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여행팁편 : 하와이(오아후, 빅아일랜드) 열흘간의 자유 여행기
"Travel is the only thing you buy that makes you richer."
여행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거의 유일한 소비다.
여행의 이유, 정당성
에리히 프롬의 책에서였나? 소유중심의 삶에서 존재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 물건을 소유하기 위한 소비가 아닌, 다양한 경험을 사는 소비에 돈을 아끼지 말라는... 무릎을 치며 읽고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의 합리화, 정당화를 위해 자주 꺼내다 쓰곤 한다.
하이브리드 여행일정
패키지와 자유여행의 장단점을 논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 여정은 두 가지가 적절히 섞여서 장점만 보면 최고의 일정이었다. 첫 5일은 동기회가 준비한 기본 일정에 약간의 선택이 가능한 일정이었고 후반부는 온전한 자유일정이었다. 도서관에서 하와이 여행 관련 책을 빌리고, 유튜브 몇 개를 보면서 일정을 짰다. 하지만, 정작 빅아일랜드 여정의 대부분은 현지 한인 목사님 부부의 도움으로 대폭 수정되었다. 할 수 있으면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서 현지인의 조언을 반영하는 것이 베스트라는 생각!
항공권, 호텔, 렌터카 예약의 교훈
하와이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미리 준비하면 저렴할 줄 알았다. 그래서 거의 1년 전에 여행 전문 사이트를 검색해 최저가로 예약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오면서 일정 변경이 필요해 하와이 내에서 이동하는 항공권을 재검색하니 기존 예약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Trip.com이라는 사이트에서 수하물 추가비용도 미리 지불했는데, 나중에 현장에서 check-in때 추가 비용을 내는 것이 더 저렴했다.
결론은 무조건 미리 하는 게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
호텔은 구굴맵에서 숙소 검색 후 적당한 가격대의 호텔을 예약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에서 최저가를 검색했다. 이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에어비엔비로 동선에 따라 다른 숙소를 예약하려고 알아보다가 매일 체크인-체크아웃하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서 포기했다.
유튜브를 보고 기존 공항 렌터카가 아닌 Turo라는 앱을 사용하여 차를 빌렸다. 한국에서 앱을 설치 후 일정을 검색하면 개인들이 자신의 차를 빌려주는 일종의 우버 비슷한 서비스다. 결과는 대만족! 비용도 업체보다 저렴한 옵션이 많고, 카운터에서 복잡한 서류 등을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앱에서 보험도 원하는 옵션을 넣어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delivery service가 가능하다는 점. 첫날 도착하면 대개 늦은 시간인지라 다음날 아침부터 차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호텔로 차를 가져다 달라고 할 수 있다. 동선이 맞으면 무료 delivery도 가능하다.
공항라운지 무료이용하기
연회비 비싼 프리미엄 카드가 없는지라 공항라운지 이용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이번엔 우리은행 위비트래블 카드라는 체크카드를 가족카드도 함께 만들어서 부부동반 라운지 입장에 성공했다. 연회비가 없고 해외결제 수수료 할인, 해외에서 ATM 수수료 면제 등 혜택도 좋지만, 발급 후 30만 원을 사용하면 전 세계 공항라운지 이용권을 연 2회 받을 수 있다.
최악의 물가, 최고의 날씨
하룻밤 호텔비가 최소 삼사십만 원인데 이게 다가 아니다. 수영장, Gym 등을 이용하지 않아도 매일 리조트 사용료, 주차료, 심지어 와이파이 사용료까지 추가로 받는 호텔이 대부분이다.
식비도 만만치 않아 버거에 감자칩, 우동 한 그릇도 3만 원은 기본. 비싼 우버나 택시비를 줄이려 다이아몬드 헤드행 교통편으로 알아본 트롤리 이용권이 하루 3만 원, 여기에 호텔 룸 클리닝 후 지불하는 팁도 최소 3-5불은 줘야 한다. 유명하다는 와이키키 비치도 실망스럽고.
'도대체 왜들 하와이하와이 하지?'
답은 날씨였다. 우리를 카우아이에 고립시킨 폭풍우를 빼면 그야말로 평균기온 24도 안팎의 습도도 없고 선선한 최고의 환경을 지녔다. 해질 무렵 해변 파라솔에서 맥주 한잔 손에 들고 앉아 있으면 더 이상 쾌적할 수 없다. 공항뿐 아니라 민간 주택도 지붕만 덮었을 뿐 벽이 숭숭 뚫린 곳들이 많다. '이리 허술할 수가..' 했는데, 비만 피하면 실내와 실외를 구별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와이에 온 후 인공눈물을 잊었다. 한국에선 심한 냉난방 때문에 늘 안구건조증에 시달렸는데, 하와이에서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었다. 수족냉증이 심해 오뉴월까지도 뜨거운 물병을 놓지 못하는 아내도 여기선 환자가 아니다. 신기하다. 사람은 바뀐 게 없는데 환경이 바뀌니 환자가 사라졌다.
천조국의 현실감각, 넉넉한 마네킹
오하우 1일 투어 중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에서의 한 시간 자유시간. '몸이 명품이면 아무거나 걸쳐도 명품'이라는 평소 철학대로 즐비한 명품숍들을 과감히 패스하고, Target이라는 한국 이마트 비슷한 상점에서 스노클링 장비 구경을 했다. 그.런.데. 마네킹들의 몸매가 심상치 않다. 심지어 임산부 마네킹도 눈에 띈다. 비현실적이고 이기적인 한국 마네킹들에 비해 얼마나 넉넉하고 현실적이고 인간적인가......^^
"Jobs fill your pockets, but adventures fill your soul."
– Jamie Lyn Beatty,
일은 주머니를 채우지만, 모험은 영혼을 채운다.
영혼을 채우는 모험, 희망의 사람들
가장 기대했던 일정인 카우아이 일일 투어가 폭우로 완전히 망가지던 날,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운도 없지.. 하필 오늘 폭우라니.. 곰탕 때문에 아무것도 못 보고.. 날씨요정은 어디서 뭐하누.. 우찌 이리도 재수가 없누.. 하와이까지 와서 공항노숙이라니...'
그런데, 그때마다 눈에 들어온 것은 힘든 내색 없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었다. 여행사에 항공사에 호텔에... 적은 가능성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유창한 영어로 최선을 다해 상황과 맞선 성혜샘, 관광팀 리더의 중책을 맡아 큰 부담을 짊어진 가운데서도 리후에 공항서 우연히 만난 동네 개원선배님의 딱한 사정까지 꼼꼼히 챙기는 규선원장, 그리고 고개가 숙여지는 상황마다 촌철살인의 긍정언어로 미소 짓게 만드는 임순원장 등 훌륭한 사람사람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흐뭇한 추억이 되었다.
팁, 아까와도 줘야 하는 이유
머리로는 "미쿡은 팁이 생활인 나라"라 외고 있어도 계산서마다 18%, 20%, 25%중 선택하는 일은 영 익숙지 않다. 결국 딱 한 번 에라.. 심정으로 노팁을 감행했다. 문제는 이게 주문 시 계산하고 음료를 기다리는 카페였다는 점이다. 식사 마치고 나갈 때 하는 결제였으면 죄책감?이 덜 했을 텐데, 노팁을 선언하고 음료를 기다리는데... '저 종업원이 커피에 뭔가 타면 어쩌지?' '한국사람을 자린고비로 욕하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었다. 이후 팁은 무조건 주는 쪽으로 자율학습이 되었다나.
몰입감이 좋아진 국적기, 프로이트의 라스트세션
기내 뒷좌석 모니터가 이렇게 선명했나? 몰입감이 훨씬 좋아졌다. 눈이 반짝 빛날 만큼 맛났던 비빔밥이 포함된 두 번의 기내식과 [프로이트의 라스트세션]이란 영화 한 편으로 11시간의 비행을 무난히 견뎠다. 젊은 날 무척 좋아했던 C.S. 루이스가 프로이트를 찾아가 나누는 대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는 한 편의 철학수업이었다. 대표적인 유신론자와 무신론자가 삶과 죽음, 자유의지와 악, 신과 인간, 종교와 과학에 대한 통찰을 나눈다. 믿고 보는 배우 엔소니 홉킨스는 프로이트가 빙의한 듯하다.
라디오로 2차 대전 뉴스속보를 듣다가 이어지는 BBC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즉시 꺼버리는 프로이트, 그런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싫단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혼자 남은 프로이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연주를 조심스럽게 음미한다. 이성과 논리의 대명사인 프로이트가 유신론자이자 기독교 작가인 루이스와의 대화 이후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인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환상이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라고 하더라도, 진리라는 비극을 택하기보다는 환상을 택하기로."
...... 이런 유의 생각들 사이를 넘나드는 현재의 나에게 프로이트의 변화는 정겹다.
* 하와이의 대표적인 인사말은 Aloha와 Mahalo다. Alo는 "존재하다, 얼굴을 마주하다"(to be in the presence of, face to face), Ha는 "생명의 숨, 영혼" (breath of life)이란 뜻이다. 결국, 알로하는 '생명의 숨결을 공유하는 것'이란 깊은 뜻이 있다. 흔히 Thank you의 의미로 사용되는 마할로 역시 범상치 않다. Ma는 "안에, 안쪽" (in, within), Hā는 "숨, 생명의 기운" (breath, life force), 그리고 Alo는 "존재, 얼굴을 마주하다" (presence, face to face)가 된다. 이 조합을 통해 Mahalo는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사, 생명력에 대한 존중'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