 주변의 Alexandra Park가 산업 혁명에 지친 영국인들에게 쉼을 주는 공원 중 하나였습니다. 언덕에서 바라보면 런던 중심부의 높은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입니다. 런던 중심부의 높은 건물들도 이 곳에서는 그저 도찐개찐인 건물 들일뿐입니다. 다만 The Shard라는 건물만이 한눈에 들어오긴 합니다. [1]
영국에 와서 여러 장소에서 감탄을 한 바 있지만, 이 장소가 주는 느낌은 역시 색다릅니다.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룹니다.
증기 기관차와 기계의 소음 속에 하루하루 살았던 산업혁명 역군들의 마음도 이곳에 오면 그랬을까요?
그렇게 10년이 흘러 정부에서 노동자들이 사랑하는 이 공원에 랜드마크를 하나 세우기로 작정합니다. 바로 궁전입니다. 노동자와 궁전은 뭔가 어울리지 않죠? 이 궁전은 왕가와 특권 계층을 위한 목적물이 아닌 바로 시민들, 국민들을 위한 레저와 문화의 장소를 그 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궁전의 별칭도 사람들을 위한 궁전, 이름하여 People’s palace로 시작된 것이죠.
이와는 살짝 대조적인 의미의 건물이 영국 남부에 있었습니다. 바로 산업 혁명의 기술적 혁명을 과시하기 위한 건물인 크리스털 궁전 Crystal Palace, 당시 알리 팔리와는 쌍벽을 이뤘습니다. 하이드 파크에 위치했던 크리스털 궁전은 1936년 화재로 파괴되어 지금은 옛적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지금 그곳에는 세워진 지 오래된 old-fashioned 공룡 테마 파크가 있습니다.
북쪽의 시민 궁전과 남쪽에 영국의 부흥을 상징하는 궁전이 지금도 존재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남과 북에서 서로 바라보는 모습만으로도 각각에 색다른 의미를 주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역사 속의 화제 issue 그리고 화재 fire
세상에서 가장 빨리 무너진 궁전이 있다면 바로 이 궁전일 것입니다. The Queen Victoria의 54번째 생일인 1873년 5월 24일에 문을 연지 16일 만에 불이 나서 무너집니다. 2년 뒤에 다시 재건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재건축이 된 이후에도 역사적인 장소로 쓰여왔습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난민의 임시거처로, 또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덩케르크 Dunkirk에서 구조된 군인들의 임시 집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세계 최초의 Television Service가 BBC에 의해 이 곳에서 이루어졌죠. 바로 1936년의 일입니다.
그렇게 무난하게 랜드마크로써의 그 역할을 다 해왔는데 1980년에 다시 한번 큰 화재가 발생합니다. 크리스탈 궁전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이 궁전은 8년간의 ‘짧은’ 건설 기간을 거쳐 대중들에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02년 6월, 현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의 남편 필립공이 이 궁전을 방문합니다. 국민의 궁전으로 지어진 1973년에서 30년 만에 여왕이 방문합니다.
그리고 2020년 5월, 우리 가족이 다시 한번 이 곳을 찾았습니다. 여왕의 30년 만의 방문이 모두의 관심을 모았다면 우리의 방문은 여느 가족, 일상의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단지 집 앞에서 런던을 바라볼 수 있는 가까운 공원이 있다는 것이 행복할 뿐이지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기를 유지하며 런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시기적절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락다운이 만연했던 런던도 이제 한결 가벼워진 모습입니다. 여전히 코로나와 연관된 숫자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은 시리지만 이 또한 역사 속 화제의 하나로 지나갈 것임을, 그리고 화재 후 우뚝 서 그 역할을 다한 알리 팔리처럼 우리에게 넥스트 노말이 다시 찾아올 것을 믿습니다.
[1]
날이 좋으면 The Shard라는 런던 중심부의 건물이 이 언덕에서 보입니다. 위의 풍경에서 아래 건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