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를 사수하는 '르완다'의 혈액 배송 서비스
중앙아프리카 지역은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종족 사이에 분쟁이 시작된 곳이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가 모두 심한 내전을 겪었다. 이 가운데 특히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나라 르완다(Rwanda)는 1919년 벨기에의 통치가 시작되자 극심한 종족 간 갈등에 휘말렸다.
비옥한 대지,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인구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살던 시대의 평화는 과거로 사라졌다. 1962년 독립과 함께 85%를 차지하는 다수의 후투족, 15% 이하인 소수 투치족 간의 분쟁이 격화됐다. 1994년 후투족인 르완다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미사일에 격추되자 후투족 강경파들이 투치족 학살에 나섰다. 무려 100만 명이 죽고, 200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1994년 '르완다 내전'이 가져온 이 끔찍한 대학살(Rwanda genocide)은 아프리카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분쟁의 기록 가운데 하나로 영원히 남았고, 사람들은 지워지지 않을 어두운 기억을 남겼다. 게다가 1994년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적황록 삼색 중앙에 검은색 'R'을 추가한 르완다 국기를 보면서 르완다 대학살을 함께 떠올리게 됐다.
국기와 잔혹성을 하나로 묶는 이 원하지 않은 고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르완다는 2001년, 청황록의 비대칭 삼색기에 황색 태양을 우측 상단에 그린 현재의 형태로 국기를 바꿨다. '혁명(Revolution)에 의해 탄생해 국민투표(Referendum)에 의해 공화국(Republique)이 됐다.'는 의미를 담은 1962년 국기의 'R'은 빛이 바랬다.
르완다 정부는 2016년 10월, 집라인(Zipline)과 함께 드론을 통한 응급혈액 및 약품 수송 서비스를 개시했다. 샌프란시스코 드론 배달서비스 분야의 스타트업 집라인이 아마존, DHL보다 한발 앞서 아프리카 중앙 상공에 최초로 의약품 배송 드론을 띄운 것이다. 집라인이 르완다 정부와 협약을 맺은 것은 2015년이었다. 드론 규제의 대폭적인 완화 및 법규 신설 등 르완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년여 준비기간을 거쳐 2016년 10월 첫 드론 의료품 배송 비행을 시작했다.
집라인은 르완다 시요그웨(Shyogwe) 지역에 드론 포트(Drone port)를 설치하고 15대의 드론을 활용해 오지에 의료 장비, 구급약, 수혈용 피 등을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이전에는 앰뷸런스로 수송해도 4시간 걸리는 거리였으나, 드론을 활용하면서 15분에서 45분 사이로 단축됐다.
물론 집라인에서 만든 '집스(Zips)'로 불리는 의료품 배송 드론은 사람이 조종하지 않고 자동으로 움직인다. 회전익이 아닌 고정익 형태의 드론이다. 회사 이름과 같은 이 드론은 다양한 상황에서 배송에 특화됐다. 드론 내부에 SIM 카드가 들어 있고, 정해진 의료기관 사이를 움직이다. 고정익인 경우 수직 이착륙이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맞다. 그래서 이 드론은 전달할 물건에 낙하산을 매달아 일정 위치에서 투하하고 다시 기지로 복귀한다.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이미 사용되던, 검증된 방법이다.
배달이 가능한 물품은 3.5파운드(약 1.6kg) 정도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의약품은 의외로 무겁지 않다. 오히려 안전한 수송을 위해 포장이 커질 뿐이다. 대신 시간당 180마일(약 470km) 정도를 날아갈 수 있다. 도로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이라면 당분간 이보다 더 효율적인 이동 수단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드론은 현재 미국 네바다주에서 활용을 위해 미 연방항공국(FA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르완다는 '천개의 언덕의 나라'로 불릴 만큼 구릉 지대가 많고 도로 사정도 열악한 편이다. 따라서 차량으로 의료품 응급 수송할 때 많은 시간이 소요돼 응급 상황에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황금 같이 귀중한 시간, 즉 골든아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집스(Zips)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 기나긴 시간이 소요되던 의약품 배달 문제를 해결해 수송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 불과 몇 분으로 줄어든 경우도 적지 않다.
Zips는 집라인이 만든 자율적 고정익 드론으로, 단순히 긴급 의약품과 혈액을 운반하는 기체 이상의 일을 해내고 있다. 중앙유통센터에서 전국의 병원으로 혈액제제를 수송하는, 르완다 의료 공급 인프라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집라인은 2018년 들어 훨씬 더 큰 나라인 탄자니아를 포함한 동부 아프리카로 사업장을 확장하는 중이다.
집라인은 르완다 무항가(Muhanga) 물류센터 반경 75km 이내의 21개 병원에 혈액을 전달한다.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이 왓스앱 메신저(WhatsApp Messenger)로 요청한 긴급 의약품과 혈액을 고정익 드론에 싣고, GPS 네비게이션을 사용해 르완다 항공 교통 관제에 따라 목표물로 향한다. 주문을 접수한 지 1시간 이내로 목적지에 도착한 드론은 낙하산을 장착한 컨테이너에 담긴 혈액 팩을 떨어뜨린다. 배송을 마친 드론은 출발지에 마련된 부드러운 매트 위에 착륙해 배터리를 교환한 후 다음 배송을 준비한다.
집라인은 르완다 뿐 아니라 탄자니아에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르완다 전체에서 사용하는 혈액의 20%가 넘는 양을 정확한 시간에 공급한 덕분에 르완다에서는 버려지는 혈액이 없게 됐다. 르완다에서 드론을 활용한 의료장비 수송 서비스가 시행된 이후 1400회 이상(약 6억 달러 규모)의 비행 수송이 이루어졌다. 수송품의 25%가 응급환자를 위한 수혈용 혈액이었다.
집라인의 시스템은 르완다가 마주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그동안 각 병원은 어떤 종류의 혈액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그 결과 일부 병원은 꼭 필요한 혈액은 공급받지 못하고, 확보한 혈액을 미처 사용하기도 전에 폐기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집라인 CEO 켈러 리나우도(Keller Rinaudo)는 드론을 활용해 중앙 센터의 혈액을 즉시 분배하는 방식이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이 시스템은 또한 응급 상황에서도 도움이 된다. 켈러 리나우도는 병원에서 출산한 24세 여성에게 일어난 일을 사례로 들었다. 그녀는 출산 후 합병증이 생겼고, 심하게 출혈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즉시 그녀에게 두 팩의 피를 수혈했다. 그러나 그녀는 10분 만에 다시 피를 흘렸다. 그녀는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녀의 혈액형에 맞는 혈액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집라인에 긴급 요청을 했다. 1.5kg의 페이로드를 탑재하고 각 12킬로그램인 드론 Zips가 적혈구 7개 단위, 혈장 2개, 혈소판 2개를 배송했다. 그녀에게 수혈된 그 모든 것은 평소 우리 몸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혈액이었다. 그녀는 그때서야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집라인의 드론은 야간, 폭우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 속에서도 비행을 할 수 있다. 집라인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적재물을 싣고, 더 멀리 배달 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드론을 2018년 4월에 개발했다. 집라인이 만든 이 2세대 드론의 무게는 약 20kg이다. 의약품 1.8kg까지 싣고 날 수 있다.
켈러 리나우도는 '기술은 쉬운 부분이다(the technology is the easy part)'고 자신하고 있다. 오히려 그에게 더 어려운 일은 모든 규제 문제를 해결하고, 현지 팀을 찾고, 배급 센터를 운영하고,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서비스를 전파하고, 큰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가는 드론을 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술이 르완다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르완다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집라인의 파트너들은 Zips 드론이 기체 수명을 다할 때까지 대략 8명 가량의 생명을 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로봇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부자들에 의해, 또 부자들을 위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대적인 규제개혁과 기꺼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 더 많은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르완다는 뛰어난 품질을 지닌 커피 산지로 유명하다. 아라비카 품종을 100% 재배해 주로 독일, 일본 등 선진국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특히 스타벅스에서 르완다 커피를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으로는 현재 전 세계에 880마리 정도밖에 없는 마운틴고릴라 중 300마리 정도가 르완다에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이용해 야생 고릴라 투어가이드, 고릴라를 볼 수 있는 트래킹, 사파리 등 자연 환경을 살린 관광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제 르완다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변화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정확히 말하자면 드론과 관련한 것이다.
르완다는 많은 다른 나라들이 그 뒤를 따르기를 원하는 놀라운 성공을 보여 주었다. 현재 르완다의 드론 배송 서비스는 혈액 배송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세계적인 물류 운송업체인 UPS,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그리고 집라인(Zipline)과의 국제적 파트너십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다양한 주요 의약품 및 백신도 포함할 계획이다. 르완다에서 집라인이 해결하고 있는 문제는 르완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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