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서 살아남기 (21)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시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자 Stakeholder는 영국 정부 산하의 기관 / 대학교 2개 / 대형 건설사 1개 / 중소형 SME 업체 5곳으로 이우러 졌다. 이 모든 사람들을 한데 모아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온라인 미팅 Kick Off Meeting을 한번 했는데 핵심 관계자만 16명이 모였다. 미팅을 하면서, 내 소개 'I'm Jenog working for UCL, reseearching failure costs of Heathrow' 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나는, 분명 그 시점에 이 프로젝트는 산으로 갈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직감했다. (어느 나라에서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아직까지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의 직감은 영국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만약 영국이 아닌, 한국에서 이러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프로젝트를 수월하게 진행하려면 대략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할아버지의 자본,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고3 수험생이 명문대를 가기 위한 조건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삼박자가 묘하게 프로젝트 수행의 그것과 맞아떨어진다.
이 삼요소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보의 원활한 전달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해서는 내가 가진 정보와 그가 가진 정보의 대칭성이 필요하다. 발주 자가 원하는 프로젝트의 '상'과 내가 만들어가는 '상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맞아 가야 하는 것이다. 즉, 정보의 비대칭성, asymmetric information이 프로젝트의 진행과 함께 적극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할아버지(정부)의 자본이 아빠(대형 건설사)의 관심을 통해 적재적소에 배분되고, 엄마(중소형 업체들)의 충실한 정보력에 기반한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정보력이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정보에 권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발주 자에게 무언가를 질의하기가 어렵다. 대형 건설사는 중소형 업체들의 정보 요구를 귀찮아한다. 그러다 보면, 피라미드를 건설했어야 했는데 치첸트 이사가 탄생한다.
정보는 권위적인 것이 아니라 계층적이다. 바로 영국에서 석사 중 가장 많이 접했던 단어 hierarchy 계층이라는 단어다. 사실 이 hierarchy라는 단어는 꽤 고급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계층, 혹은 시스템이라는 의미로, 정보의 상위/하위 level을 표현할 때에도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아시아인, 그리고 한국인으로 자란 나의 머릿속에 hierarchy라는 언제나 '계층'이 아닌 '권위' authority로 느껴졌다. 계층적이면 무조건 권위적인가? 그렇지 않다. 피라미드는 계층적이다. 그러나 아래층과 위층 사이에 다른 점이라고는 구성하는 돌의 개수일 뿐, 돌이 많고 적음은 권위적이지 않다. 필요에 의해서 아래와 위를 나누고, 그것이 계층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계층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무의식적 권위가 들어있다. 이러한 인식이 개인의 머릿속에만 자리 잡고 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입 밖으로 튀어나와 나의 사견私見이 사견社見이 되고, 개인의 권위가 회사의 권위가 되며, 회사의 권위가 사회적 권위의식을 형성한다. 그 권위의식을 확인하는 방법은 10분이 채 안된다.
'혹시 실례가 안되면, 나이가?'
실례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남의나이가 궁금하다. 자본주의의 한 틀인 기업의 계층도 한국에서는 대기업, 중견 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자영업, 권위의 순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의 '급발진' 국가에서는 국가의 관심이 대기업에 집중되어 '소상인'들이 그 힘을 펼치기 어려운 시장 경제를 이루어 버렸다.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는, 10대째 나무젓가락만 만드는 자영업자 (혹은 장인 artisan)라던지, 50년째 코 털깎기만 만드는 독일 회사 (SCHON)을 한국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의 시장경제 업력은 이제 약 50년에 접어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정부 주도의 계층적 중후 장대 기업 들을 중심으로 대기업이 육성되었고, 대기업과 정부의 관계가 깊이 관여되어 있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오죽하면, 석사 과정 중에 만난 동기가 나에게 'Hey Jeong do you know 죄벌?'이라고 했을까. '응, 아니야' 죄벌은 몰라도 재벌은 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재벌은 global 하다. 구글에서 당신은 글로벌 재벌, 이름하여 chaebol로 만나볼 수 있다.
혹시 이런 현상이 부끄러운가? 그렇다면, 당신의 프레임은 이미 닳았다. 재벌이라는 의미 자체가 부정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벌이라는 말 자체는 Wikipedia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재벌이란, 한국에서 살펴볼 수 있는 가족이나 오너 (owner)에 의해 경영되고, 지배되는 대규모 기업의 집합 congromeration이다. 재벌은 보통 매우 분산된 관계회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오너의 지배력이 법에 의한 지배력보다 더욱 크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중 '법에 의한 지배력보다 더욱 크다'라는 부분이 이해가 디지 않아 살펴보니 "whose power exceeds his legal authority over group-wide operations (Jung, 2004:1 p)"라는 표현에서 따왔다. [1] 이 논문은 상위 재벌 기업 30개가 총 604개의 관계사를 지배하고 있음을 설명하며, IMF 사태 이후에는 이보다 더 심했음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실제 지분이 없어도, 순환 출자 등으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도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점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국내 관심은 정경 유착, 기업 간의 밸런스 붕괴 등에 논쟁의 중심으로 사회적 프레임으로 되어왔지만, 세계에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 how에 관심을 가진다. 즉, 어떻게 이러한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또한 짧은 시간 안에 '선전' 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why와 how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는 극명하다.
재벌과 Chaebol
영국 기업 Sainsbury의 주식은 모든 자녀들에게 동등하게 귀속되어 분산되어 갔다. 이렇게 몇 대를 거치다 보니, 지배력이 큰 Owner는 없어졌고, 경영자, CEO로써의 Owner만 남았다. 그러나 그 기업은 여전히 100년 전의 모토를 실현한다. '영국을 먹이는 기업' (영국 기업 100서 1편: Sainsbury)
너와 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한국의 재벌 chaebol들이 해냈다. 단기간, 선택과 집중 그리고 중앙 집권 체제를 고수한 한국의 재벌들은 fortune global 500에서 16개를 차지했다. (2019년 기준) 관계사 및 종속기업들을 포함하면 실제 숫자는 300여 개가 해당될 것이다.
재벌들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여전히 다르다. 그리고 그 격차는 여전히 까마득하다. 나는 재벌들에 있어서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하고 싶다. 즉, why보다는 how에 그리고 how 중에서도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고 싶다. 어째서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까? 보다는 그 자리를 차지한 당신의 실행력을 높이 삽니다. 그런데, 앞으로 50년. '어떻게' 살아남으시겠습니까?
기업의 주식이 한곳에 집중되어 실질적 의결권을 장악하게 된 재벌, 그들이 버려야 할 것은 바로 그 지분이다. 지분에서 자유한 owner-free owner가 되어야 한다. 무소유의 소유, 이 새롭고 역설적인 프레임을 탑재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재벌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울 것이지만 그것이 있을 때 난세에서 살아남기가 가능할 것이다.
세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한계에 봉착한 한국 기업의 새로운 역진, 누구보다 기대하는 1인이다.
난세에서 살아남기 22편으로 이어집니다.
[1]
Jung, D.-H. (2004) ‘Korean Chaebol in Transition’, China Report, 40(3), pp. 299–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