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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몬트 Oct 30. 2023

다시 도마를 꺼낼 때

    2인 가정을 위한 요리다운 요리를 시작한 지 곧 3년을 가득 채우게 된다. 자취하던 총각시절 만들었던 “것”들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요리라 할 순 없고 재료를 익혔다거나 잘 섞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게 되는 고체들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2020년 가을에 결혼을 하고 맞벌이를 하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와 우리를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 유튜브나 블로그들을 보고 반찬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품요리라 할 수 있을 법한 것들까지, 평일의 저녁과 주말의 끼니들을 번갈아 가며 서툴지만 열심히 차려왔다.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배달은 한 달에 한 번 정도였으니, 회사 앞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며 배달민족을 자처하던 내가 보면 너 누구냐, 할 판이다.



    나는 아내보다 더 마트를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는 내가 마트에 가자고 하면 “놀이터 가고 싶구나?”라고 한다. 실제로 나에겐 소비와 영감의 놀이터이다. MBTI상 계획적인 J형 인간답게 미리 살 품목을 핸드폰에 메모해 가긴 하지만, 신선한 제철재료나 못 보던 식료품이 보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꼭 사는 편이다. “오늘 저녁에 만들 봉골레 파스타에 그냥 조개도 나쁘진 않지만… 제철 모시조개라는데 이게 또 들어가 줘야지!” 이런 식으로. 내가 아내보다 더 마트 방문을 즐기는 것은 만드는 요리의 취향 차이 때문인 듯하다. 내가 파스타나 낙지볶음, 돈가스 김치전골 같은 일체형 요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아내는 반찬 위주의 요리를 즐겨해서 그렇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인데, 내가 재료들로 냉장고를 채우는 역할이라면 아내는 주로 냉장고를 “터는” 역할로 알뜰한 살림꾼이라 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사놓은 재료 때문에 아내가 울며 겨자 먹기로 반찬들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던 우리 부부(사실 내 쪽에 더 가깝긴 하지만)의 소소한 재미가 몇 개월째 중지 상태이다. 직업상 사유로 아내가 해외에 파견되면서 우리는 장거리 커플이 되었고, 나는 총각 때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끼니를 외부에서 때우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최근 모 금융앱에서는 나의 소비태그로 “버거왕”을 줬다. 그래도 아예 요리를 손 놓긴 그래서 주말에 한두 끼는 웍이나 도마를 꺼내들 긴 하지만, 2020년 겨울에 시작했던 요리 레시피 블로그에 올릴만한 요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2인 요리를 주로 하다가 1인용을 만들다 보니 재료도 다 쓰지 못하는 경우에 “놀이터” 방문 빈도도 줄어들고 새로운 요리에 대한 영감도 거의 사라진 요즘이다. 



    나는 왜 요리를 좋아할까. 해봤더니 그나마 잘하는 편이고 만든 것을 먹어보니 맛있어서? 물론 먹는 기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요리가 집 밖에도 널렸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요즘은 왜 요리를 즐겨하지 않을까. 해 줄 사람이 없다! 이 결론이 내려지고 이 글을 아내에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가끔 나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냉장고를 뒤지긴 하지만, 아무래도 스스로 만을 위해 상을 차리면 힘이 빠진다. 요리를 해 나눠 먹을 사람이 생겨서 요리를 시작했고, 지금은 잠시 그럴 사람이 없어 요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던 것은 만들어진 음식을 함께 먹고, 맛과 좋은 감정을 공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행복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러고 보면 요리는 일종의 헌정이다. 서늘한 가을이 지나고 날씨가 꽤 추워질 때 즈음 다시 돌아올 아내를 위해 다시 도마도 마른 햇볕에 깨끗이 말려 놓고, 내가 좋아하는 마트에 가서 영감을 채워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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