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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걷다보면

알로~하와이, 뭘 봄?

일정편 : 하와이(오아후, 카이아우, 빅아일랜드) 열흘간의 자유여행기

by 폴 정

"The world is a book, and those who do not travel read only one page."

– Saint Augustine

세상은 한 권의 책이고,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이다.




대학 졸업 35년 기념으로 동기들과 하와이를 다녀왔다.

30주년 여행으로 기획되었다가 코로나 여파로 연기되었던지라 그만큼 간절하고 기대도 컸다. 다들 공사가 다망한지라 공식일정은 겨우 호놀룰루 5박 6일 체류, 그것도 설 연휴라 항공료부터 만만치 않다. 결혼 30주년을 어영부영 넘긴 터라 남은 연차를 모아 열흘짜리 두 번째 허니문 일정을 계획했다.


하와이는 섬 하나가 아니고 와이키키 해변으로 유명한 주도 오아후, 몇 해전 대형 화재를 겪은 마우이, 쥐라기공원 등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카우아이, 그리고 활화산을 품은 빅아일랜드 등 크고 작은 137개의 섬군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50번째 주다. 첫 5일은 오아후에서 동기들과 단체관광 일정을 소화하고, 나머지 5일은 아내와 빅아일랜드를 돌아보았다.


* 빅아일랜드 일정은 코나에 28년째 거주 중이신 Paul Jeong & Abigail 목사님 부부가 꼼꼼하게 조언해 주셨다. 나 홀로 유튜브와 여행 관련 책자를 보며 혼자 짰던 계획을 대폭 수정했고, 결과는 대만족!


Day 1(1/28). 다이아몬드 헤드 트레일의 해돋이

수유리 출신의 우리 부부와 수유시장입구의 유명 개원의사인 조원장 부부가 의기투합, 다이몬드 헤드 일출 트레일을 나섰다. 첫날부터 이국에서의 새벽이동인지라 걱정했는데 명불허전, 우버는 생각보다 정확하고 편리했다. 새벽어둠을 뚫고 한 시간여 언덕을 올라 정상에 섰다. 바다와 구름사이로 장엄한 해가 떠올랐다. 건너편으로 와이키키 해변과 리조트군이 한눈에 펼쳐진다.



다이아몬드 헤드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일출
다이아몬드 헤드에서 조망한 와이키키 해변과 빌딩군


하산 후 호텔로 돌아와 장시간의 비행과 시차에 적응하라 축 처진 몸에 수면을 선물했다. 점심으로 마루카메 우동무스비를 맛보고 해질 무렵 드.디.어. 와이키키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해안선의 길이나 폭면에서 안면도 꽃지나 대천, 해운대와 비교가 안될 만큼 아담한 해변이다. 화산섬인지라 모래가 귀해 1920-30년대에 큰 규모로 해외에서 모래를 사다 부어 인공백사장을 만들었단다. 그래도 초록과 연두, 파랑을 잘 섞어 놓은 듯한 물빛과 다양한 인종 전시장 같은 활기찬 모습이 좋았다. 5년만 젊었어도 서핑에 도전했을 텐데....^^


Day 2(1/29). 수박 겉핡기, 오아후 섬 일일 투어

함께한 동기들 모두와 현지 한인 여행사를 통해 오아후 섬 일일투어를 했다. 패키지 상품답게 건성건성 포인트만 찍고 바쁘게 이동한다. 제주도와 비스무레한 풍광들에... 감동은 없었지만, 한국 의료의 현장에서 제 몫 이상을 다 하고 있는 훌륭한 동기들과의 만남과 이어지는 대화들이 의미요 감동이었음.


Day 3-4(1/30-31). 카우아이섬 일일 투어, 곰탕과 노숙체험

골프팀을 제외한 11명이 이웃 섬인 카우아이섬 1일 투어에 나섰다. 카우아이섬은 쥐라기공원, 인디아나 존스, 킹콩, 캐리비안의 해적 등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으로 원시우림과 장대한 케니언 등 압도적 자연경관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컸던 곳. 하와이는 섬과 섬 간의 이동이 비행기로만 가능한데, 밤새 호텔 창문이 덜컹거려 잠들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이 불어 비행기가 뜰까 잠을 설쳤다. 다행히 카우아이에 무사히 도착.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해발 1,220미터의 칼랄라우 전망대와 와이메아 캐니언 두 곳 모두가 구름이 자욱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산악인들이 소위 '곰탕'이라고 부르는 상황. 다행히, 포이푸 비치에서 엄청난 거북이 떼와 물범이 실망한 우리 일행을 위로해 주었다.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지나고
요 구름이 사라져야 하는데... 칼랄라우 협곡의 장대한 경치가 희미한 안갯속에 묻혀있다



일일 투어를 마무리하고 오아후로 돌아가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밤새 내린 비로 호놀룰루 공항이 침수되었단다. 예정되었던 항공편은 계속 delayed가 뜨더니 늦은 밤시간에 결국 cancel 되었다. 비상상황에 급히 호텔을 예약하고, 어렵사리 교통편을 구해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빈방이 없단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오버부킹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인들이 인구의 7%에 해당한다는 오아후와 달리 카우아이 섬의 한국인은 톡톡 털어 30명, 이리저리 수소문했으나 결국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6시 대체 비행 편이 마련되었다는 소식에 차라리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다시 공항행. 다행히 항공사에서 담요와 식수, 스낵박스 등을 마련해 주었다. 카우아이의 리후에 공항은 지붕만 있고 벽이라는 게 없는 그냥 한지라 말 그대로 노숙체험이 불가피했다.


'그래도 가오가 있지... ' 라며 담요를 두른 채 의자에서 밤을 지새운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곳에 담요를 깔고 지친 몸을 눕혔다. 딱딱한 바닥에 등이 배기고 머리맡에 둔 배낭도 신경이 쓰여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머리 위에서 천둥 같은 코골이 소리가 들린다. 겨우 자리를 잡은 터라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아 밤새 잠을 설쳤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정말이지 바다사자 같은 거대한 덩치의 흑인남성이 하필 나랑 머리를 마주하고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ㅠㅠ


최악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침 6시 비행기가 다시 연기되어 14시 30분 비행기로 티켓팅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대로라면 어제저녁 오아후로 돌아가 쉬고, 오늘은 쿠알로아 랜치라는 곳에서 어드벤처 투어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오후 2시 반까지 계속 공항에 있기도 힘든 상황. 다행히 날씨는 많이 개었다. 어제 곰탕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터라, 현지여행사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와이메아 캐니언과 칼랄라우 협곡을 한번 더 오르기로 했다. 다행히 환상적인 와이메아 캐니언을 직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칼랄라우 협곡은 어제처럼 구름이 왔다 갔다 하며 보일 듯 말 듯 약을 올렸다. 현지 가이드는 따로 짐을 부칠 것도 없는지라 30분 전에만 도착해도 비행수속에 문제가 없다며 칼랄라우에서 바람이 구름을 거두어 갈 때까지 최대한 머무르자고 한다. '조금만 더...' '바람아 힘을 내다오...' 모두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칼랄라우는 끝내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다시 리후에 공항에 도착하니 13시 50분, 아뿔싸... 전일 결항된 항공편의 수습문제로 체크인 카운터의 대기줄이 엄청나다. 보통 15분 전쯤에 체크인이 마무리되므로, 이대로는 비행기를 놓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새치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기줄에 서 있어야 했다. 11명이 모두 공항검색대를 통과하고 게이트를 향해 내 달렸다. 다행히 제일 먼저 체크인 카운터를 통과한 박원장의 딸 조양이 신발도 못 신고(미국 공항은 신발까지 벗기고 검색을 한다) 젊고 날랜 발로 비행기를 붙들었다!



* 칼랄라우에서 구름이 걷히길 기다릴 때 7분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던 나였기에, 그 7분 차이로 비행기를 놓칠까 노심초사, 마음이 쫄깃쫄깃했다. 우리 일행 11명이 비행기 문을 닫고 이륙한 순간,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계를 보았다. 14시 37분이었다!!


Day 5(2/1). 압도적 풍광, Big아일랜드

친구들 대부분이 한국으로 귀가하는 날, 우리 부부는 빅아일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코나 공항에서 우버로 숙소인 로열 코나 리조트까지 가는 길 내내 압도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하늘도, 바다도, 땅도, 구름도 스케일이 다르다. 활화산이 활동하는 지역인지라 현무암 무더기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느껴지는 장대한 해안선이 펼쳐졌다. 빅아일랜드는 크기가 제주도의 5배가 넘는 하와이 최대의 섬이다.

내일을 기대하며 새로운 숙소에 짐을 풀었다.




Day 6(2/2). 코나 근교 해변 나들이, James Cook monument, Tow-step beach, & Father Damien


빅아일랜드의 첫날 일정은 숙소가 있는 Kona 근처의 바닷가를 가볍게 돌아보기로. 폴 목사님이 찍어주신 포인트들을 내비게이션 앱인 Waze에 미리 저장해 두니 세상 편하다. 시내만 벗어나면 신호등도 차도 몇 대 없는 환상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진다. Hikiau Heiau에서 제임스 쿡 전망대를 조망하고, 푸우호누아 호나우나우 역사공원과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Two-step beach, 그리고 나병 환자의 아버지 데미안 신부님이 세우신 St. Benedict painted church를 돌아보았다. 제임스 쿡은 하와이, 뉴질랜드, 호주 등을 발견한 영국의 탐험가이자 항해사다. 데미안 신부님은 벨기에 출신으로 1880년대에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병환자들을 섬기다 스스로도 한센병으로 순교하신 분이다.


Hikiau Heiau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제임스 쿡 전망대
죄인들이 숨어들면 벌하지 않았다는 터(place of refuge)에 세워진 역사문화공원



은은한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작은 성당의 내부, 여정에 지친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Day 7(2/3). 바다에 소유권이 있는가? 모두를 품은 힐튼 와이콜로아 빌리지, 와이피오 협곡과 Mud lane

힐튼 와이콜로아 빌리지는 빅아일랜드 와이콜로아 해변에 위치한 대규모 리조트다. 특징적인 것은 투숙객뿐 아니라 일반 방문객 모두에게 대부분의 리조트 시설을 무료로 개방한다. 이는 리조트에 속한 바다, 하늘, 시설조차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라니 놀랍다. 심지어 리조트에 속한 유료주차장 외에 해변 접근성이 좋은 노른자 땅에 비투숙객을 위한 무료주차장까지 마련해 두었다. 리조트 내를 순환하는 트램과 보트도 모두 무료다. 리조트 내 돌고래 서식지와 환상적인 풀장, 라군 등을 오전 내내 여유 있게 둘러보았다.


리조트 바로 입구의 무료 주차장


와이피오 협곡 look out으로 가는 도중 빅아일랜드 지역 거의 유일한 드라이브 인 식당인 Tex drive-in에서 말라사다 도넛을 맛보았다. 하늘과 바다, 구름과 언덕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와이피오 협곡의 시원한 풍경을 정신없이 사진에 담았다. 내리막으로 바다까지 내려가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아쉬웠다. 귀갓길에 Mud lane을 드라이빙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현지인들만 안다는 Mud lane은 황토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아름드리나무로 둘러싸인 드라이빙 명소였다.

좌측으로 바다로 내려가는 trail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런 아름드리나무들이 좌우로 빽빽이 서 있는 머드레인 숲길, 진흙과는 아무 관계가 없단다


Day 8(2/4). 힐로, 아카카 폭포 & 마우나케아의 환상적 일몰과 별빛

빅아일랜드의 최대 도시는 코나(Kona)가 아니고 힐로(Hilo)다. 거리가 멀어 망설이다 후회할 것 같아 일정에 넣었다. 핸들을 잡은 지 한 시간 반 만에 힐로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코코넛 아일랜드에 도착, 시간 절약을 위해 준비해 둔 간식으로 허기를 면했다. 코나의 바다가 동해라면, 힐로의 바다는 서해 같다. 모래가 많은지 물이 탁해 보이나 파도는 잔잔했다. 바닷물이 발등으로 쏟아질 것 같이 가까운 Onomea bay lookout을 거쳐 Akaka fall trail을 걸었다. 30여분 정도 열대 우림을 걸으면 높이 135m로 하와이 최대 규모의 폭포를 만나게 된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빅아일랜드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마우나케아(Mauna Kea) 천문대로 향했다. 17시 전에는 도착해야 고도 적응을 마치고 구름 위 일몰 명소로 올라갈 수 있다. 가는 길 내내 비와 안개가 자욱해, 일몰은 틀렸구나 싶었다. 그런데 해발 2,800미터인 마우나케아 비지터센터에 접어들자 우측은 구름, 좌측은 햇살로 대기가 둘로 갈리는 믿기 힘든 풍광이 펼쳐진다. 비지터센터에서 천문대가 있는 4,207m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4륜구동차가 필요하다. 욕심이 났지만 아내의 건강을 고려해 기꺼이 포기했다. 2,800미터도 이미 구름 위인지라, 그위로 떨어지는 일몰, 그리고 황금빛 햇살에 물든 주변의 산군들을 바라보는 조망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다.


높은 산 정상에 오르면 정작 그 산은 안 보이는 법, 한 걸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봉우리가 진짜 조망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해가 지니 바로 쏟아지는 별무리들, 그동안 여기저기서 본 은하수 사진들은 대부분 마우나케아에서 찍은 것들이란다.


사방에 이렇게 거대한 봉우리들이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Day 9(2/5). 미국의 해남, 땅끝 사우스 포인트 클리프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 멋진 풍광으로 유명한 커피 농장, Doutor Mauka Meadow Coffee Farm을 찾았다. 멀리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농원은 한 시간여 산책 코스로 최고였다. 오후에는 빅아일랜드 최남단이라는 South point cliff에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아시는가? 빅아일랜드의 최남단은 바로 미국의 최남단이라는 사실을!



Doutor Mauka Meadow Coffee Farm에서 볼 수 있는 하늘과 바다
미국의 땅끝, South point cliff


Day 10(2/6). 낯선 천국에서 익숙한 동토로

하와이안 항공으로 코나에서 호놀룰루로, 연이어 인천행 국적기로, 비행시간만 12시간이 넘는 긴 여정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에 비친 와이키키 해변과 한파와 폭설로 뒤덮인 인천 주변의 산하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알로하~로 시작한 11일간의 대장정이 감사인사인 마할로로 마무리되었다.


온전치 못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정에 함께 해준 아내, 밀도 있는 빅아일랜드 여정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환대를 보여주신 Paul Jeong & Abigail 목사님 부부, 그리고 서울의대 동기회중 최강 단결력을 자랑하는 44회 동기회 웅희 회장님 이하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떠나는 항공기서 바라본 호놀룰루 주변 초록 바다


귀국 편 항공기 창밖의 인천공항과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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