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이야기
⌜박수철님 외래가 예약되었습니다.⌟
사망한 환자의 이름이 외래 예약 시트에 떴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직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다.
잡아도 잡아도 잡히지 않던 피, 심장압박을 그만하자고 설득하던 나의 목소리, 그리고 싸늘하게 식은 아버지의 몸을 더듬으며 울부짖던 유족들. 유족의 외래 방문은 서류 발급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수술실에 CCTV를 달자는 흉흉한 세상이기에 나도 모르게 조금은 움츠러들었다. '복구할 수 없는 손상'. 짤막한 문구로 요약되어있는 차트를 다시 열어보며 책잡힐 만한 부분은 없었는지 복기해보았다. 모든 정황으로 봤을 때 그것은 최선의 치료였다. 나는 마지막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잃었다. 그날은 나에게도 사무치게 아픈 날이었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 보호자 한 명이 들어왔다. 치료과정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등장은 의사에게 나쁜 예후를 뜻한다. 직접 얼굴을 보며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라뽀(환자-의사 신뢰관계)를 쌓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연락도 없다가 뒤늦게 잿밥에만 관심을 보이며 나타나 의사에게 과실을 따져 묻는 보호자도 더러 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고인의 아들로 소개한 보호자는 별안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이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지 못한 전개에 나도 모르게 함께 벌떡 일어나 오열하는 보호자의 어깨를 다독였다. 하룻밤에 어이없는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리고 그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는데. 게다가 눈앞에 있는 주치의는 그런 아버지를 살려내지도 못했는데. 나한테 대체 뭐가 고맙다는 말인가.
"저한테 뭐가 고맙다고 그러세요... 살려드리지 못해 제가 죄송합니다."
"그게, 저희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그래서 감사합니다."
지금의 외상센터가 있기 전까지는 수많은 중증외상 환자들이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소위 말하는 거물급 병원들은 비 외상 환자들을 보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구급대들은 어느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 할지 몰랐다. 골든아워 안에 치료를 받으면 살 수도 있었던 산업재해와 불의의 사고 피해자들은 그렇게 시스템의 부재 속에 구급차 안에서, 혹은 응급실 대기 라인에서 손도 못써본 채 운명했다. 로드킬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2014년도 이후 15 개소의 권역외상센터가 전국에 설립되어 운영 중이다. 외상센터는 나자로의 기적을 행하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의 중증외상 환자들에게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라는 가슴 시린 고백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부상당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임무는 그 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죄책감과 공허함의 바다에 던져질 그들을 위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치료에 임하는 것, 그리고 아주 약간의 온기라도 남아있을 때 고인과 작별인사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내 손을 거친 환자들의 삶의 끝자락에서 내가 지키고자 하는 두 가지 철칙이다.
가끔은 신의 존재를 의심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신과 그의 천국이 꼭 필요하다. 현생에서 고통 속에 아스러져 간 영혼들은 그곳에서라도 안식을 얻어야만 한다. 오늘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의 쓰임을 다 하고 있는지 성찰해본다. 먼 훗날 그곳으로 초대받아 그들과 다시 조우했을 때 그동안 고생했노라고, 작은 위로와 다독임 한 조각을 돌려받는 그날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