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 정 Mar 13. 2024

초록이 아니어도 좋았다

바다 조망 끝판왕 장흥 천관산 탐방기, 24. 3. 10.  

은하수 찾아 남도행


김유신의 여인 천관녀의 절절한 사연이 깃든 장흥 천관산에 올랐다.

그것도 하루 2번.

꽤나 산을 올랐지만 '1일 1산 2등반'은 처음이다.

적잖은 고통을 수반한, 이 특별한 체험은 '별' 때문다.


올 산행 목표가 '은하수 보기'라는 Y대장이 정기산행일 하루 전, 그 어렵다는 주말 자연휴양림 예약에 성공했다. 선착순 1박 산행 공지를 보자마자 광클릭한 덕분에 8명 선발대에 합류.


나주 하얀집에서 맑은 곰탕 국물로 배를 채우고, 이정표로부터 무려 7킬로 임도길을 꼬불꼬불 열 굽이나 올라 장흥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그믐인 데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별이 총총, 생애 첫 은하수를 알현할 기대에 일찍 잠을 청했다.


장흥이 어딘고 했더니 땅끝 해남 옆동네다


AM 3: 30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헤드랜턴 빛에 의지하고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어느덧 해발 724m 천관산 정상.

3월이지만 정상은 칼바람이 휘돌아 냉기가 뼛속으로 스몄다.

딱 한 걸음씩만 오를 수 있는 야간산행의 묘미


비닐쉘터에 옹기종기 둘러앉으니, 아뿔싸...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온다.

은하수를 보려면 더 일찍 서둘렀어야 했다...ㅠ


그런데 그 붉은 기운 아래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온통 물이다!


숨 한번 더 쉬자, 둥실 떠오르는 해가 홍시 같다.

한 입 베어 물면 따끈하게 달콤할 것 같은.



여명 속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바다섬하늘 & 태양의 멋진 하모니
뭐가 보이나요? -> 날이 환해지자 멀리 한라산이!


CJ산악회의 본 팀과 합류한 시간은 오전 10시.

이미 만 오천보를 걸은 상태였지만 새로운 코스인 금강굴 코스 탐방을 시작했다.



새벽엔 휴양림 코스 왕복, 낮엔 금강굴 코스+ 양근암코스로 일일 이등반

 



하루 2산 등반은 해 봤지만, 같은 산을 두 번 오르긴 처음이다.

해발 산행이 그렇듯,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능선에 오르자 좌우로 그림 같은 다도해가 펼쳐진다.

환타스틱 한 바다 조망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능선길에 서니 오른쪽도 바다
왼쪽도 바다다



겨울빛이 채 가시지 않아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너른 바다와 똥똥똥 섬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초록이 무성하거나 앙상해도 산은 절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산넘어 조약돌처럼 자리잡은 섬 섬들

거인들의 놀이터?


지리, 월출, 내장, 내변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라는 천관산.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마치 천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설과 애꿎은 말의 목을 쳐야 했던 김유신의 여인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공존한다.

정상에서 능선에 불규칙과 규칙이 묘하게 조화로운 봉우리들을 보며, 거인들의 놀이터가 떠올랐다.

레고블록을 능선에 쌓다가 아무렇게나 흩어 버리고 떠난 모습 같은.


사자바위, 그 아래 엄지척 바위 from 묻지마 작명소


책바위


같은 산 다른 풍경


하루 두 번 오르니, 산은 같은 산이로되 색(빛)이 다르다.

말 그대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천관산은 억새명소로도 유명


올 첫 진달래


하산길, 깨물면 고소함이 터질 것 같은 진달래 봉오리와 만났다.

불과 몇 미터 차이지만 좀 더 내려가니 활짝 웃으며 반긴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올해 첫 진달래다.


엄닌 진달래와 대화가 가능하시다.  


(꽃잎을 쓰다듬으며)

"수고 많았다... 그 모진 추위를 어찌 견디고 이리 이쁜 꽃을 피웠누.."


가장 향기로운 커피를 맛보다


여명이 밝아오기 전, 정상의 비닐쉘터 속에 겨우 자리를 잡자 CJ산악회 최장신 L이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잠시 후 텐트 안이 고급 콜롬비아 커피 향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내린 커피를 가져오기만 해도 땡큐일진대, 원두를 꺼내 핸드 그리인더로 갈아 버너로 끓인 물로 커피를 내려 준다.

진심도 이런 진심이 있을까.

커피 향에 취해 문득 떠오른 생각.


향기, 글로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 절대로.



버너에 코펠에 그라인더까지 완벽한 준비로 인생 커피를 맛보게 해 준 L에게 감사


 남도하면 먹거리


또 한 분, 먹거리에 진심인 Y대장 덕분에 맑은 갈비탕 국물 같은 나주 곰탕과 낙지+키조개+돼지고기 삼합을 생물+익힘+볶음으로 즐기는 경험을 했다. 오랜 전통의 하얀집 곰탕은 깔끔한 국물에 비해 고기맛이 다소 터프했다. 사장님의 자부심이 대단한 신가네 삼합은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밥이 말아 나오는 맑은 국물 곰탕
1단계-생물 삼합


2단계-익힌 삼함

 

3단계-볶은 삼합
 단체사진이 귀한  CJ산악회





 

  




 


  


작가의 이전글 봄의 전령, 변산바람꽃 & 노루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