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흔들리고, 엔화는 바빠졌다
2025년, 환율시장의 중심에는 다시 '달러'가 등장했다. 전과는 달리 영 시들시들한 모양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 금리 차이 그리고 탈달러화 조짐 그 와중에 날벼락 같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이라고 쓰고 테러라고 읽고 싶다), 대만 달러 급등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며 원-달러 환율 하락을 예견하는 분석들이 많이 보인다.
이러한 분석은 대체로 명확하고도 정중하다. 그러나 그 논리의 연장선 위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달러가 시들시들 하다면, 원-엔 환율은 어떻게 되는거지?
나는 '엔화는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달러가 약세가 된다 한들, 엔화가 함께 휘청거릴 이유는 없다. 오히려 현재 상황은 엔화 강세의 조건이 겹겹이 쌓여가는 모양새다. 이는 단순히 외환시장의 수치나 기술적 분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심리적, 그리고 지정학적 배경이 결합되어서 그렇다는 판단이다.
우선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쌀값은 작년에 비하여 두 배가 넘어가면서 일본 국민들이 한국의 쌀맛을 알아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쌀값 폭등에 따라 생필품 전반에 걸쳐 가격 상승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간 디플레이션의 고리를 끊지 못했던 일본 경제가 드디어 '물가 상승'이라는 전환점에 도달한 것이다.
일본은행(BOJ)은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수출 경쟁력을 지탱해왔지만, 이제는 그 정책이 일본 내부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물가 상승을 제어하지 않으면 내수 소비가 위축되고 실질 임금 하락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까지 겹칠 수 있다. 환율의 신이 와도 이거는 어떻게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손을 들 지경이다.
결국 BOJ는 금리 정상화라는 선택지를 외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관세는 세계 무역에, 짐작건대 몹시도 의도된 충격을 가하고 있다.
2025년 4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단행한 대규모 관세 조치는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드는 결정타였다.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에 미국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 일괄 10%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에는 최대 245%의 누적 관세를 부과하며 사실상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 특히 캄보디아산 태양광 패널에는 3,521%의 초고율 관세가 적용되었고, 겸사겸사 불쌍한 펭귄들마저 10% 관세를 부과 당해 버렸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무역장벽을 넘어서,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 자본 흐름에 극심한 충격을 주었다.
미국 내 물가는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고, 연준은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라는 이중의 압력 속에서 방향성을 잃고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와중에 꿋꿋하게 금리를 틀어쥐고 있다. 이 와중에 금리까지 내려가면 무슨 참변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리라 추측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시장 심리에 강하게 반영되며, 글로벌 자금은 안정적인 통화로 눈을 돌리게 될 수 밖에 없다. 금, 스위스프랑, 그리고 엔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실제로 금융위기 국면에서 엔화는 반복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국제자금의 피난처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셋째, 최근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일본 금 수출의 급증은 단순한 무역 현상이 아니다. 이는 일본 내 보유 자산이 '현금화'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아야 한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25050815331945314
과거에는 금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소비세를 피하기 위한 밀수가 성행했고, 시중의 금은 보관 목적으로 축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다. 금이 일본을 떠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해외로 재배치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이며, 금과 함께 따라 나가는 것은 엔화로 표시된 자산일 것이다.
즉, 글로벌 투자자들이 엔화의 미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한일 간의 금리차가 여전히 크다.
일본의 기준금리는 0.25% 수준, 한국은 2.75% 내외다. 이로 인해 원화 대비 엔화의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시야를 좀 더 넓게 확장시켜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한국은행은 내수 침체와 물가 안정 기조 속에서 금리 인하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일본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이 변화가 현실화된다면, 지금의 금리 차이는 빠르게 축소되거나, 심지어 역전 현상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원-엔 환율에 구조적인 변화 압력을 가할 수 밖에 없다.
이제 각각의 단서들이 모여 구체적인 논증을 형성한다.
원-달러 환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이며, 원-엔 환율 역시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성격은 다르다. 전자는 '달러의 약세', 후자는 '엔화의 강세'다.
방향은 같지만 추진력의 성격이 다르다. 이 차이에서 발생하는 사실이 투자에 유의미한 격차를 발생시킬 것이다. 실제로 이 차이를 간과한 투자 전략은 환위험 회피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환율의 수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움직이는 '원심력'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외환시장은 단순한 금리차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리스크, 글로벌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한) 자산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전지구적 심리의 다툼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단지 기술적 분석만으로는 이 흐름을 설명할 수 없다.
정치와 금융, 실물경제와 통화정책이 서로 얽히고설킨 복잡계로서의 투자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시장은 이성보다 심리가, 데이터보다 서사가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이것을 보는 눈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현재 달러는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달러에서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흔들리는 달러의 대안 중 하나로, 엔화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