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행의 시작

왜 100억 plan 인가?

by 외노자 정리

100억 plan a to z라 이름한 저의 첫 전자책 (pdf)는 현재 부크크 bookk라는 플랫폼에서 판매 중에 있습니다. 2013년 1월부터 시작하여, 2018년 9월 육아 휴직 전까지 활동했던 블로그의 글들 중에서도 월급쟁이의 실전 투자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로 여러분께 다가갔었습니다.

지금 다시 그 책을 펼쳐보니 좋은 내용이 많아, 브런치에 알맞은 호흡으로 바꾸어 연재하려 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Frankfurt am mein) Flight in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에 아르바이트로 벌었던 얼마의 돈, 그리고 고3 겨울방학 어머니의 알로에 사무실을 다니며, 방문 판매하며 벌었던 돈, 이렇게 모은 돈 몇 푼과 용돈 조금으로 당시 한화 70만 원 정도의 유레일패스를 사고 현지에서 쓸 돈 60만 원을 모았다. 하루 2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피 끓는 20세에 그렇게 (미친 발상과 무계획으로) 홀로 떠났다. 30박 31일 2004년 07월 25일 -2004년 08월 24일 (이미 10년이 지난) 오늘, 집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그때의 메모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

일단 그 당시 내 예산(비행기표 유로패스 등 제외한 실비)는 한화 90만 원 정도였고 아버지가 항공사 마일리지로 티켓팅 해준 아시아나 항공 Frankfurt in Frankfurt out 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항공권은 중간에 항로 변경이 절대 불가한 마일리지 티켓, 한마디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30박을 홀로 유럽에서 감당해야 했다. 당초 예산은 하루 2만 원씩 30일 총 60만 원이었으나 어머니가 선심 쓰듯 하루에 1만 원씩 30일 쓰라고 30만 원 줬으며, 나는 그걸 또 아무 의심 없이 좋다고 받았었다. 그렇게 내 손에 현금 90만 원과 비행기 티켓 한 장이 주어졌다. 나중에 듣게 된 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단단히 고생시키려고 작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고 정말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고, 아무것도 예약하지 않은 채, 유럽 100배 즐기기라는 이름의 책만 샀다. 게다가 그 책을 비행기 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읽지도 않았다.


동전 한 닢, 사과 한 개
스무 살에 첫 해외 경험은 생각보다 낯설게 다가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중앙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잘 도착해 놓고는 공항에서 예약한 호스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날은 저물고, 무언가 두려운 마음에 택시를 탔다. 이때 쓴 택시요금 덕택에 앞으로 며칠 동안 바게트 빵과 아시아나 항공에서 제공한 기내식 튜브형 고추장으로 근근이 며칠을 버티게 된다. 아마 여행 내내 예약을 하나도 하지 않은 무계획 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무지막지하게 고생했한 것으로 기억한다.

바게트 빵에 고추장을 발라 먹기도 하루 이틀이지, 길가에서 파는 사과를 하나 샀다. 오랜만에 식이섬유를 보충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내가 한입 베어 물기도 전에, 아기를 안고 있는 집시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한 그 여인은 나에게 영어로 쓰인 장문의 호소문을 보여주었다. '내 나이 23살에, 아이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나 그 마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당신의 동전 한 닢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2유로가 나왔다. 그 돈을 주고 나도 돈이 더 없어서 사과가 아침 겸 점심이라고 말하자, 그녀가 내 사과를 빤히 쳐다본다. 그렇게 내 동전 한 닢과 사과는 나에게서 그녀에게로 위치 이동했다.

호스텔 생활 2일 만에 깨닫는다. 내 예산 90만 원으로는 매일같이 풍족한 이 유스호스텔 생활 (하루 4만 5천 원, 6인 1실 기준)을 할 수 없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진했던지 멍청했던지 아니면 마음이 그래도 여유가 있었던지, 그녀에게 동전 한 닢과 사과를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부터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 중엔 항상 밤기차 night train을 타고 이동했다. 일부러 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찾아 밤기차를 타며, 내 배낭을 노리는 잡 도둑들의 눈치를 보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뼈저리게 숙소 비용을 아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내 한 끼인 사과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이 프레임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 이후 그 어떤 집시도, 거지도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한 적은 없다. 내 꼴이나 걔네들 꼴이나 거기서 거기였을까? 아니다. 나는 아침밥은 굶을지언정, 유로 샤워라는 시설에서 밤기차의 냄새와 흔적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게서 가난의 '냄새'가 아닌, '분위기'를 보았다. 스무 살의 나는, 가난의 분위기를 충분히 풍기는 젊은 남아였다.

1-2.PNG 여행 록 chapter 1-3


사람을 만나고, 오페라를 경험하다
그 당시에 소파 방정환 선생님과 이름이 비슷한 형을 만났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나는 흑석동 단칸 자취방인데) 그 형은 강남 청담동에 산다고 했었다. 심지어 자기의 계획은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 나중에 한국 자기 집으로 다 불러서 파티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한국에 돌아온 며칠 뒤 이 형이 전화가 왔다.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여니까 오라고. 난 그때 막 유럽에서 돌아온 상태라 부산에서 서울까지 (부산에서 유럽까지의 거리에 몇 배나 짧은 그) 거리도 올라가지 않기로 했고 그 파티는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이 형 과도 연락이 끊겼다. 이 형과의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즐거웠고, 재미났다. 유쾌한 형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4살이 많았다. 베네치아 - 피렌체 - 로마까지 동행한 것 같다.

그 형을 만나기 전, 나는 거금 35유로를 주고 오페라를 봤다. 나이트 트레인에서 내려 그 도시에서 쓸 돈이 35유로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이 여행 6일 차였던 것을 감안하면, 나는 정말 재무적 개념과 계획이 부재했다. 30일 동안 90만 원으로 연명해야 했기에, 90만 원은 당시 환율로 667유로이므로 하루에 23유로 이상 쓰면 아니 되었다. 근데 오페라에 35유로의 거금을 막 지르고 보니 여행 후반에 스위스 융프라 유우호 산에서의 패러글라이딩 같은 체험을 돈이 없어서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면 안타까운 나의 흑 역사는 그렇게 잔인하게 쓰였다. 물론 그로 인해 오페라라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오스트리아의 정통 오페라의 위엄, 소극장이라 배우들의 호흡소리까지 들렸던 짧은 무대와 좌석의 거리감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떻게 잊을까? 나의 세끼 식사와 포근한 잠자리와 맞바꾼 그것인데? 런던에서 350파운드를 주고 오페라를 본다고 하여도, 오페라 가수의 숨소리는 듣지 못할걸?


예약을 못하면 잠도 자지 마라.

1-3.PNG 여행 록 chapter 1-3

이 메모를 쓴 것이 7/27일이므로 아마 독일 도착 후 프랑크푸르트의 유스호스텔에서 운 좋게 2일을 보내고 뮌휜 Munich 도착하자마자 썼던 글, 이날에 공원에서 노숙을 했다. 그리고 이튿날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 큰 도움을 받는다. 이 여행자와 스위스를 같이 넘어갔었고, 나에게 2층 침대의 아래칸과 저녁식사를 대접한 좋은 친구였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지낼지? 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았던 초등학교 교사인 그 형이 가끔 그립다.

나의 교훈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더욱 탄탄하게 자리를 잡는다. 여행지에서는 예약을 2달 전에는 해야,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지금 나에게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으니, 노숙이라는 것은 한여름밤의 꿈과도 같다.


10년 전 나, 10년 후 지금

10년 전 나에게는 혼자 떠날 힘이 있었고 젊음이 있었다. 계획은 없었지만 용기는 있었고, 영어는 잘 못했지만 어떻게 말은 통했고 내가 텅 빈 그릇임을 인지했다. 다만, 그 그릇에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노숙을 하고, 부랑자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뒤에 서 있다가 빵과 수프를 받아먹었다. 그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나는 적십자 Red Cross의 일원에게 외쳤다.

'저는 대한민국의 대학생입니다. 한 끼를 잘 얻어먹었으니, 오늘 하루 당신들의 선행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의 30일 여행 중 하루는, 프랑스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을 배식하며, 그들의 한 끼를 따뜻하게 채웠다. 이 하루의 봉사는 적십자 사에서 나에게 인증을 해 준 것도 아닌 일회성의 경험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닌 럭셔리 여행이 아닌, 나 홀로 유럽이라는 거대한 세상의 한 축과 부딫인 여행이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값진 여행이었다.

나의 프레임은 20세 전과 20세 후로 나뉘며, 그 분기점에는 2004년 7월, 그 뜨거웠던 여름의 한 달 간의 유럽 여행이 있다. 그 추억은 그때에만 가능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

10년 후 지금, 나는 앞으로 10년 뒤에 또 피식할 짓을 지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00억이라는 목표는 나에게 금전적인 목표가 아니다. 내 미래의 비전은 단지 나 자신만을 위한 비전이 아니다. 아이들의 꿈, 그리고 꿈을 잃은 세대에 나 혹은 다른 이의 삶의 경험과 꿈을 이루어온 과정을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나누는 그런 멋진 학교를 세우는 것이 바로 100억 Plan이다.


꿈을 꾸다 보면 분명 같은 마음을 가진 동료들이 하나 둘 생기게 마련. 그렇기에 이 Plan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자. 100세 시대, 나는 생명선 무지하게 길다. 아마 125세까지 살 것 같다. 그 삶을 나 혼자만의 삶을 위해 살기는 싫다. 아등바등 10억 모으고 50억 모으고 100억 모으면 뭐하겠는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의 목표는 잘해봤자 본전이다. 후대에 돈을 남기겠는가, 꿈을 남기겠는가? 나는 꿈꾸는 세대를 남길 것이다.

꿈과 비전이 있는 곳에 돈 있지 돈이 있는 곳에 꿈과 비전은 없다. 꿈과 비전이 올바르면 돈은 그저 따라온다. 내가 지금 공부하는 모든 경제적 수단과 방법과 경험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현재의 공부 법이고 나름대로 잃지 않기 위한 바둥거림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기보다 내가 모은 돈으로 어느 정도 자산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강해진다.


100억 Plan A to Z: 월급쟁이 투자자의 기상천외한 투자 여행, 지금 여러분과 함께 시작합니다.


* 2018년 9월,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20세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홀로였던 나와 4인 가족의 가장이 된 나, 그러나 오히려 그때의 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비전과 삶의 목적이 생긴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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