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자본 생활: 경주 최부잣집, 그 이후.

난세에서 살아남기 (19)

by 외노자 정리

난세에서 살아남기 19편, 슬기로운 자본 생활: 경주 최부자집, 그 이후.



지난 시간에는,

난세에서 살아남기 12편, 슬기로운 자본 생활: 이자 그리고 채권 그리고 13편 장단기 채권 금리 역전 현상에서 이자와 채권에 대한 기본적 개념과 실제 사례인 장단기 채권 수익률 역전현상에 대해 다루었다. [1]

이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잉여 소출이 없어도 인쇄된 화폐 20만 원을 통해 자본주의의 태동을 설명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 - 재화와 상품의 합이 화폐의 합보다 적은 현실 - 을 통해,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국가에서 중앙은행과 공조하여 채권을 발행하고, 매입하는 현상을 설명했다.

자본가의 곳간을 경주 최부자의 곳간과,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을 최부잣집 곳간으로 인용하였는데, 이 장에서는 경주 최부잣집의 곳간과 마름의 관계,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경주 최부잣집?

경주 최부잣집은 약 300년 이상 부를 축적한 한국의 부자로 손꼽힌다. 특히 이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또한 유명하다. 죽을 쑤어 거지들에게 푸짐하게 나눠주는가 하면, 1671년 조선 현종 때에 흉년이 들었을 때 농민들의 쌀 담보 문서를 그들의 눈 앞에서 불을 태운 바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경주 최부잣집) 오죽하면 그들 집안의 가훈 중 하나가 '사방 100리 (약 40km) 내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였을까?


이러한 경주 최부잣집의 특색은 바로 마름 Agent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자급자족하던 잔잔한 마을에 왜 파문이 일었는가? 바로 자본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그 사람'의 등장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자본주의 이전의 세계, 특히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마름으로 대체된다. 땅이 있는 자산가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는 소작농들을 관리하고 급여 (소출)을 받던 존재들이었다. 근대 경제학에서도 주요한 현상으로 다루는 대리인 문제 principal-agent problem을 조선시대의 자산가 - 마름 - 그리고 소작농과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리인 문제는 간단히 정리하면, 대리인을 고용한 나와 대리인간의 이해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나타난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문 경영인과 지배 주주들과의 관계가 이를 설명하는 한 예다. 회사 경영에 경험이 없는 지배 주주들은 흔히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여 회사가 잘 운영되기를 바라지만, 전문 경영인들의 단기적 성과 추구는 지배 주주들이 바라는 중장기적 회사의 가치 성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경주 최부잣집에는 마름 Agent가 없었다. 그러므로 소작농들이 땅을 일궈 얻은 소출에서, 소작농들에게 대가를 지급하고 남는 모든 잉여 소출은 그대로 최부잣집의 곳간으로 흘러들어 간다. 중간에 마름이 없으므로 마름이 가져가야 할 지분은 소작농에게로 돌아간다.

쌀을 묵혀두면 뭐하겠는가? 곳간의 크기를 늘리기보다는 적정한 상품 (소출)의 양을 유지하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선을 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가훈 중 하나는 '재물을 모으되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였다.

최부잣집이 만약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Rothschild 가문에 버금가는 금융 가문이 되지 않았을까? 조선이라는 유교적 관념이 지배하는 체제, 그리고 열강과 제국주의에 짓밟힌 조선이라는 나라의 끝에서, 최부잣집도 그 명맥이 끊어진다. 그러나, 그 명맥 뒤에는 지금의 영남대학교가 남았다.


자본주의와 마름

자본주의에서 마름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중앙은행이다. 중앙은행은 국가가 상품 즉 재화와 용역의 선순환을 위해 노력한다. 상품이 너무 많아도 시중에 현금이 남아돌아 유동성이 넘쳐나고, 상품이 너무 적어도 현금이 없어 유동성이 부족하다. 국가는 최부잣집이 아니기 때문에 곳간에 상품을 비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바로 현금을 조절하는 것이다. 통화정책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통화 정책 하나만으로는 현금을 완전히 조절할 수는 없다. 실물 경제를 고려한 경제정책이 필요한데, 이것은 행정부에서 실시한다.

국가와는 별개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을 실시하는 데 있어서 독립적이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중앙은행들이 국가와 독립적일 수는 없다.

13년 전인 2007년에 국제 통화 기금 IMF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행은 전체 28개국의 나라에서 독립성 면에서 23위를 한 것에 그쳤다. 다른 부분은 차지하고, 정치적 독립성 부분은 현저히 낮다는 것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는 5년이며, 총재 및 주요 정책위원의 임명을 정부에서 관할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반면, 이 자료에서 100점을 맞은 ECB 유럽연합 EU 중앙은행과 미국 연준 FED 75점을 고려할 때, 한국은행은 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잣집과 마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립성은 마름을 설명하기 위한 아주 좋은 단어다. 마름에게 독립성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부잣집과 마름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예를 들어, 경주 최부자가 아닌, 부산 이부자의 집에 마름이 있었다고 하자. 부산 이부자는 시대가 흉흉하여 곳간의 곡식들을 소작농들에게 무상 대출을 해주고자 한다. 훌륭하다.

그러나 이부잣집의 마름은 이를 전폭 지지하기에는 무언가 속이 편치 않다. 이 흉년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가 없고, 곳간의 곡식을 소작농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준다면 이부잣집은 몇 년 안에 무너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리인들은 언제나 눈 앞에 놓인 불확실성 uncertainty 때문에 주인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물론 철들기 전부터 이 부 잣집을 위해 일한 마름은 지금 쌓여 있는 곳간의 곡식 중에는 자기의 지분 (노력)이 녹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박대감네 마름처럼 소작농에게서 폭리의 이율을 취하며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신중히 생각한 마름이 이부자에게 말한다.


'마님, 제가 10년 동안 마님을 위해 일하면서 모은 종잣돈이 있사온데 곳간의 곡식들을 제가 전부 사들여서 소작농에게는 제가 곡식을 지급하겠습니다. 대신 마님의 논의 일부만 저에게 떼어주십시오. 향후 그 논에서 나오는 소출은 대신 소인에게 주시옵소서'


이부자는 경제 정책 - 경제 위기에서의 실업 급여 지금 - 을, 이 부자 댁의 마름은 - 국채 매입을 통한 - 통화정책을 펼치려고 한다. 자본주의의라는 시스템의 요소들은 분명히 역사 속에서 존재했다.


경주 최부잣집과 세계의 부자들,

조선이 아닌 세계 곳곳에서 분명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은 봉건주의의 종말과 함께 찾아왔다. 물물교환에서 금속화폐 (금과 은), 그리고 현재의 종이화폐와 '신용화폐'인 채권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가 1조 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한다고 하면, 그것을 매입하는 기관 혹은 중앙은행들은 실제로 정부에게 종이화폐를 지급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곡식으로 주지도, 금으로 지급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신용화폐로 지급한다. 말 그대로 화폐가 종이를 벗어난 것이다. 화폐는 현시대에 와서 보이지 않는 '권리'로 자리 잡았다. 바로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권리로 발전한 것이다.

Bank라는 단어는 영국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이태리에서 생겼다. 환전업 상인들이 쓰던 단어인 Banco에서 유례 되었으며, 그 이후에 예금 업이, 그리고 나서야 영국의 금세공업자들에게서 대출업이 유래된다. [2]


자본주의라는 것은 우리의 현재 삶의 프레임을 설명하는 도구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인간은 이기적인 본성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자본주의라는 형태로 표현된 것일 뿐이다. 경주에 부자는 많았으나 이름을 남긴 것은 마름이 없었던 최부자뿐이다.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대중적인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난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난세에서 살아남기 20편으로 이어집니다.




[1]

장단기 채권 수익률 역전현상에 대해 한은 총재께서 한마디 하신 바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시장금리가 채권금리보다 높아” 시장금리라는 표현이 참 좋은데요. 실질적으로 위기 속에서 단기적 수익률이 급등하는 현상이 시장 즉 금융 마켓이 되겠고, 이 시장금리가 기존 채권의 표면금리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장단기 채권 금리 역전현상이라 하겠습니다.



[2]

http://www.mediapen.com/news/view/187205

- 중앙대학교가 연극영화과만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경제 부분도 석학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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