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13. 별빛산행, 압도적 일출의 월악산 등반기
"내일 날이 넘 좋네요. 별과 운해, 일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벽 2시 출발, 괜찮겠지요?"
정기산행을 하루 앞두고 Y대장의 톡이 올라왔다.
'잠을 자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무박산행도 아니고....'
솔직한 심정은 요랬건만, 이어지는 응답들은 한결같이, '대장님 원하시는 데로 따르오리다'다.
이처럼 압도적인 신뢰라니...
고속도로에 차가 없다.
앞차를 무신경하게 좇아가면 알아서 단속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줄이는데, 우리 차량밖에 없으니 더 조심스럽다.
새벽 4시를 조금 넘겨 헤드라이트를 켜고 산을 올랐다. 딱 2미터 앞만 보이는 오르막을 아무 생각 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추석연휴롤 반팔과 에어컨으로 보내게 한 끔찍한 여름, 참 질기다. 시월의 복판인데도 새벽 공기가 전혀 차지 않아 재킷을 벗어야 했다. 조만간 시월도 여름이겠다.
쉼터에서 머리를 드니 하늘에 별이 선명하다. 다 같이 라이트를 끄니 그제야, "우와~~" 쏟아지는 별빛에 말을 잊었다. 오리온도 북두칠성도 교과서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다.
괜히 악자가 붙은 게 아니다. 시종일관 계단과 돌들로 발바닥이 후끈거린다. 멀리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온다. 정상인 영봉이 코앞에 보이는데 왜 이리 빙 돌아가누... 막판 돌고 도는 계단이 끔찍하다. 예정된 일출 시간이 다가오자 발걸음이 바빠지고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경계가 없던 산과 하늘이 어느새, 붉은 그라데이션으로 선명히 나뉘었다.
드.디.어.
해발 1,097미터 정상에 올랐다.
우주의 에너지가 벅차서인지, 숨이 차서인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봉우리 이름도 신령스러운 영봉!
두둥실~ 깨끗한 홍시가 떠오른다.
넋 놓고 온몸과 맘으로 에너지를 받았다.
굽이 굽이 산자락이 파도 같다.
좌우를 둘러보니 바다가 맞네, 구름바다!
"고마워요. 이런 경치를 보여주려고..."
나도 모르게 Y대장을 백허그했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찾는다던가.
일찍 서두른 덕에 시시각각 환상적으로 변하는 정상은 오롯이 우리 차지.
점점 더 짙게 피어오르는 운무를 감상하며 음악도 듣고 사진도 담았다.
슬그머니 배가 고프다.
갑작스러운 새벽산행에 Y대장은 뜨끈한 어묵탕을 준비했다. 팔팔 끓어오르는 버너에 꼬치를 넣고 꺼내 먹었다. 그야말로 인. 생. 오. 뎅.
남은 국물에 우동사리까지, 든든히 배를 채웠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머릴 드니 우아한 새 한 마리가 연처럼 정지해 있다.
중력과 바람 사이, 참으로 절묘한 균형감이다.
"사막에서 밤하늘을 문득 올려다보았는데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엄청난 별과 은하수를 마주할 때, 우리 마음은 일상에서 튕겨져 나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또는 바다 한가운데서 고개를 들어보니 시선이 닿는 모든 방향으로 끝없는 수평선만 보일 때. 만년설을 뒤집어쓴 장엄한 산봉우리와 문득 마주할 때, 지리산 종주길 좌우로 펼쳐지는 끝없는 산봉우리와 구름바다 위로 석양이 펼쳐질 때, 자연의 충격적인 아름다움과 문득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모든 저항심은 다 사라집니다. 그저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완전한 항복 또는 온전한 수용의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경외심입니다." [내면소통, 김주환]
무릎을 쳤다. 며칠 전 줄쳐가며 읽은 책의 한 귀절.
하늘, 구름, 태양, 산, 바위, 나무... 그리고 두둥실 새 한 마리
앞도적인 자연 앞에 마음의 무릎을 온전히 꿇었다.
완전한 항복, 온전한 수용이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 환상적인 사진들은 CJ산악회 밴드에 올라온 작품들을 '허락없이'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