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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Apr 08. 2020

노래할 이유 있네

모난 돌들의 퍼즐 맞추기, 아마추어 단원의 합창 예찬

인생 쫌 살아보니, 중요한 일들은 죄다 무계획, 혹은 우연이더군요.

합창도 그렇게 저에게 왔습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아내와 지역 합창단 활동을 한지 십수 년이 지났습니다.

뒤돌아보니, 기대보다 훠얼씬 좋은 기억들이 그득합니다. 죄다 합창이 준 선물입니다.

각기 다른 연령대 직업을 가진 이들이 바쁜 시간 쪼개어 매주 함께 모여 노래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지요.

바흐나 모차르트 같은 음악 창조자들의 수준이야 언감생심, 가장 수동적으로 음악을 즐기는 행위는 감상, 즉 듣기이겠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 '노래하기'는 듣기의 수동성을 넘어 한 차원 높은 기쁨을 줍니다.

코로나 덕분에 모임이 2년 이상 노래를 못하게 되었지요. 덕분에 부실한 내면을 살피고, 정리할 시간을 벌게 되었습니다. 해서 노래하면서 배운, 합창이 준 선물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보려 합니다.


작은 조각들을 모아 조화와 감동을 일구는 '하모니'에 취하다    

물론 타고난 목소리를 가진 분들도 계시지만 '절제'가 없으면 하모니를 망치게 됩니다.

반대로, 목소리가 좋지 않거나 음감, 박자감이 부족해도  끈기 있게 따라 하다 보면 최소한 '눈치'는 남습니다. 이 눈치야 말로 타인에 대한 배려요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요령 아닐까요? 이렇게 모난 돌은 깎아내고 부족한 틈은 메꾸어 작품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피천득 님 수필 중에 오케스트라 지휘자보다는 무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멋진 전체의 작은 부분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기쁨이 저는 더없이 좋습니다.  



'마음의 균형감'이 자라다

단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노래하는 이유들이 모두 제각각이예요. 프로 같은 정말 좋은 하모니를 꿈꾸는 분이 있는가 하면, 제사보다는 제삿밥에...^^ 친교와 사람 사귀는 것이 좋다는 분들도 있지요.


항상 제시간에 오셔서 빠짐없이 연습에 참여하는 분들이야 최고지만, 정말 어려운 형편에 시간이 허락할 때만이라도 힘이 되어주시는 분들의 형편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능이 있는 분들은 한두 번만 연습해도 음과 박자를 다 익히니,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한 반복연습이 지루할 수 있겠다 싶어요. 그래도 재능 있는 분들을 부러워하면서 죽어라 연습해서 조금씩 나아가는 분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고민이겠지요.  그러니 한편은 '인내와 배려'를 다른 한편은 '노력과 성취'를 배우게 됩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다

같은 곡을 연습하는데도, 의자에 편히 앉아 노래할때와 무대위에서의 연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연습에 참여하곤 하는데, 정기연주회에 소개할 십여 곡을 매주 반복하다 보면 솔직히 지겨울 때도 있지요. 

'이제 이곡은 멜로디와 박자 모두 익숙한데 또 파트 연습이로군....' 

이런 생각이 들면 연습에 몰입이 안됩니다. 

어느 날, 부러 허리를 세우고 지휘자님의 손끝에 집중하며 풍부한 표정으로 실전처럼 노래했어요.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 어디선가 엔도르핀이 쑤욱 올라오더라구요. 두 시간 넘게 노래하고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콧노래가 추가로 흘러나왔어요. 

'그래 인생도 노래도 어차피 과정이야. 순간을, 과정을 즐겨야지' 

옛 성현님들 말씀은 합창에서도 진리였어요!   


완전한 '비움'을 배우다

매주 2시간여씩 일 년을 준비해 정기공연을 서고, 대회에 참석도 해 보니 그때마다 감동과 허탈함이 교차했어요. 처음에는 이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나... 허탈한 마음이 더 크더라구요. 차라리 미술이나 사진은 뭔가 남는 게 있는데, 합창은 정말 공연 후에 남는 게 하나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뭘 남기려고 하나... 무대 위에서 죽어도 좋을 것 같은 행복감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하는 생각이 나더군요. 공수래공수거라던가? 인생이 그런 거라지요. 움켜쥐려고 해 봐야 빈주먹뿐인... 그렇게 합창은 저의 인생 선생님이었네요. 

이것이 바로 제가 노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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