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 대리운전 그리고 측은지심
역시 가을이다.
나이 60이 되는 내 마음을 잠시라도 이렇게 돌려놓는 밤인 걸 보면...
늦가을의 신당동 골목, 허덕허덕 대리운행 마치고 걸어가는 새벽길에 이런 기억이 밟히다니...
11월의 어느 쌀쌀한 날, 신당동 L아파트에서 부천 가는 25,000짜리 오더를 잡았다. 청구역에서 부지런히 올라가도 족히 10분이 넘는 거리, 복잡하고 미로같은 지하2층 주차장을 찾아가 겨우 만났다.
배웅하는 손님이 "잘 부탁한다" 며 30,000 원을 손에 쥐어줬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운행길,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부부와 6세가량의 어린 사내아이가 함께 하는 길이었다. 청구역쪽 대로변으로 나오기 직전 갑자기 남자 손님이 차를 세우란다.
"대리운전 취소하니, 요금으로 받은 돈 30,000 원을 돌려주세요"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라 당황하여 몇마디 다툼이 오갔다. 옆에 있는 부인도 한마디 거든다.
"좋게 말할때 내놓고 가세요"
20분 정도 걷고 찾아가고 시간 낭비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완강히 "대리운전 요금으로 받은 돈을 무조건 내놓으라" 하였다.
돈을 빼앗으려는 손의 목적을 알고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망설였다. 욕심의 도를 넘는 악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낡은 아반떼를 끌고다니는 손이라...
하지만 아무리 살림이 구차하고 어려워도 이런 행위는 상식밖이다. 옥신각신 다투던 중 고개 숙이고 앉아 있는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힐끔 쳐다보던 해맑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더이상 싸울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미음이 변하여 가련하고 불쌍하기까지 여겨졌다.
운행을 포기하고 돌아서면서 나를 돌아 보았다. 내 모습은 그 아이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눈망울 또랑또랑한 어린아이의 눈동자가 오늘 다시 떠오른다. 잘 자라나야 할 터인데~
"어린아이 보는데 똑바로 사시요!" 하며 돌아섰던 그때 내 말이 내 마음을 찌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