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I가 강할 수 밖에 없는 이유 3가지
'팬텀(Phantom)'의 출시와 함께 화려한 비상을 시작한 DJI.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요. 내부에서 분쟁이 일어납니다. '트러블 메이커'들은 다름아닌 프랭크 왕(Frank Wang)과 콜린 귄(Colin Guinn)이었는데요. 한때 동지였던 두 사람이 틀어지게 된 것은 파워 게임 때문이었습니다.
북미 지역 영업에 지대한 역할을 한 귄은 회사 내에서 자신의 발언권이 더 강해지길 원했습니다. 스스로를 'DJI 혁신 최고경영자(CEO of DJI Innovations)'라고 칭하기도 했죠. 창업주이자 절대권력자인 왕 입장에서는 귄의 행동이 달가울 리 없었습니다. 결국 2013년 5월, 왕이 DJI 북미 지사의 주식 인수를 시도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됩니다.
법정 다툼까지 벌인 결과 결국 귄은 DJI를 떠나고, 왕은 1인자의 위치를 공고히 합니다. 재밌는 것은 귄이 DJI의 경쟁사 중 하나인 3D로보틱스(3DRobotics)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인데요. DJI라면 이를 갈고 있을 귄이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시장 점유율 격자를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팬텀 출시 후 9개월 만인 2013년 10월, DJI는 '팬텀2 비전(Vision)'을 출시합니다. 이 제품은 DJI의 야심을 은근히 드러낸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는데요.
'드론은 액션캠을 날리기 위한 도구'라는 고정관념을 탈피,
자체 카메라를 부착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DJI의 야심이란, 단순 비행체로서의 드론을 넘어 영상 촬영의 모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프로(GoPro)와의 관계 단절이죠.(고프로란?)
원래 DJI와 고프로는 협업 아닌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늘을 사면 실이 필요하듯, 팬텀과 고프로 액션캠의 궁합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죠. 고프로 액션캠 보유자 입장에서는 항공 촬영을 가능하게 하는 팬텀이 매력적인 제품이었고, 팬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호환이 잘 되는 고프로 액션캠을 탐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3년 12월, DJI는 고프로 액션캠에 맞춘 '팬텀2'를 내놓아 잠시 숨을 돌리는데요. 겨우 4개월 뒤인 2014년 4월 '팬텀2 비전플러스(Vision Plus)'를 출시하면서 '고프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립니다. 고화질 카메라, 3축 짐벌, FPV 등 항공촬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혁신적인 제품이었죠.
다른 제품은 일절 필요없이
'한 대면 다 되는' 항공촬영 플랫폼의 등장이었습니다.
2014년은 DJI에게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한 해였는데요. 전문가용 제품군이라고 볼 수 있는 핸드헬드 짐벌(Handheld Gimbal) '로닌(Ronin)'과 드론 '인스파이어1(Inspire 1)'을 잇따라 출시합니다. 드론을 취미로 하는 소비자와 촬영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를 동시에 공략하는 일종의 '투 트랙(Two Track)' 전략이 완성되죠. 이 해 DJI는 매출액 5천억원을 돌파, 패럿(Parrot, 1300억원)과 3D로보틱스(500억원)를 크게 앞서며 드론 시장의 지배자로 우뚝 섭니다.
2015년에도 DJI는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행보를 이어갑니다. 팬텀2 비전플러스보다 훨씬 강력한 기능으로 무장한 촬영용 드론인 팬텀3 삼총사(어드밴스드, 프로페셔널, 스탠다드)와 로닌의 취미 버전이랄 수 있는 '오즈모(Osmo)'를 잇따라 내놓더니, 11월에는 농업용 드론인 'MG-1' 출시를 선언합니다. 칭기즈칸이 떠오를 정도로 무지막지한 진격 속도인데요. 매출액은 기어이 1조원을 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상식 밖의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DJI. 그 성공 비결은 과연 뭘까요?
기술력을 빼놓고 DJI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팬텀의 성공 이후 촬영용 드론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지만, DJI 제품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죠. 특히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FC(Flight Controller)의 수준 차는 꽤 큽니다. FC의 차이는 바로 비행안정성의 격차와 직결되죠. 항공촬영에서 비행안정성은 촬영 결과물의 완성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카메라나 비행 가능 시간 등의 스펙이 비슷해도 소비자들이 DJI 제품을 더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죠.
드론스타팅에서 문태현 DJI코리아 법인장을 인터뷰했을 때, 문 법인장은 “항공촬영에 대한 니즈는 DJI가 창조하는 게 아니고 소비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 보러 가기)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은 모든 사업의 기본이지만, DJI가 니즈에 반응하는 속도와 행동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완제품 드론에 대한 니즈를 발견하자마자 팬텀을 만들고, 올인원(All-in-one) 촬영 플랫폼의 필요성을 느끼자마자 팬텀2 비전플러스를 내놓았습니다. 취미용 핸드헬드 짐벌 오즈모도 마찬가지고요. 기업의 규모에 비해 의사결정이 상당히 빠르게 이뤄집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나오는 드론 시장의 특성 상, 속도전에 능하다는 것은 큰 강점이죠.
팬텀은 여러모로 혁신적인 제품이었지만, 사람들이 가장 놀란 부분은 역시 가격이었습니다. 팬텀과 비슷한 스펙의 부품을 주문해서 직접 조립하는 것보다도 저렴했으니까요. 물론 DJI의 원가 절감 노력을 비하해서는 안 되겠지만, DJI가 중국 기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를 보여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홍세화 바이로봇 이사는 드론스타팅과의 인터뷰에서 “저희가 부품 1000개 주문할 때 중국에서는 100만 개 주문한다”고 말했습니다. 농담 섞인 표현이었지만 그만큼 내수 시장이 크고,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얘기죠. (인터뷰 전문 보러 가기) 기본적인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기업이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DJI의 위상은 여전합니다. 굵직한 상품만 열거해도 '인스파이어1 블랙 에디션(Black Edition)', '팬텀3 4K', '팬텀4', '매트리스 600(Matrice 600)', '로닌-MX' 등을 출시했는데요. 반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생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본사가 있는 중국 선전(Shenzhen, 深川)과 우리나라 홍대입구에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를 열며 세를 과시하게도 했죠.
다만 예전 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다수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DJI의 대항마로 언급되는 기업에는 유닉(Yuneec), 이항(Ehang), 샤오미(Xiaomi) 등이 있습니다. 모두 중국을 기반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가성비 면에서 DJI와 충분히 겨뤄볼 만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DJI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죠.
올 4월 시작된 DJI와 유닉의 법정 다툼은 그래서 주목됩니다.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DJI가 유닉을 고소한 것인데요. 인텔로부터 700억원을 투자받으며 기세를 올리고 있던 유닉에게 DJI가 한 방 먹인 셈입니다. DJI는 이번 소송전에 대해 “노력의 성과를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는데요. 장래의 위험요소를 막기 위한 견제 심리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14년 말,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프랭크 왕은 “향후 5~10년은 드론 시장에 있어 매우 짜릿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완벽주의자인 왕이 허투루 말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왕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10년 동안의 계획이 과연 무엇일지, 그리고 DJI가 만들어 갈 미래의 모습은 어떨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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