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영국, 스웨덴의 늦은 고백

난세에서 살아남기 (16)

by 외노자 정리

난세에서 살아남기 16편: 자유의 영국, 스웨덴의 늦은 고백.



잉글랜드의 자유

런던이 열렸고, 잉글랜드가 자유를 되찾았다. 역사 속의 독립전쟁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자유는, 영원할 것 같았던 코로나 19 COVID-19라는 보이지는 않는 반인권적인 침략 체제에 대하여 일종의 '휴전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휴전이 무엇인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한국의 남성이라면 아마 최소 2년간의 국비유학이라는 시간을 통해 휴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반강제적으로 공부한 바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평화를 원하는 자, 전쟁을 준비하라'.

그것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중국과 일본을 곁에 두고) 때문도 아니고, 우리나라 속에 미국을 품고 있는 정치적/군사적 현실 때문도 아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과 소비에트 연방의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지를 얻고 시작된 김일성의 전쟁은 아직 끝 the end를 보지 못했다.


종전과 휴전은 차원이 다르다. 서독과 동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하나의 독일, 지금의 EU를 EU 답게 만드는 경제강국이 되었지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여전히 휴전 상태다. 휴전 이후,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일어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범 퇴치 국가로 세계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하다: 분단이 지속되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을뿐더러, 국방비를 여전히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만큼 쏟아붓고 있다.


잉글랜드의 자유는 이와 같은 한시적 자유다. 즉,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의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류는 (그리고 영국은)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했다. 바로 lockdown의 점진적 해제를 통해서. 그러나 휴전은 종전이 아니다. 제한된 자유 (가족 포함 6인 이상 만나지 말 것)과 여전히 쏟아붓고 있는 천문학적인 백신 개발비가 이를 대변한다.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마음 곳곳에 침략해 들어왔다. 바이러스의 침투보다 무서운 것은 심리적 두려움이다. 특히,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들과 기저질환자들은 이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생각 이상이다 (우리 윗집 청년은 당뇨병을 앓고 있는데, 아직도 집 밖을 제대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면전이 다발적으로 선포된 지 4개월가량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서양과 동양의 심리적 차이점에 기반한 사재기의 차별적 발현, 각 국가의 특이성, 국가의 책임과 국가에 속한 국민의 자유에 대해서 많은 생각할 거리가 주어졌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의 자유에 대해서 국가는 보장을 해 주었다.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전 세계 방방곡곡을 거의 대부분 나라에 비자 없이 60-90일을 체류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면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국가가 발생한 근본적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국가란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그 안전 속에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하기 위해 세워졌다. 즉, 개인의 자유는 국가라는 틀 안에서 보장을 받는다. 국가가 불안정하면 개인의 자유는 다른 주체로부터 안전할 수가 없다. 내 집, 내 재산, 내 가족의 안전이 지켜질 수 없는 것이다. 고로, 국가와 국민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이 국가관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국가의 최종 정의에 불과하다. 1884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의 하기 문장을 지금에서야 제대로 바라본다.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부과된 권력이 아니다.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나 ‘이성의 형상 및 현실태’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중

영국이라는 국가가 한시적 자유를 국민에게 허락한 것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치밀한 준비를 통해 이 전염병과 싸울 전략을 제대로 마련한 것도 코로나 19 COVID-19 이후의 넥스트 노말 next normal 시대를 열기 위한 국가들의 다양한 단계적 발전 모습일 뿐이다.



스웨덴의 고백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며, 쿠팡 물류기사 사건 등이 다시 심각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영국이 한시적 자유를 되찾은데 반해, 현 상태에 대한 코로나 19에 대한 국가 간 괴리감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나 이 전쟁의 최종화를 아직 쓸 수가 없다.

2차 세계 대전 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한국 전쟁에서 인천 상륙 작전으로 발전된다. 그 효과는 여전히 강력했다.

34. 영국의 자유.jpg By Unknown author - http://www.defenseimagery.mil

lockdown이라는 체제가 중국에서 처음 강력하게 추진되었을 때의 서방 세계가 lockdown을 바라보는 시각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그것과 같았다. '그게 무슨 효과가 있겠어?'

그러나 지금은 이 곳 영국에서도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태반의 사람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난세에서 개개인의 프레임이 전환되는 시간은 짧지만 극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웃을 수 없는 농담 중 하나: 'This is the first time in History that the original is from China and the copy is from Milano'. 이태리가 중국의 그것을 제일 먼저 도입했다. 이후 영국도 그랬고, 프랑스도 그랬다. 개개인의 프레임이 전환되는 시간이 짧듯, 국가들의 태세 전환도 상당히 극적이다.

서방 국가들에게 lockdown이란, (동방의 국가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개념의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는 도구, 바이러스를 제압하는 최후의 전략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 넥스트 노말에서, 서양의 전염병 대책에서 lockdown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이처럼 세계 국가의 보건복지 정책에 한 획을 그으며, lockdown이라는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반인권적인 정책이 바이러스에 효과적인 정책으로 태동하며, 프레임의 일제 전환이 이루어졌다.

맛있는 음식을 두고 이렇게 표현한다지,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어본 사람은 없다'. lockdown을 한 번도 안 해본 국가는 있을지언정, 한 번만 하는 국가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영국의 초기 코로나 19 COVID-19의 정책은 '집단 면역력' 생성이었으나, 다행히도 이를 몇 주 안에 긴급 선회하여 학교를 닫고 lockdown을 실시한다. 이 '몇 주'의 간극조차 9천만 명 인구 영국의 NHS 의료 시스템이 가진 capacity를 초과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스웨덴의 정책이 내 귀에 들려왔다. '스웨덴은 집단 면역력을 키우는 것을 중점적으로 두고, 학교도 닫지 않고, lockdown도 실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뉴스를 읽어주는 아내의 말을 들으며, 스웨덴에서 박사 학위를 끝내가고 있는 아내의 친구 그리고 그녀의 스웨디쉬 남편이 생각났다. 우리 가족과 매우 친한 그들이 걱정이 되었다. 1년 전에만 해도 런던에 와서 함께 바비큐를 즐기며, 보드게임과 수다를 통해 회포를 풀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스웨덴을 갈 수도, 그들이 런던에 올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기를 몇 개월, 오늘 아내가 나에게 다시 뉴스를 읽어준다. '스웨덴에서 lockdown을 안 한 것을 잘못한 정책이라고 인정을 하네'. 정말 그랬다. 스웨덴의 non-lockdown policy의 뒤에 있던 COVID-19 최고 정책 대변인인 Dr. Tegnell 씨가 인정을 한 것이다.

"There is quite obviously a potential for improvement in what we have done."

그는 이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향후 이와 같은 질병에 다시 한번 맞닥뜨리게 된다면, 지금 스웨덴이 행했던 정책과, (lockdown 등을 실시한) 타 국가들의 정책 사이에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더욱 애석한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죽은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사실, 영국의 런던 (잉글랜드)와는 다르게, 스웨덴에서는 집단면역 전략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다. 인구밀도가 런던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인구도 10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수치는 4542명이 죽었고, 4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사망률은 0.045%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북유럽은 유럽이 아니다. 그들의 프레임에서 스웨덴은 한국 (273명)이나 영국 (39728명) - 03/06/2020 기준 - 이 아닌, 노르웨이 (사망 237명), 핀란드 (321명)과 비교된다. 더군다나, 그들의 이웃은 남들과 같이 lockdown을 실시했다. 그러나 스웨덴은 그들의 낡은 프레임을 새 것으로 바꾸지 않았으며, 지나친 낙관 속 집단 면역을 고수했다.



1884년 갑신정변, 그 이후.

1884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그 해에,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국가란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관점이 나왔다. 그리고 2020년에 인류 근대 보건복지 역사상 한 획을 그을 사건, COVID-19 사태가 나타났고 lockdown이라는 방법론이 다시 대두되었다.

국가에 속한 개인과, 개인의 자유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으며, 국가 간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아닌, lockdown 정책의 눈치보기 도입이 어떠한 차이를 보여주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난세 속에서, 유연한 사고방식은 중요하다. 낡은 프레임을 부수는 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보다 사고방식의 전환이 빨라야 이 난세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난세에서 낙관주의는 사치다.






난세에서 살아남기 17편: 경주 최부잣집, 그 이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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