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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Feb 08. 2017

[영화리뷰] 걷기왕 - 꼭 꿈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꿈과 열정이 뭐 그리 대수라고?!

한 소녀가 있다.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운동이나 음악, 미술을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 소녀가 유일하게 잘 하는 것 하나가 있다. 바로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통학길을 매일매일 걸어다니는 것.

영화 [걷기왕]

은 주인공 만복이가 매일 4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만복이가 돈이 없어 걸어다니는 것으로 오해하고 가정방문을 하고 나서 만복이에게 '경보'라는 꿈을 가져보면 어떨까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너희들이 지금 어떤 시기니? 열정만 있으면 뭐든지 이겨낼 수 있을 때잖아."

라는 담임의 말에 무작정 경보를 시작한 만복. 하지만 빠르게 걷되 뛰어서는 안되는 경보의 세계는 험난하기만 하다.

"야, 그냥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

  경보를 장난처럼 하는 선배(수지)의 눈에는 만복의 행동이 하나하나 탐탁치 않다. 결국 같이 연습을 하다가 화난 선배는 만복에게 그냥 들어가라며 한마디 하고는 혼자서 연습을 한다.

과연 내 길이 있는 걸까?

  이 길도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아 경보를 그만둔 만복.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다가 결국 제대로 경보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선배! 저도 선배처럼 목숨걸고 열심히 할 거예요!"

  진짜 목숨걸고 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겠어!하는 마음으로 맹연습에 들어간 만복. 하지만 연습도 적당히 해야 실력이 되는 법. 너무 열심히 연습한 만복은 발톱이 안으로 파고들어 피가 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열정과 꿈, 그건 왜 가져야하는 건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열정과잉사회'라고 불러도 될만큼 열정이 너무나 넘쳐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서 열정은 곧 호구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취업을 원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페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혹사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끼 조차 때울 수 없는 돈을 받으며 살아간다. 배고프고 춥고 졸리면 거지라고 했는데... 어째 지금의 내모습같다. 그런데 당장 내가 먹고 살아갈 수 있는 하루를 열정적으로 보내기도 바쁜데 거기에다 '꿈'마저 가지란다. 어디서 돈주고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땅을 파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가지란 말인가? 가지라고 했으면 어떻게 가지는 지 방법을 알려줘야지 아무것도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가져야만 한다고 하는 걸까. 열정과 꿈 도대체 뭐길래 왜 가져야만 하는 걸까?

  영화 걷기왕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정확히 꼬집어내며 우리가 왜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거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경보에 목숨거는 만복이에게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며 말하는 친구의 말을 통해, 멀미도 정신력의 문제라며 말도 안되는 것을 말하는 아버지를 타박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만 했던 열정강박증에 계속해서 태클을 걸고 왜 그래야만 하는 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적당히 살면 안되는 거니!

담임 : 진짜 꿈! 엄청 막 그런거 있잖아.
지현 : 저는 그냥 공무원돼서 칼퇴하고 집에서 맘편히 맥주 한잔 때리고 싶어요.
           아니, 꿈이 어쩌고 열정이 어쩌고 저는 그런 거 딱 질색이에요. 그냥 적당히 하고 싶다고요.


  담임은 지현과 상담을 하면서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꿈이 공무원이란 말에 벌써부터 적당히 살면 안된다고 하는 담임에게 지현은 공무원되기가 쉬운줄 아냐면서 만복이 가진것만 꿈이냐고 화를 낸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하자면 사실 필자도 몇 년 전까지 '공무원? 그거 꿈없는 애들이나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대회 수상경력이라고는 교내 백일장이 전부면서 위대한 작가가 되어서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소설도 쓰고 한국의 조앤 K 롤링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때는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것이 곧 내 것이 될 줄 알았고 스티브 잡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철수나 반기문 정도는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적당히 살면 안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적당히 살기도 아니, 그 반의 반만 살기도 참 벅차다.

  얼마 전 노량진의 고시생들이 꼭두새벽부터 나와서 수업줄을 기다리는 기사를 보았다. 일주일 간의 강의 자리를 위해 기본 3,4 시간을 추위속에서 떠는 것도 모자라 영어 단어를 보며 기다리는 수십명의 학생들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정말 만복이처럼 피나는 연습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수십키로를 걸어가는 것만이 열정이고 꿈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적당히 살기위해 몇 시간의 추위를 버티고 그 시간도 아까워 단어들을 머리 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그들의 노력은 열정과 꿈이 아닌걸까? 심지어 그렇게 해도 적당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쩌면 그냥 조금은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시작부터 빠른 페이스로 달리던 만복은 결국 넘어지고 만다. 그런 만복의 눈에 들어온 건 결승선이 아닌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 그 뒤의 결말은 만복이답게 하는 것으로 끝난다.

  목숨 걸고 해도 모자라다는 말에 왜 목숨까지 걸어야해요? 결국 다 살자고 하는 건데라고 반박 할 수 있다. 그런데 뭐가 맞느냐고 묻는다면 시원스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많은 피땀눈물을 흘려가며 정상에 오른 사람이 '목숨걸고 해야지.'라고 하는 말도 그럴 듯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적당히 사는 게 제일 좋은 거지.'라고 한다면 그것또한 그럴 듯하다. 황희 정승의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쓰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누구 말을 들어야 맞는 걸까? 사실 누구의 말을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인생은 내것이니까!라는 정신으로 뛰어가며 살아도 되고, 이말저말 들으며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을 찾는 것도 모두 각자의 방식인 것이다. 다만 인생이 너무 힘들게만 느껴질 때, 사는 것이 조금 버거울 때, 그럴 때는 천천히 쉬어가며 느리게 걸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만복이는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

  이 영화는 평범한 인물의 성장드라마이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영웅이 되거나 천재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인물도 막연하게 열심히만 노력하다보면 무언가 이루기 전에 탈나서 죽을 수 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자신의 행복은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영화이다.



영화 [걷기왕]   3


 1.B급 코믹 & 감성

  소순이(하지만 수컷이다.)의 내래이션으로 시작되는 [걷기왕]은 처음부터 제법 유쾌하게 진행된다. 선천적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만복이 차만 타면 토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왜 걷기왕이 되었는가를 재미지게 풀어낸다. 또한 중간중간 인물들의 사연도 심상치 않다. 마라톤 천재였던 선배가 연습하다가 계단에서 구른 뒤로 마라톤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경보를 목숨걸고 하는 것을 코믹하게 보여주면서도 어떤 때는 제법 진지하게 나오기도 한다.


 2.연출

  내래이션과 중간중간 과장되게 진행하는 스토리, 무언가 빵하가 나타나는 효과는 보통 일본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구성이었기 때문인걸까 [걷기왕]의 관객수는 손인분기점인 45만명의 5분의 1인 9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필자는 이러한 연출을 정말 좋아해서 첫 장면을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만복이 맹연습을 하는 장면에서 무키무키만만수의 노래인 <안드로메다>가 나왔는데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인지그 장면도 매우 좋았다라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3.공감코드

  영화를 보다보면 공감하는 장면들이 매우 많다. 주인공 만복이 어느 것하나 없는 평범한 인물인 것부터가 공감이 되는데 '너같은 애들이 갑자기 목숨걸고 그러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어.'라는 만복이 친구(지현)의 말은 범인들의 가슴을 콕 찌르는 대사이다. 또한 공부천재인 지현, 부상을 겪고 다시 시작하는 마라톤 천재 수지, 짜장면 배달부지만 힙합천재를 꿈꾸는 효길의 입장에서도 충분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걷기왕]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느리더라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만복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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