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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Oct 07. 2023

딸에게

1 년만에 전격 공개, 딸의 혼삿날 아빠의 인삿말  

'시집 보낸다'는 말은 틀렸다.

지난해 '시집간' 딸은 시집이 아닌 내 집에서 20분 거리인 아산에 산다.

곧 '장가갈' 아들은 작은 보금자리를 이미 처가 쪽에 구했다.


수렵시대 아이 양육은 장모님 몫이었다더니, 돌고 돌아 다시 그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교회나 성당에서 명절엔 '시편'을 낭송하는 것이 금기란다.

그리 인기없는 '시'아버지로 며느릴 맞이할 생각을 하니 살짝 걱정도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지난 해 5월 딸의 혼삿날, 인삿말로 전했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아~ 이처럼 이쁜 커플, 특히 신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넘 눈이 부셔서 준비한 글이 잘 안보이네요~

참 신기한 것은,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가 바로 이처럼 이쁜 신부와 꼭 닮았다고들 하는 아버지입니다.

사실 세정이가 어릴 때 부터 귀여운 구석은 있었지만 이렇게 연예인급은 아니었습니다. 그 흔한 쌍수... 등 성형수술 한번 안 하고 이렇게 이쁘게 자라 준 것은 정말 기적이고 신비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몸 마음 모두 명품인 세정일 낳아준 아내와 그분을 낳아주신 김**, 조** 장인장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지난 27년간 한결같은 사랑으로 오늘의 주인공 세정이의 베스트프렌드이자 최고의 조부모로 함께해 주신 두분 저의 부모님 정**, 이**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결혼식날짜가 다가오자 주변 분들로부터 ‘딸 여윌 준비가 잘 되고 있느냐?’는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저와 아내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복잡다난한 모든 절차를 준수와 세정이가 알아서 스스로 척척 해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크레딧 카드 한 장 건낸 것 밖에 없었습니다. 준비과정이 너무나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라 저희 부부는 마음편히 산으로 들로 꽃놀이만 다녔습니다. 사소한 의견충돌 한번 없었는데요, 그 중심엔 준수군의 사려깊음과 배려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완벽한 신랑감이자 사위를 키워주신 사돈 내외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인사)     


국가기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7년전 준수가 세정이에게 대쉬한 것으로 알고 계시지요?

실은 세정이가 준수를 먼저 찍고 고백하도록 만들었다는것 모르셨지요?

다른 건 몰라도 제 딸이 사람 볼 줄 알거든요. 좋은 남자 알아보는 안목은 지 엄마와 똑 닮았어요. 사실 27살이면 요즘으로는 조혼인데, 이렇게 빨리 제 곁을 떠나는 것이 서운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선 저와 아내에게 좋은 시절 다 가고, 관절 망가질 날이 멀지 않다고 염려해 주시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결혼 준비를 둘이 알아서 잘 한 것 같이, 앞으로도 별다른 지원없이 스스로’ 아이도 키우고 매사에 잘 헤쳐나갈 것을 믿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아내도 저도 아이들을 키울 때 힘든 기억 일도 없고 매일매일이 축제였거든요. 해서 세정이 원래 계획대로 셋 낳아서 가정과 어지러운 세상을 이롭게 하길 바랍니다. 혹시 힘쓸일 있을까 싶어 이 아빠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열심히 푸쉬업 턱걸이로 근육 키우겠습니다. 세정이와 27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으니, 남보다 이른 독립을 앞두고 한 두가지 잔소리를 해도 되겠지요?  


"음악주세요"(배경음악, 나의 해방일지 OST중, 일종의 고백 MR)


"새아들 준수야, 하나뿐인 나의 프린세스 세정아,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라고들 하지만, 결혼생활 30년째인 이 아빠는 아직도 사랑이 어렵다. 그래도, 추상어를 쉬운 행동어로 바꾼다면 사랑은 ‘배려’가 아닐까 싶다. 매사에 서로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솔선하는 것이 배려의 마음이다. 둘째 아들 준수야, 배려는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다림질은 당연하고, 빨래도 개고, 부족한 운동은 분리수거로 틈틈히 보충하고, 비오는 날이면 호박전, 김치전도 붙이면 금상첨화다.  나한테는 이미 익숙한 일들이라 나열해 보았지만, 이런 것은 배려의 예이지 진짜 다 하라는 뜻은 아니다. 세정이는, 착한 신랑 준수가 힘든거 눈치 못채도록 지혜롭게 살살 오래 부려먹도록.      


사랑 愛자는 원래 ‘아낀다’, ‘인색하다’는 뜻이란다. ‘아낀다’는 말, 애지중지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함부로 부리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다. 상대방을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대우하는 것. 그래서 ‘내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 뜻’을 미리 헤아려 ‘우리 뜻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사랑의 방정식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주연이고 너희들은 조연이었다. 직장에서도 잘 나가는 동료나 상사가 주연처럼 보일 것이다. 이제 부부가 된다는 것은 두 사람이 남녀 주인공으로 살아가라는 뜻이다.      


흔히들 사랑과 자유는 모순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혼일 때 자유를 만끽하라거나 결혼은 제약과 구속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찐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일 뿐이다. 참사랑엔 한계가 없고, 참자유는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선물이란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란 기복을 견디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기복없는 사람도, 완벽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평생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짭쪼름한 맛은 같지만,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두가지다. 슬픔과 회한이 아닌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수시로 선사하는 부부로 살아가거라.      


최고의 배우자선택이 최고의 결혼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돌이키기엔 이미 늦은거 맞지?

너희들의 선택을 믿고, 선택 이후 최선의 삶을 살고자 애쓰는 것이 최고의 결혼을 이루는 비결임을 명심하렴. 아빠도 너희들의 선택을 믿고 지지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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