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의 차이를 명확하게 가르고 간략히 구분 지을 만한 유용한 질문법이 하나 있다. "영상의 바탕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져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답변으로는 "VR은 100% 새롭게 만들어낸 영상 공간이고, AR은 현실세계에 컴퓨터그래픽 등의 정보를 입힌다"는 설명을 준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테면 네비게이션 시스템에서 가상의 지도(Virtual)에 주행 정보를 보여주면 VR이고, 실제 도로 장면(Reality)에 주행 정보를 추가하여 보여주면 AR이 된다. 그런데 이들 두 기술의 발전 과정을 몇 줄로 압축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로, 제법 까다로운 축에 속한다. 기왕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이 대체로 정보 제공자의 자의에 따라 정리되거나 약술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VR 산업의 미래 가능성까지 예측하려는 시도는 아직은 차라리 유보하는 편이 더 바람직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VR 시장은 지난 50년 동안 '엄청나게' 떴다가 '급격하게' 침몰하기를 두 차례나 반복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VR 열풍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 아직도 '반신(半信)'과 '반의(半疑)'의 양면을 거느리며 진행되고 있는 까닭 또한 그러한 경험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VR은 언제 나타났고, 얼마나 발전했고, 미래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VR은 AR보다 먼저 역사에 등장했다. 이 용어와 처음 만나자면 무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 100여 년 전에 VR이 나타났다고? 놀랍지만, 그렇다! VR 개념은 21세기의 산물이 아니다. 그 점이 더 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주더라도 AR에 앞서 VR이 먼저 나타난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VR 개념은 흔히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1833년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 세계 최초로 입체 도면을 만들었다. 이어 1852년에는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는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가 등장했다. 19세기에 이미 영화관에서 3D 영화를 볼 수 있는 3D 입체 안경이 나타난 셈이다. 스테레오스코프는 2개의 화면을 이용해 입체감 있는 시각상을 만드는 장치였다. 요즘의 VR HMD 역시 2개의 상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를 오늘날 3D 디스플레이 기술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VR의 기초라 불리는 입체영상기술의 시작이었다.
이후 1920년대까지 수백만 장에 이르는 스테레오 사진(stereo photography)이 생산되고, 다양한 스테레오 카메라와 입체경이 발매됐다. 스테레오 사진은 좌우 5~7cm 간격으로 동시에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두 개의 확대 렌즈가 달린 입체경으로 보면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시각상을 얻는다.
1930년대(1930s)
1932년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SF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도 역시 촉감을 통한 가상현실에 가까운 개념이 짧게나마 언급된다. 하지만 단순히 시각적 몰입감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오감을 자극하는 가상현실에 대한 상세한 개념은 1935년 스탠리 G. 웨인바움(Stanley G. Weinbaum)이 발표한 SF소설 <피그말리온의 안경(Pygmalion's Spectacles)>에 처음 등장한다. 이 소설은 홀로그램 기술과 촉각, 후각에 대한 가상 경험을 묘사해 현재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VR 개념을 보여주었다.
1931년 에드워드 링크 (Edward Link)가 만든 링크 트레이너(The Link Trainer)는 전기와 태엽을 이용한 최초의 상용 비행 시뮬레이터였다. 당시 미군이 3500달러, 현재 가치로 따지면 5만 달러 상당 금액을 주고 6대를 구입해 항공기 난기류 및 기타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해가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조종사를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었다. 전적으로 전자기계식이었던 이 트레이너는 50만 명이 넘는 미국 조종사를 훈련하는 비행 시뮬레이터로 사용됐는데, 일련의 펌프, 밸브 및 벨로우즈를 사용해 조종사의 조종에 대응함으로써 비행 계기에 대한 정확한 판독 값을 산출했다.
1940년대(1940s)
1939∼1940년 소여(Sawyer)사가 뉴욕 월드페어에서 선보인 뷰마스터(Sawyer's View-Master)는 전체를 합성수지로 만든 제품으로, 쌍안경을 들여다보듯 콘텐츠에 해당하는 릴(Reel) 타입 필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른을 위한 교육용 장치로 나왔으나 나중에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인기를 끌었고 전 세계적으로 기기는 100만 개, 릴은 1억 5000만 개나 팔렸다.
1960년대(1960s)
첫 번째 VR 디바이스는 1962년 '센소라마(Sensorama)'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할리우드 영화 촬영기사인 모튼 하일리그(Morton Heilig)이 개발한 이 제품은 케이스가 얼굴을 덮어 입체 영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테레오 스피커에 청각 심지어 냄새로 코를 자극해 당시로서는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했다.
센소라마의 메인 콘텐츠는 '뉴욕 브루클린을 오토바이로 달리는 체험'이었다. 이 기계를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은 예외 없이 입체영상뿐만 아니라 음향, 진동, 냄새까지 모방해 냈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 최초의 3D 영화관이라 할 수 있는 이 장치는 양 눈에 서로 다른 영상을 비춰 입체 영상을 느끼게 만들었으나, 다만 성인용 콘텐츠만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모튼 하일리그가 1960년에 특허를 얻은 '텔레스피어 마스크(Telesphere Mask)'는 지금의 가상현실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VR HMD)의 원조 격으로, 처음으로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에 입체 음향을 곁들인 제품이었다. 1966년에는 워싱턴대학 교수인 토마스(Thomas)가 제작에 참여한 공군 조종사를 위한 훈련 장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가 등장한다.
세계 최초의 VR 기술은 1968년 미국 유타 대학의 이반 서덜랜드(Ivan Edward Sutherland)가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최초의 HMD 시스템은 사용하기에 너무 무거워 천장에 고정됐으며 선으로 표현된 3차원의 영상으로 가상공간을 생성했다.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년 뒤인 1969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아폴로 계획을 진행하면서부터였다. 승무원들을 훈련시킬 컴퓨터 상호작용 반응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가상현실(Virtual Reality)'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이보다 더 늦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1970년대(1970s)
1970년대에는 더 많은 응용 장치가 개발돼 사용자가 보다 편안하게, 보다 다양한 경관과 상황을 체험할 수 있게 됐다. 1977년 MIT에서 만든 아스펜 무비 맵 (Aspen Movie Map)은 초기 가상현실 시스템 중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사용자가 콜로라도주의 아스펜 거리를 가상여행을 떠나 산책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현실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구글 스트리트뷰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아스펜 무비 맵이 선구자 격이었다. 자동차 천장에 위치한 카메라로 거리를 촬영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처럼 시각을 이용한 가상현실로는, 1991년 일리노이 대학의 토마스 데판티 (Thomas DeFanti) 등에 의해 제안된 CAVE(en:Cave Automatic Virtual Environment, 몰입형의 투영 디스플레이)가 유명하다.
1980년대(1980s)
가상현실이 인기를 끌면서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가 속속 이뤄졌다. 뛰어난 활약을 보인 제이런 래니어(Jaron Lanier)과 같은 기술자가 출현해 최초로 가상현실이란 용어를 만들고 대중화시켰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엔지니어들은 VR 헤드셋의 여러 변형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제이런 래니어가 1985년 설립한 VPL 리서치(VPL Research)에서 수많은 VR 액세서리를 개발하면서부터였다.
이 회사는 가상현실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한 최초의 회사 가운데 하나로 스마트폰이 아니라 글러브와 연동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고글에 비춰주는 VPL아이폰(VPL Eyephone)을 개발해 제품으로 9400달러에 판매했다. 1987년 사용자의 손의 움직임을 VR에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 글로브(DataGlove)'를, 1989년 '사이버페이스(Cyberface)'란 이름의 VR헤드셋을 내놓았으며, VR 고글과 장갑을 최초로 판매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1990년대(1990s)
1989년 일본의 영 매거진에 연재되기 시작한 시로우 마사무네(Shirow Masamune)의 만화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의 등장과 함께 이후 1990년대에 가상현실 기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욱 커지면서 <토탈 리콜(Total Recall, 1990)>, <매트릭스((The Matrix, 1999)>처럼 대중문화에서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VR은 또한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게임 콘텐츠에 접목되기 시작한다. 1991년 게임 제작사 세가(SEGA)는 미국 시장에 '세가VR'이라는 최초의 '게임용 VR헤드셋' 장치를 선보인다. 세가VR의 게임 화면은 현재의 게임 그래픽과 비교할 바 아니지만 오큘러스리프트 VR헤드셋처럼 사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게임 조작에 반영할 수 있었다. 이용 가격대를 낮추려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1995년 닌텐도(Nintendo)가 만든 VR 휴대용 게임기 '버추얼 보이(Virtual Boy)'가 그 대표적인 산물이었다. 비디오 게임업계에선 처음으로 나온 VR 기기였고, 별도 장치를 머리에 쓰지 않아도 되는 콘솔형 디자인을 갖췄으며, 대당 가격도 180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고작 77만 대 가량만 팔리는 등 환영 받지 못하다가 급기야 1년 후 생산을 중단했다.
2000년대 초반 들어서는 한동안 VR 기술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가 구글, 삼성,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두 자체 VR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사용자가 몰입하고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온 버추얼리티 게이밍 머신(Virtuality Gaming Machine)은 헤드셋과 컨트롤러를 들고 포드 위에 서서 게임을 즐기는 덩치 큰 머신으로 대당 가격은 7만 8000달러였다. 그 뒤를 이어 키넥트(마이크로소프트, 2010), 아이폰용 VR 뷰어(애플, 2011), 오큘러스 리프트(오큘러스, 2012), VR 모션 컨트롤러(태티컬 햅틱스, 2013), 구글 카드보드(구글, 2014), 기어 VR(삼성전자, 2015), 플레이스테이션 VR(소니, 2016)이 발표됐다. 유비소프트(Ubisoft), 일렉트로닉 아트(Electronic Arts) 등 유명 컴퓨터 게임 회사도 VR 기술을 활용한 컴퓨터 게임 개발에 착수했다. 이처럼 가상현실 기술에 대한 대중의 수요 및 관심이 다시 증폭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서브컬쳐 문화의 발전에 따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07년 등장한 '크라이시스(CRYSIS)'가 게임 그래픽의 판도를 뒤바꾸면서, 이를 필두로 3D 게임 그래픽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게이머들은 드디어 기술이 현실을 뛰어넘었음을 깨달았다. 대중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다루어진 '닷핵(.hack)'이나 '소드 아트 온라인(sword art online)'과 같은 VR게임에 대한 서브컬쳐계의 수요 등이 VR 시장 수요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21세기 들어 잇따라 발표된 소비자용 VR 주변기기들을 현실적인 가격대로 구매할 수 있게 된 환경이 갖추어진 점이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셈이다.
VR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는 3차원 공간성, 실시간 상호작용, 그리고 몰입성이다. 이들 각 요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 네트워크 통신 기술, 그리고 HMD 등 오감을 자극하는 다수의 입출력 장치들이 필요하다.
1980년대 초 소위 '아타리 쇼크(Atari shock)'를 전후해 가상현실 관련 제품의 인기는 갑자기 추락했다. 아타리 쇼크는 미국 게임 전문 기업인 아타리 제품을 필두로 미국에서 판매 중이던 컴퓨터 게임 매출이 급락한 사건이다. 2년간 매출 감소량이 97%에 이르렀다. 물론 그 모두가 VR 기술 적용 제품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후 VR 열기가 한동안 주춤해졌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크게 발달하면서 VR 기술의 몰입감이 증대되자 VR 산업은 또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론적 기술이 개발됐을 뿐, 그걸 상용화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에선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에 거대한 파도가 몰려왔다. 바로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VR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어도 좋은 거대한 물결이었다. 사람들은 VR에 보이던 관심을 인터넷으로 돌렸다. 그 결과 VR 기술은 △의료 △자동차 디자인 △군사 훈련 등으로 그 용도가 자연스레 한정됐다.
이제 VR의 발전 여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과의 전쟁에 달려 있었다. 일본의 게임업체 세가(SEGA)는 계속해서 VR 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여러 종류의 VR 기기와 관련 게임을 만들어냈음에도 값을 충분히 낮추는 동시에 게임의 질을 높이는 데는 여전히 실패했다. 여기에 1995년 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어두운 역사가 되고 말았던 닌텐도의 게임기 '버추얼 보이'가 가세했다. 이들이 보여준 실패 사례는 VR 기술을 게임에 적용해 몰입도를 높이려던 이들의 노력에는 결정적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대기업들은 VR 시장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동시에 컴퓨터 가격도 끝없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기가 무르익었지만 아무도 VR시장의 상업화를 노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 마침내, 오큘러스(Oculus)의 창업자, 1992년생인 파머 럭키(Palmer Luckey)가 '오큘러스 리프트'를 들고 나타났다. '제대로 된' 이 VR기기가 갑자기 대기업들을 10여 년 만에 VR시장 앞에 줄 세우기 시작했다. 글로벌 전자업계, 특히 IT 기업이 가상현실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2014년 페이스북이 가상현실 전문기업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약 2조 2000억 원)에 인수하며 한층 분명해졌다. 미국의 기술 미디어 웹사이트 씨넷(CNET)은 VR의 미래를 밝게 전망하고 있다.
VR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들고 있다. 두 번째 성공 요인으로 막대한 투자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현재 TV, 영화, 게임, 포르노 업계가 VR에 관심을 가지고 VR 기술을 제품과 접목시키기 위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포르노업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한편 앞으로 VR 시장이 갈 길이 아직 멀 뿐만 아니라. VR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도 몇 가지 있다는 관점도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 요인은 VR을 제대로 즐길만한 콘텐츠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두 번째 걸림돌은 비싼 가격이다. 구글 카드보드의 가격은 15달러로 저렴하지만,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바이브의 가격은 수백 달러를 호가한다. 삼성 기어VR은 가격과 성능 면에서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나 앞으로 어떤 제품이 VR 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만약 지금 VR 제품을 구입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고 씨넷은 평가한다. 세 번째 장벽은 헤드셋 무게와 어지러움이다.
VR 열풍이 IT 산업 전체를 '들썩거리게' 할 정도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2014년 VR 전문기업 서비오스(Survios)에 400만 달러를 투자한 벤처기업 샤스타벤처스(Shasta Ventures)의 한 임원은 실리콘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상현실이 대단하고 새로운 수단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겨우 '이 걸로 어떤 것까지 해볼 수 있을까?' 상상하기 시작했을 뿐이다(It's this huge new medium that people have only started to imagine where you could go with it)."
대한민국 최초 드론 전문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